헬스케어 분야가 국내 금융사들의 핵심 미래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고, 1인 가구 증가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일상 트렌드로 자리매김됐다. 금융사들은 마이데이터 서비스(본인신용정보관리업) 시행 이후 헬스케어 분야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 당국도 규제 혁신을 예고하면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자산부터 건강까지 모두 관리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1월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전면 시행되면서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전통 금융권과 신흥 빅테크·핀테크 기업 사이 누가 먼저 기선을 잡느냐가 관전 포인트지만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각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준비하는 단계이고, 각종 규제로 서비스 제공 범위가 아직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데이터의 관리 주체를 기존의 기업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여러 금융사나 빅테크에 흩어진 정보 주권을 개인에게 돌려주고, 개인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금융 앱에서 소비자가 보유한 부채, 현금, 주식 등 금융자산을 한눈에 보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
전통 금융권을 대표하는 금융그룹들은 마이데이터 서비스 출시 초기부터 다양한 업종과 제휴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 성패가 금융, 건강, 통신, 교육, 교통, 패션, 유통 등 다양한 이종 데이터 간 결합에 달려 있기도 하다. 마이데이터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에는 단순 금융상품 공급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한몫했다.
이에 금융사들은 고객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기 위해 사회 트렌드와 밀접한 헬스케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KB손해보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주요 보험사들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고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규모는 2019년 1063억달러에서 매해 30%씩 성장해 2026년 6394억달러(약 833조원)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약 9조원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 또한 글로벌 헬스케어 플랫폼 시장 규모를 지난 2020년 560억달러(약 67조원)에서 2030년엔 8050억달러(한화 960조원)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KB금융·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헬스케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간접투자하는 방식으로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했다.
KB금융그룹의 KB헬스케어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지난해 10월 야심차게 출범한 신생 회사다. 헬스케어 신시장 진출과 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존 헬스케어 솔루션과 차별화된 서비스·데이터·커머스를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 ‘오케어(O-Care)’를 올 2월 출시해 2만7000명가량의 KB금융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또한 한국웰케어산업협회와 빅데이터 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내년 상반기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의료데이터 활용 시장 진출을 목표로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12월 보험사 신한라이프를 통해 헬스케어 자회사 신한큐브온을 설립하고 ‘하우핏(HowFIT)’ 앱을 출시해 독자적인 홈트레이닝 콘텐츠를 공급 중이다. 회사 측은 고객이 일상에서 더 편리하게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아울러 고객 생애주기 전부를 책임지는 ‘종합 돌봄 서비스 제공자(Full Care Service Provider)’로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신한큐브온이 만든 하우핏은 AI 동작인식 기술과 라이브 서비스를 결합한 홈트레이닝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별도의 웨어러블 장비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AI가 사용자 움직임을 분석해 운동 자세를 교정할 수 있다. 향후 이러한 운동 관련 콘텐츠의 다양성을 높이고 헬스케어 관련 파트너사들과 협업해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향후 계열사 앱을 합친 종합 금융앱이 생기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의 뱅킹 앱 ‘신한 쏠(SOL)’의 MAU(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는 약 900만명으로, 토스·카카오뱅크·KB국민은행에 이어 10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신한카드 앱 ‘신한플레이(pLay), 배달 앱 ‘땡겨요’ 등 그룹 플랫폼의 전체 MAU는 2000만명에 달한다.
하나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뱅킹 앱에 생활 밀착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 2월 하나은행은 전자 진료기록과 개인 건강기록을 지원하는 기업 세나클소프트와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양사는 △신규 개원의를 위한 상시 공동 마케팅 △개인 건강 기록 서비스 활성화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확대를 위한 협업을 추진한다. 하나손해보험은 건강기록 앱과 연동해 보험료를 할인하는 상품을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신한캐피탈, 엠캐피탈, SBI저축은행 등 타금융사와 손잡고 투자조합을 설립해 정밀의료 기업 아벨리노랩에 기관투자자로 참여했다. 우리금융은 스타트업 협력 프로그램 ‘디노랩’을 통해 헬스케어를 포함한 스타트업에 70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그룹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디노랩 기업들과 전방위로 협업을 시도 중”이라며 “우리금융과 혁신 DNA를 만들어갈 수 있는 디노랩 기업들과 시너지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앱서 비금융 서비스 이용 허용 방침
금융당국은 경제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오프라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규제에 대해 개선을 검토 중이다. 은행이 ‘디지털 유니버셜 뱅크’로 거듭나고 보험사가 ‘헬스케어 금융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대거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금융사의 플랫폼 발전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업무 범위 제한 및 자회사 투자 규제 등을 합리화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앞으론 은행이 플랫폼 관련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부수업무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금융사는 핀테크 기업과 달리 ‘금산분리 원칙’ 등에 따라 고유한 업무가 아닌 다른 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가령 앞으로는 뱅킹 앱을 통해 통신 3사의 온라인상 본인확인 서비스나 국민연금 가입내역과 건강보험 납입내역, 세금과 공과금 고지서 등을 통합 관리하는 전자문서중계업무 등이 가능해진다. 또한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구매·계약·발주 등 공급망 관리도 할 수 있다.
현재는 은행이 통합 앱을 통해 보험, 카드, 증권 등 계열사 서비스를 제공하려 할 때 여러 법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통합 앱을 운영하는 것이 은행의 부수업무로 볼 수 있는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중개 행위에 해당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그룹은 ‘금융지주회사법’상 영리업무를 할 수 없어 계열사별로 각각 앱을 운영해 왔던 것이다. 금융당국은 통합 앱을 은행 부수업무로 허용하고, 금소법상 중개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할 방침이다.
보험 업계를 위한 규제 완화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상 보험사의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 출시가 어려운 상황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에 근거한 상담 및 조언이나 일상적 건강습관 개선을 제안하는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복지부와 협의해 비의료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하고 판단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강통계 분석 등의 서비스를 허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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