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로와 만리재로를 잇는 ‘서울역 고가도로’는 현재 통행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지난 2006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정밀안전진단 안정성평가에서 ‘재난위험시설’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은 후 그 처리방안에 대해 서울시가 보행길로 재생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차량이 통제된 이곳은 현재 바닥판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이른바 ‘서울역 7017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7017프로젝트는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를 2017년 새롭게 탈바꿈시키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야심찬 포부가 담겨있다. 지난 20일 서울시는 제7차 도시계획위원회를 개최해 해당 고가도로에 대한 도시계획시설 변경 안건을 ‘조건부 가결’ 시켰다. 고가 주변 민간건물 등과 연계 방안을 추가 검토하라는 단서가 붙은 셈이다. 지난달 26일 서울시는 ‘이야기 입은 5개 노선 25.4km 도심보행길’이란 제목의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는 앞서 언급된 서울역 고가와 만나는 퇴계로 일부 구간의 차로를 대폭 줄여 보행자도로로 만들 것이란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일부는 보행자 중심의 ‘걷는 도심’에 대해 반겼지만 이를 격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일부 남대문시장 상인들이다. 고가 도로 폐쇄 때도 격한 반응을 보였던 이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정책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시의 ‘도심보행길’과 이를 둘러싼 반응 등을 알아보기 위해 현장에 나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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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가 서울역고가(사진)의 도보공원화에 이어 서울 도심지역 5개노선 총 25.4km의 도보관광길을 조성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관광길 내에 서울역고가와 연결되는 퇴계로 일부구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최대 2개 차선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남대문시장 도매상들을 중심으로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스카이데일리
퇴근 무렵인 오후 6시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이 있는 회현사거리를 찾았다. 명동과 남대문시장 그리고 남산케이블카 등을 오가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남대문시장 쪽으로 퇴계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여느 퇴근시간대 도심도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남대문시장 방향의 차선은 차량들이 쉬이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꽉 막혀있던 반면 반대편 차선은 수 초간 차량 통행이 전무할 정도로 텅텅 비었던 것이다.
이 같은 기형적 정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바닥판 철거공사가 시작되면서 차량통행이 전면 중단되자 이곳을 통해 만리재로·청파로 등으로 향하던 차들이 병목현상에 빠져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게 됐다.
도로 한복판에 갇힌 운전자들과 대화를 시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그들 표정은 한껏 미간이 좁아져 있었다. 어렵사리 창을 열어둔 채 운전하는 한 운전자와 짧은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다.
명동역에서 마포를 향해 가고 있다는 이 운전자는 “고가 공사 후 출·퇴근 시간 구분 없이 이곳은 극심한 상시 정체구간으로 전락했다”며 “위험한 고가차로 통행을 막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우회로 확보 등에 대해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고 전했다.
서울시, 고가부터 1.2km ‘도심보행길’ 조성 “걷는 도시 서울…정체성 확립하겠다”
이 같은 정체는 향후 더욱 극심할 전망이다. 서울시가 서울 도심지역 5개 노선 총 25.4km의 도보관광길을 조성하면서 서울역고가부터 퇴계로로 이어지는 구간의 차로를 줄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5개 노선은 각각 ▲이음길(도심순환로, 9.5km) ▲옛풍경길(와룡공원~퇴계로2가 교차로, 4.5km) ▲늘청춘길(혜화문~동대입구, 3.8km) ▲종로운종길(서대문~종로~동대문, 4.0km) ▲청계물길(舊 국세청 별관~청계천로~DDP, 3.6km) 등이다.

▲ 자료: 서울시 ⓒ스카이데일리
이중 이음길의 일부 구간이 현재 서울역 고가 폐쇄로 인해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는 남대문시장·명동 일대 퇴계로다. 현재 6개 차로가 운행 중인 이곳은 4차선 도로로 탈바꿈하고 2개 차선의 자리에 보행자를 위한 인도가 조성될 예정이다. 신세계백화점 앞 도로도, 명동 밀리오레 앞 도로도 최대 2개차선이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해당 도심보행길의 조성을 두고 서성만 서울시 보행친화기획관은 “보행길 조성을 통해 보행문화와 관광업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한 경제 활력을 주변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며 “향후 서울 전역에 산재한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보행길을 지속 발굴해 ‘걷는 도시, 서울’을 완성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앞서 기자가 만난 운전자는 이 같은 소식을 들어보지 못한 눈치였다. 한숨부터 쉰 그는 “퇴근시간대 도심지역 여느 길을 통해도 막히긴 매한가지라 이 길을 오갔으나 앞으로는 우회로를 택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뒤차를 쫓았다.
기자를 지나친 운전자의 차 후미에는 몇 미터 못가 붉은색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다. 차 너머로 불과 1년 새 낡아버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의 고가 정책을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소·도매점 온도차…“이번에도 희생하라는 말 아니냐” 분노 섞인 목소리 ‘도매상’
지하철을 이용해 남대문시장을 방문하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 인근의 남대문시장 5번 출입구 인근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서울시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좌판에서 잡화 등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솔직히 주변 상인들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보행자도로가 생기고 사람이 많아진다면 유입되는 고객이 더욱 많아지지 않겠느냐”면서 “우리 같은 잡화상이나 음식을 파는 이들 대다수는 내심 반기고 있지만 도매상들이 이를 가는 상황이라 내색도 못하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퇴근시간대 무렵 남대문시장의 도매상들은 물건들을 트럭과 봉고차 그리고 오토바이 등에 차곡차곡 싣는 모습이었다. 다수의 가게들은 속속 셔터를 내리고 하루를 정리하기도 했다.
▲ 도매상들은 물건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우회로를 이용하다보니 물류비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또한 고가 공사 시작 후 제대로 된 우회로가 확보되지 않아 교통체증이 심각해졌고 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소매상 및 물류업자 등의 주차난이 심화됐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사진은 도매물건이 쌓여 있거나 옮겨 싣는 시장의 풍경 ⓒ스카이데일리
옷가지 등을 도매로 판매한다는 한 상인은 “고가가 폐쇄되면서 만리동 골목 등에 위치한 봉제공장에서 물건 받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 사실이다”며 “여기서 차도는 더욱 더 줄어든다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정책을 내놓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오토바이를 통해 남대문시장 도매상과 봉제공장 등을 오간다는 한 기사도 “도로가 폐쇄되면서 우회로를 택하다보니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져 불편해졌다”며 “그나마 나는 오토바이라 다행이지 차를 이용하는 이들은 더욱 고될 것이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한 인근에는 정차된 트럭·봉고 등이 없던 상황이었다. 남산자락과 연결되는 소월로 인근에는 일부 트럭들이 물건을 싣고 있었다. 이들 기사들은 원래부터 시장 5번 출입구 인근에는 차를 대지 못한다고 전했다.
한 기사는 “보통 새벽시간대가 아니고서야 대형 트럭이 거기에 차를 대기란 불가능하다”며 “보통 작은 트럭들과 봉고차들이 그 인근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데 고가 통제 후 정체가 심해 오래 정차하기도 힘들어 한다”고 답했다.
남대문시장 상인회 이민호 본부장은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업계획 역시 서울시의 발표가 있은 후 알게 됐다”며 “상인들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며 또 현재도 엄청난 교통난이 발생하는 가운데 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 사업추진을 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현재 상인회 차원의 건의사항을 시 측에 전달한 상황이지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며 “향후 상인회장단 회의 등을 거쳐 대응책을 모색할 방법이며 시에도 상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할 수 있는 공청회 개최 등을 요구할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재생 기폭제 될 것”…교통 등 대책無 “보기 좋기만 한 정책일 뿐”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은 YTN라디오 ‘최영일의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업이 서울 도심지역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피력했다. 앞서 상인들의 주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 시장은 “(철거가 예정된 서울역고가를)녹색 보행길로 재생하면 선로가 가로막아 낙후된 서울역 서부역 일대의 발전을 촉발할 수 있다”며 “그 활력을 바탕으로 도심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일종의 ‘서부 대개발’이라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서울역 인근의 80만명 유동인구가 도심보행길을 따라 걸어서 남대문시장 5분, 명동 7분, 남산 1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다”며 “도심지역 상권 활성화는 물론 (고가인근)서계·청파·공덕·죽림·아현동 등 에도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당 인터뷰를 접한 전문가들은 ‘장점’들만 홍보하면 문제가 될 사업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특히 이번 도심보행길의 경우 기존 고가도로 개편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하며 누군가의 지속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격이라고 평가했다.
▲ 현재 남대문시장 인근 퇴계로는 한쪽 차선의 교통체증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고가 폐쇄 후 도심을 빠져나가는 방향의 교통체증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도보공원화로 인해 최대 2개 차선의 감소가 예정돼 있어 인근의 교통난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스카이데일리
관련 학계 전문가는 “상인들의 극심한 반대를 뚫고 도보공원을 진행한데 이어 이의 연장 사업에 해당하는 도심보행길 사업으로 인해 남대문시장 인근은 더욱 더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며 “걷는 도시를 활성화시켜 시민들과 관광객 등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피해사례 발생 여부를 검토하고 또 발생 가능성이 높은 부작용 등을 대상으로 대비책 등이 수립돼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며 “이번 도심보행길의 경우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상태로 고가철거 사업이 시작된 가운데 추가적으로 수립됐다는 점에서 시의 행정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생계를 운운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수의 만족을 위해 고가철거 사업을 강행한 것도 모자라 추가 연계 도보로 확충사업에 대해서 ‘정치적 행보’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인 박 시장이 ‘MB의 청계천’과 견줄만한 사업을 ‘걷는 도시’로 택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서울시장의 행정을 두고 자연스레 대권을 의식한행보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하는 일은 적지 않을 것이다”면서 “이번의 경우 극심한 반대의견을 사실상 무시한 채 진행한다는 점, 대중적 인기를 끌만한 행정이라는 점 등에서 특히 더욱더 대권행보와 유관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MB의 청계천과 비교되는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는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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