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야는 예전에 일했다는 육순의 주방장 할머니를 핑계 삼았다.
라라가 오기 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날이면 다리야와 베라는 전준호에게 늘 모욕적 응징을 당했다고 한다. 고려인 동업자 김미샤는 그들 스타일대로 말로 타이르듯 지적하고 넘어갔지만, 다혈질인 준호는 냄비나 의자를 그녀들을 향해 집어 던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라라가 오고 난 후 덜해졌지, 전에는 더 심했다.”
이라와 웨이트리스들이 그녀에게 귀띔했다.
중년의 다리야와 베라는 30대 초반의 라라가 어리다고 풋내기 취급하려 들었다. 라라의 지적을 ‘젠스키 컨플릭트’니 여자들끼리의 자존심 걸린 갈등이니, 하면서 터무니없이 호도했다. 자신들이 음식을 못해서가 아니라 남자들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여자들 간의 갈등이라는 거였다. 다리야와 베라는 라라가 얼굴과 몸으로 남자들 구슬려서 먹고사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다리야에게도 믿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알료나의 존재와 역할이었다. 알료나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유학생으로서 구로에서 마치 무주공산의 여주인처럼 행세하던 중이었다. 다리야에게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였다. 다리야는 알료나 뒤로 숨었다. 알료나 역시 라라에 대한 견제에 그들을 이용하기 원하고 즐기는 눈치였다.
한국인 주인 남자의 아내라는 여자가 느닷없이 나타난 데 대해 알료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유학 와서 아르바이트하는 알료나를 바라보는 라라의 솔직한 심정은 달랐다.
‘도대체 어떤 남자길래 아내를 남의 식당에서, 그것도 남자들만 있는 식당에서 주방일을 시키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
사람들은 알료나가 곧 그만두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나 할 말은 있다. 알료나도 역시 그랬다.
“나도 원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에요. 김후원 씨가 간청하길래 어쩔 수 없이 시작했어요. 남편은 당연히 반대했구요. 나도 이제 논문 써야 해서 계속할 수 없어요.”
그러나 알료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만두면 라라에게 지는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알료나는 다리야와 베라와 함께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히죽히죽 웃는 일이 잦아졌다. 이유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역시나 시아버지인 전무학이 그들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비아냥과 조소의 진원지였다.
“결혼을 안 시킬려고 했는데, 쟈가 배가 남산만해져서 나타나니께 우짜노. 할 수 없이 혼인시킸지.”
라라보다 3개월 먼저 모스크바 식당으로 온 준호의 아버지 전무학은, 그녀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것도 음식이라고 하나. 여자들이 우찌 글케 음식을 못 해여. 맛이 읍어서, 먹을 수가 읍대니께. 니가 관리를 안 허니까 그래, 이눔 자슥아. 다 니 할 탓이래.”
말끝마다 그는 아들 준호를 탓하기를 잊지 않았다.
주방 여자들은 전무학을 그들 사고방식으로 반박했다.
“아바이가 왜 여기 들어와서 참견합니까. 여기는 당신 식당이 아니요. 나가소, 아바이.”
그는 툭하면 집에 올라와 잠을 자는 아들의 게으름을 나무라면서 식당과 집안 안팎의 잔일이란 잔일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성격이기도 했고, 더부살이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을 터였다.
준호의 아버지 전무학은 이성계의 스승이었던 왕사 무학(舞鶴)대사 같은 인물이 되라고 지은 이름이었으나 배우기를 싫어해서 동네 건달 짓을 하며 청춘을 보내고, 결혼한 후 야무진 아내의 잔소리에 못 이겨 서울로 올라와 수박 장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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