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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 범죄자의 인권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논란… 범죄자 인권 보호 어디까지
‘이기영 사건’으로 신상 공개 실효성 논란
미국은 정보 공개… 국내도 법안 마련 중
또 다른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조언도
이건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1-18 13:10:34
▲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이기영은 지난해 12월20일 60대 남성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으며, 그보다 넉 달 앞선 지난해 8월 집주인인 동거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이달 4일 국민의 시선이 검찰에 몰렸다. 함께 살던 전 여자친구와 택시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검찰에 송치되는 날이었다. 초점은 이기영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유달리 이기영의 얼굴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공개된 신상이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피의자 인권을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외국과 비교하면서 여론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반면, 강력범죄자의 얼굴을 비롯한 신상공개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놓았다.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 데다 인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실제 모습과 다른 신상공개… 얼굴 공개 강제할 수 없어
 
이날 이기영은 점퍼 모자와 마스크, 머리카락까지 이용해 필사적으로 자기 얼굴을 숨겼다. 경찰은 송치하면서 이기영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스크 미착용 권고에 강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며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경찰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이기영의 신상 공개를 결정하고 머그샷(경찰에 체포된 피의자를 식별하기 위해 찍는 수용기록부 사진)을 공개하려 했으나 이기영의 거부로 실물과 다른 운전면허증 사진이 공개되면서 실효성 문제가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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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공개의 실효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구속된 전주환(31)의 얼굴을 공개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전주환은 검찰 송치 과정에서 실물이 공개됐지만 이기영은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아 논란이 커졌다.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8조 2항(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이 신설돼 흉악범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신상공개는 시·도 경찰청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심의 후 결정한다. 심의에서 통과되면 피의자의 얼굴·성명·나이 등 신상 관련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문제는 기준이 모호한 데다 어떤 사진을 공개할 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먼저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도록 했는데 중대한 피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호하다. 어떤 사건에 적용하느냐가 전적으로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 달려있다 보니 대중의 이목이 쏠린 사건에만 적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어떤 사진을 공개할 것이냐에 대한 규정도 없다. 오히려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고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소극적으로 운영될 여지가 있다.
 
▲ 미국에서는 시민의 알권리를 중시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다. 국내에서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실효성 없는 현행 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민들 불만 “이럴 거면 왜 하나”… 개정 움직임도
 
이 때문에 사진 공개 시 촬영을 강제할 수 없으니 신상공개 때마다 증명사진 공개 수준에 그친다. 피의자 심문을 위해 법원에 출석할 때도 마스크나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 관계자도 “이기영에게 얼굴 공개를 물어봤지만 완강히 거부해 공개할 수 없었다”며 “피의자가 거부하면 경찰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1 국가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에 찬성이 94.9%로 시민 대다수가 신상 공개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피의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실효성 없는 제도에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하는 A씨(31·여)는 “왜 제대로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보정한 사진 공개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공개하는 것과 같다”며 분노했다. 이어 “경각심을 가지라고 공개하는 것 아니었나”라고 반문하며 “한숨만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B씨(26)도 “이왕 신상공개 하기로 결정을 했으면 의미 없는 옛날 모습 말고 알아볼 수 있도록 최근 사진을 공개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정보자유법에 따라 머그샷을 공개정보로 규정한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알권리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일부 주에서는 성범죄자 거주지의 건물까지만 알려주는 우리와 달리 실제 거주지 주소를 동·호수까지 공개하기도 한다. 일부 주에서는 아동 성범죄자의 집 앞에 성범죄자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게시하기도 한다.
 
이에 국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관련법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제출됐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경우 정보공개 결정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피의자 신상 공개가 억울한 피해자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증거법 체계를 보완해 피해자에게 증거 채택을 유리하게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억울한 신상공개 피해자” vs. “범죄자에 유리한 원칙”… 논란 ‘팽팽’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범죄자가 아닌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했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한준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가 강력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망신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 있는 사람을 벌 주기 위한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뤄지는만큼 섣부른 신상공개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최 교수는 ‘죄 있는 사람 10명을 풀어주더라도 죄 없는 사람 1명을 벌하지 말라’는 법조계 격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다만, 최 교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과도하게 적용했을 때 범죄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며 증거법 체계를 수정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현재 형사소송법 제308조에 의하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최 교수는 이 부분을 완화해 위법적인 내용이 있더라도 증거 능력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범죄자의 신상공개가 재발 위험을 막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호주에서는 고위험군 성범죄자는 지역 주민에게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자녀와 접촉하는 특정 인물이 성범죄자인지 경찰에 문의하면 개별적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정보 공개는 최소화하면서 필요한 경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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