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룰 관련 법 제정이 표류하고 있다. 국회는 20일 이 문제를 토의할 예정이었지만 아예 논의 테이블에도 올리지 못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처리 문제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법을 매듭짓지 못한 채 이대로 가면 7년 뒤 원자력발전소는 멈춘다.
원전에서 사용하고 나온 폐연료봉은 엄청난 방사능과 열을 내뿜는다.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면 약 10만 년이 지나야 한다. 정부는 폐연료봉을 지하 깊숙이 묻어 영구 보관하기 위해 1978년 고리1호기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총 9차례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부지 선정을 시도했지만 후보지 지역 사회의 반대로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과제이기에 이명박정부는 2009년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을 제정·시행했고, 2013년 10월부터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했다. 공론화위원회는 박근혜정부 시절이던 2016년 7월 1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내놨다. 문재인정부는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며 재검토위원회를 꾸렸고 2021년 4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들어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에너지 정책 기조가 180도 바뀌면서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이 앞당겨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정책 변화에 따라 배출량을 재산정한 결과 사용후핵연료는 63만5000다발이던 기존 산정 결과(2021년 12월)보다 15만9000다발 늘어난 79만4000다발이 발생할 전망이다. 핵폐기물 발생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보관소 포화 시점도 앞당겨진다.
문제는 국내 원전 내 폐기물 저장 용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장 시설이 가장 빨리 차는 곳은 한빛원전으로, 이번 재산정 결과 2031년에서 2030년으로 1년 당겨졌다. 한울원전 포화 시점은 2032년에서 2031년으로, 신월성 원전 포화 시점은 2044년에서 2042년으로 각각 1~2년 빨라졌다. 새울원전은 예전과 같은 2066년 포화가 예상된다.
세계 최초로 방폐물 처분시설을 세워 내년부터 시운전에 들어가는 핀란드는 1983년부터 방폐물 관리를 위한 장기 정책을 수립했다. 이후 1994년 원자력법을 개정해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2015년 관련 시설 착공에 들어갔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운영하는 프랑스도 2006년 방폐장 건립을 위한 근거법을 제정했다. 우리는 2021년에야 고준위방폐물 관리 특별법을 발의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체계, 부지선정 절차, 원전 내 저장시설 용량 관련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다.
여야 간 최대 쟁점은 ‘폐기물 저장 용량’이다. 민주당은 원전 설계수명만큼의 폐기물만 저장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안전성 검토를 거쳐 원전의 수명을 연장해서 폐기물 저장량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열린 국회 논의에선 여야 모두 고준위방폐물법 제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차기 법안 소위에서 우선 심사하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두 달 뒤 열린 소위에서 안건 상정조차 불발되면서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고준위방폐물의 효과적인 처분은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들이 직면한 핵심 과제다. 그리고 윤 정부의 친원전정책 아래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포화 시점은 빨라진다. 서둘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통과시켜야하는 이유다.
이제는 안전한 영구보관시설 확보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방법은 의외로 쉽다.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면 된다. 조만간 확실히 벌어질 일에 대비 못하는 건 무책임을 넘어 무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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