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경제 전문지인 ‘포춘’은 매년 ‘일하기 좋은 글로벌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실리콘밸리 IT기업인 ‘구글’이다. 구글의 경우 지난 10년간 무려 7번이나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직원들의 만족감이 높다. 일부 설문 등에서 구글 직원들은 회사의 복지나 사내 문화보다 ‘구글’이라는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더 가치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에 최근 구글의 기업문화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세계 IT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비단 구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은 대부분 구글과 같은 조직 문화를 차용하고 있다. 페이스북부터 시작해 애플, 에어비앤비, 넷플릭스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굴지의 IT기업인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식 인사 시스템을 도입한 인사혁신을 내년 3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혀 재계와 업계는 물론 국민 모두의 이목이 쏠린다. 스카이데일리가 실용주의를 강조해 온 이재용 부회장의 인사 혁신안에 대한 주변의 평판과 가능성에 대해 진단했다.
|
▲ 최근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창의적,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기존 연공서열주의 중심의 인사제도를 업무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직무중심 체제로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새로 도입되는 조직문화 혁신 시스템의 핵심은 실리콘밸리 IT기업에 버금가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사진은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스카이데일리
지난 3월 ‘스타트업 삼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대적인 문화혁신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던 삼성전자가 ‘혁신DNA’를 배양하기 위한 첫 신호탄을 쐈다. 수직적이고 경직됐던 조직문화를 버리고 실리콘밸리 IT기업에 버금가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시행은 내년 3월부터다.
기존 상명하복식 조직문화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IT업계에서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실용주의를 강조해 온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이 ‘관리의 삼성’에서 벗어나 효율성 중심의 새로운 삼성으로 탈바꿈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직급 단순화에 호칭 수평적 ‘연공서열 파괴’…반바지 차림 출근·근무도 허용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혁신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데 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삼성전자의 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과거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변화의 속도가 급격한 첨단 IT기업에선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 자료: 삼성전자 ⓒ스카이데일리
이를 위해 삼성은 가장 먼저 기존 직급체계를 뜯어고쳤다. 사원부터 시작해 부장까지 5단계로 이뤄졌던 직급체계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로 전환한다. CL1부터 CL4까지 4단계로 줄이고 단순화했다.
이렇게 나눠진 직급은 오로지 직무능력만으로 평가하고 호칭도 나이와 연차에 얽매이지 않도록 ‘OO님’으로 통일한다. 임원, 팀장, 그룹장, 파트장은 종전 그대로 직책을 사용하지만 부서 내에서 ‘프로’ ‘선후배’ ‘영어 이름’ 등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평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직급체계는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대다수 스타트업 기업들이 채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IT기업인 구글은 공통된 목표를 정하고 성과가 좋으면 단숨에 관리자급으로 올라서기도 하고 직무능력이 떨어지면 팀원으로 일하는 것처럼 능력에 따른 보상이 이뤄지는 기업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복안으로 분석된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보고 문화도 개선한다. 기존에는 사원이 대리에게, 대리가 과장에게 보고하는 등 순차적 보고가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결재 선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한다.
회의는 1시간 안에 끝내고 참석자 모두가 발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로 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장시간 회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해 회의 일정을 다시 잡던 종전의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함이다.
습관성 야근이나 상사 눈치를 보며 오래 회사에 남아있는 잔업, 휴일 특근 등도 줄일 방침이다. 지난해 50% 이하로만 허용하고 그 이상 야근하거나 휴일 출근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계획형 휴가와 복장 자율화도 추진한다. 직원들은 연간 휴가계획을 미리 세우고 매년 15일 이상 연차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복장에 대한 규제도 완화시켜 사무실에서 반바지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 수행을”…높아진 위기감에 이재용식 실용주의 선제 대응
▲ ⓒ스카이데일리
삼성의 이번 인사혁신은 이 부회장의 실용주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이 현재 글로벌 기업으로 등극하기까지 이건희 회장이 선포한 ‘신경영’의 영향이 컸다는 점에서 이번에 이 부회장의 인사혁신이 ‘새로운 시대의 삼성’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특히 이번 혁신안을 발표한 배경에는 삼성이 현재 겪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화된 저성장 시대에 수요 감소,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가시화되면서 어느 때보다 위가감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출시한 갤럭시S7이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호실적을 거뒀지만 시장 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향후 5년간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확대되면서 수요 자체가 감소하고있는데 기인한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가전부문과 반도체부문 역시 중국 업체들로부터 거센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대체 수요 시장에서 삼성이 언제까지 승승장구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내놓은 인사혁신안은 재계 안팎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구글은 이미 이러한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사용 중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든 1년차, 10년차 직원이든 직급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회의를 주도할 수 있다.
SNS의 대명사로 불리는 페이스북은 직원이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는 업무방식을 사용 중이다. 스스로 회사에 필요한 일을 하고 출퇴근도 자유롭다. 대신 철저하게 성과중심의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실리콘밸리 IT기업의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한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등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는 IT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리콘밸리식 조직문화로 ‘엘리트형 똘기’ 성장환경 중요하고 ‘안착 여부 관건’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스카이데일리
조직문화 개조를 위해 인사 시스템 개선에 나서는 삼성의 행보에 대해 재계와 업계에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성공 여부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몇몇 대기업들이 수평적인 조직문화 도입에 나섰다가 흐지부지 된 바 있기 때문이다.
재계 한 중역은 “삼성전자가 국내 재계 1위 그룹인만큼 인사제도와 조직문화 혁신에 성공한다면 우리 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다만 삼성 이전에 몇몇 대기업들이 이와 유사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는만큼 안착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바뀐다고 내부 조직문화가 곧바로 바뀌긴 힘들다고 지적한다. 조직 문화를 개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로감과 고통이 수반되는만큼 철저한 성과평가 기준과 보상체제 구축이 필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IT업계에 한 컨설팅 전문가는 “연공서열에 의한 관료화되고 경직된 국내 조직문화 특성상 평범하지 않은 사람인 이른바 ‘엘리트형 똘끼’ 성향의 사람이 조직에 속했을 때 우리사회의 일반적 문화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선 구성원들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철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성과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