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인 여유를 지닌 40~50대 이상 중장년 남성층 들이 최근 신흥 고급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가들은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상품 판매하는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사진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분더샵 매장 전경 ⓒ스카이데일리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얼마 전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던 현대카드의 광고 문구다. 특히 중년 남성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중년 남성들의 인식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으로 해석됐다.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10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자기 자신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중장년(이하·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나이대인 만큼 희귀한 수집품에서부터 고급 명품까지 씀씀이 또한 적지 않다. 중년 남성들은 유통업계에서는 물론 산업 전반적으로 주목받는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한창 유행하는 ‘아재(40~60대 중년 남성을 친근하게 부르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또 △영포티(젊은 감각을 지닌 중년 남성을 일컫는 단어) △골드파파(경제적 여유를 가진 중년 남성을 일컫는 단어) △노무족(젊고 세련왼 외모와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정년 남성을 일컫는 단어) △여미족(대도시에 거주하면서 럭셔리 상품 구매의사가 강한 남성 소비자를 일컫는 단어) 등이 있다.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연령층의 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30~50대를 지칭했다면 최근에는 4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높아지고 폭도 넓어지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노년’이라는 개념이 점차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에 대한 개념을 확대하기 위한 유통업계의 다양한 마케팅 효과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내수 부진으로 다양한 활로를 모색 중인 유통업계는 이 같은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각 유통채널 별로 중년 남성의 지갑을 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수백~수천만원 호가 명품 정장 찾는 중년남성 증가…‘아재잡이’ 나선 유통업계

▲ 젊은 패션 감각을 추구하는 중년 남성들은 수백만원대의 명품양복을 스스럼없이 구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정장뿐만 아니라 안경테 같은 패션소품에도 관심을 갖는 중년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왼쪽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홍보물, 맨즈라이브러리,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남성코너, 분더샵 맨 ⓒ스카이데일리
일명 ‘아재’ 고객 유치를 위해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곳은 백화점이다. 명품소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갖춘 중년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젊은층보다 구매 저항력이 적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6년간 남성소비자들의 매출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남성들이 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 전체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명품매출 만큼은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명품 구매층으로 부상한 중년 남성들이 불황에 구애받지 않은 충성고객으로 분류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들 ‘아재 고객’을 만나기 위해 다수의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 돼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찾았다. 신세계 강남점의 경우 남성전용관 등 남성고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특히 백화점 6층은 남성 고객들을 위한 남성 전용 브랜드 매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쪽은 비교적 비싼 가격대의 해외 명품 브랜드 위주로, 다른 쪽은 좀 더 저렴한 남성 전용 브랜드 위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해당 층에서는 한적한 분위기 속에 퇴근길 쇼핑을 즐기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이 다수 포착됐다.
캐주얼 정장차림에 최근 유행하는 빈티지 스타일의 모자와 뿔테 안경으로 멋을 낸 한 남성에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가갔다.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하던 이 남성의 나이를 듣고 기자는 흠칫했다. 많아야 50대로 짐작했던 그의 나이가 무려 73세나 됐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나이대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는 순간이었다.
▲ 자료: 신세계백화점 [이미지=한지은] ⓒ스카이데일리
종종 백화점 쇼핑을 즐긴다는 김 모씨(73)는 “패션에 관심 있는 편이라 니트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들렀다”며 “오래 입을 수 있는 명품을 선호하는 편이라 최근에도 이태리 브랜드 정장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남성 전용 브랜드가 몰려 있는 구역에는 쇼핑 중인 중년 남성들이 유독 많았다.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한 브랜드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중년 남성 고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멘즈 컨템포러리’로 불리는 이 구역에는 남성만을 위한 특별한 매장도 마련돼 있었다. 맨즈라이브러리(데스크용품 편집숍), 볼케이노(피규어 전용매장), 바버샵(남성전용 미용실) 등이 있었다.
맨즈라이브러리 중앙에는 패셔너블한 안경테들이 진열돼 있다. 기자가 방문할 당시 세련된 체크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아내와 함께 안경테를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매장 직원에 따르면 해당 매장은 재계에서 패션에 관심이 많은 오너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백화점 부회장이 구매한 곳이기도 하다.
쇼핑을 마친 부부에게 다가가 ‘노무족’과 ‘여미족’ 등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물었다. 강 모씨(64)는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꿔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자녀한테만 맹목적으로 투자했다면 지금은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해 온 ‘나’를 위한 소비…전문직 혹은 돈 많은 아재들 ‘비싼 취미’에 빠지다
▲ 피규어, 오디오 등 취미생활을 위해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는 중년 남성층의 비율 역시 늘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전문직종사자들을 비롯해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 이들은 고급스런 취미를 위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의 비용을 지불하는 VIP고객이다. 사진은 피규어뮤지엄W(위), 세예라자드(아래) 매장 ⓒ스카이데일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내에 남성고객 전용 매장 중 특히 눈에 띄는 곳은 피규어(관절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다양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는 인간·동물 형상의 모형 장난감) 전문 매장인 ‘볼케이노’였다.
장난감과 중년남성, 이들 둘 사이의 거리는 다소 멀 것이라는 기존 편견과 달리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큰 손 고객’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었다. 매장 직원은 “중년 남성들이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마블(미국 만화책 출판사)’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이다”며 “회원들한테는 희귀한 제품이 입고될 경우 따로 문자로 연락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피규어 전문 매장 ‘피규어뮤지엄 W’ 역시 중년 남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매장은 얼마 전 300만원이나 되는 피규어 제품이 팔려 조명을 받기도 했다. 특히 당시 제품을 구매한 주인공이 50대 남성이라는 사실에 관심은 더욱 남달랐다.
‘피규어뮤지엄 W’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리샵(음향기기 전문 매장) ‘셰에라자드(schezade)’는 통 큰 구매력을 지닌 중년남성들 찾는 곳이다. 이곳은 이어폰, 헤드폰, 오디오 등 고급 음향기기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고급을 지향하는 이곳의 제품들은 가격대부터 범상치 않다. 300만원대 이어폰과 500만원대 헤드폰, 2억원이 넘는 오디오 등 그야말로 ‘억’소리 나는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문정업 세에라자드 청담지점 부지점장은 “고객들이 주로 찾는 오디오 제품의 가격대는 보통 4~5000만원 정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반적으로 음악 관련 일을 종사하는 사람들이 구매하는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혼자서 음악 듣기를 즐기는 의사 등 전문 직종의 중년 남성들이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옷차림도 품격”…해외 명품 혹은 최고급 원단 맞춤양복 찾는 ‘멋쟁이 아재’ 증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역시 경제적 여유를 갖춘 중년 남성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기자가 찾았을 때도 한창 쇼핑에 열중하고 있는 나이대가 지긋한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톤 정장에 줄무늬 행거칩으로 멋을 낸 이들에게 다가가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지에 대해 물었다.
이름 공개를 거부한 중년의 남성은 기자에게 ‘언니야’란 호칭을 계속 사용하며 친근한 ‘아재’ 이미지를 풍겼다. 그는 “명품 브랜드가 비싸긴 하지만 확실히 질감이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다”며 “정장 한 벌에 500만원을 훌쩍 넘는 이탈리아 고급 정장 브랜드 ‘키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 패션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중년 남성들은 맞춤양복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체형이나 피부톤에 맞춰 제작된 양복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주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인터컨티넨탈 호텔 지하에 위치한 맞춤양복 전문점 골드핑거 ⓒ스카이데일리
최근 패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바로 맞춤양복 전문점이다. 과거에는 ‘양장점’이라 불리며 다소 촌스러운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맞춤양복 전문점은 한층 고급스러운 양복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맞춤양복만 28년 간 제작해 왔다는 이정구 골드핑거 사장 역시 최근 트렌드 변화에 대해 체감하고 있었다. 이 씨는 “아직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몸에 딱 맞는 사이즈를 선호하는 중년층 남성들이 늘고 있다”며 “기존에는 대부분 맞춰 주는 대로 옷을 입는 편이었다면 지금은 자기 개성을 중시하는 손님들이 늘어나 개개인의 요구사항(체형, 피부색 등)에 맞춰서 양복을 재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복 색감도 위아래를 전형적인 컬러로 통일하지 않고 ‘와인색’같은 컬러로 믹스매치 하는 등 화려한 색감을 선호하는 분들도 늘고 있다”며 “과거에는 부인들이 사주는 옷만 입었던 남성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개성을 추구하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단골손님 중에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의 CEO나 정치인들이 더러 있다”며 “하지만 손님의 신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긴 어렵다”고 귀띔했다.
이 씨에 따르면 맞춤정장의 가격대는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고급소재로 제작된 제품은 1000만원을 넘어선 경우도 있었다. 해외 명품 브랜드 보다 비싼 셈이다. 하지만 보통의 손님들은 200~300만원대의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기업 오너나 고위 임원 등과 같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손님의 경우에는 500~600만원 선의 양복을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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