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문화지평이라는 단체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도심 역사문화 답사를 주로 하는 비영리단체다. 사찰음식 체험, 전통주 빚기 등 전통문화 체험, 박물관·미술관·연극 관람 등도 한다. 이름 그대로 문화의 지평을 넓히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답사에는 역사문화 해설사가 있어야 한다. 해설사 없이 경복궁에 가면 ‘남의 빈집에 다녀온 것일 뿐’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공간과 문화재, 시층(時層)에 대한 해설이 없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지 ‘보이는’ 수준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문화지평 답사에는 언제나 해설사를 대동한다.
한이수 역사문화해설사를 만난 것은 2018년 8월 진행한 ‘금요야행 - 정동이 품은 역사와 근대의학의 흔적’ 때다. 한 해설사는 당시 답사객으로 참여했다. 해설은 이필용 역사문화해설사가 맡았을 때다. 평일은 회사 업무 때문에 일반적으로 야행을 한다. 이날 야행에는 근처에 근무하고 있는 대한항공 홍보실 이종욱 차장도 함께 했다. 이 차장은 회사 출입기자들에게 정동과 덕수궁을 해설할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갖춘 준비된 해설사다.
이날 야행이 끝나고 치맥으로 여름밤 무더위와 갈증을 달래다가 정기적인 야행 프로그램을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중구청이 만들어서 대박을 친 ‘정동야행’도 없어진 마당에 야행에 대한 향수가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 해설사와 이 차장, 필자 세 명이 야행팀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이후 한명, 두명 지인을 초대해서 지금은 모두 9명이 됐다. 이름 하여 ‘낭만야행’팀이다.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사람들 모임이다.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연령과 직업이 다양하다.
낭만야행팀 송년 답사는 교보문고서 장통교까지
그동안 수차례 야행을 했고 최근에는 지난 9일 송년 월요야행을 했다. 교보문고 앞에서 만나 청계천을 걸으며 서울의 시층을 이야기 했다. 낭만야행팀은 내부에서 해설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이날은 한 해설사가 맡았다. 평일 야행은 오후 7시에 시작해 한 시간 정도 걸으며 해설을 듣다가 저녁 식사를 하는 형식이다. 때로는 식사를 먼저하고 야행을 하기도 한다.
한 해설사의 월요 낭만야행 해설이 시작됐다. 교보문고 앞에는 비전이 하나 있다. 비전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비석 정식 명칭은 ‘대한제국이황제보령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송(大韓帝國李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頌)’이다. 너무 길어서 듣기만 해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글씨는 황태자(뒤에 순종)가 썼다. 비문은 의정 윤용선이 짓고 글씨는 육군부장 민병석이 썼다.
비문 내용은 “원구에서 하늘에 제사 올리고 황제가 되었으며 나라 이름을 ‘대한’이라 하고 연호를 ‘광무’라 한 사실과 1902년이 황제가 등극한지 40년이자 보령이 망육순(51세)이 되는 해이므로 기로소에 입사한 사실을 기념해 비석을 세운다”고 적고 있다.
기념비전 현판 글 역시 영친왕의 것이다. 우측 상단에 ‘睿筆’(예필)은 황태자(왕세자)의 글이란 의미다. 임금이 쓰면 어필(御筆)이다. 기념비전 앞 돌로 만든 만세문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떼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광복 후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만세문 뿐 아니라 경희궁 홍화문 등 서울 곳곳에 일제의 역사 유린이 산재해 있다. 만세문 글씨는 순종의 이복동생인 영친왕이 여섯 살 때 썼다고 전해진다.
기념비전 앞쪽에는 사각형 돌이 하나 박혀 있다. 서울과 지방의 거리를 재는 기준점인 도로원표다. 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동상 자리에 있던 것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상징적인 도로원표는 동화면세점 앞에 만들어 놨다. 야행팀은 기념비전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 소라탑이 주는 부조화...‘똥탑’ 오명까지
한 해설사는 청계천 초입 소라모양 조형물 앞에 일행을 세웠다. 청계천 소라탑이라고 부르는 클레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라 공공설치 미술작품이다. 한번도 우리나라에 와 본 적이 없는 작가에게 청계천의 시발점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맡겼다니! 소라, 골뱅이, 심지어는 ‘똥탑’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작가의 변명이 궁색하다. 처음에는 인도양 조개라고 했다가 한강 지류 청계천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비난이 일자 슬쩍 다슬기 형상이라고 얼버무렸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논다. 공공미술이 가지는 장소성이 매우 부족한 작품이다.
공공설치 미술은 작품과 공간의 상호 어울림과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편한 마음을 들게 해야 좋은 작품이다. 37억원 가량 예산이 들어간 이 작품은 KT가 비용을 대고 서울시에 기중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작품이 청계천 복원공사가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치워질 것으로 전망한다.
야행팀은 모전교 다음 청계천 두 번째 다리 광통교 아래서 멈췄다. 한 해설사의 해설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다리다. 그런데 다리 석축 부재를 보니 문양이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다름 아닌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의 능인 정릉에서 뜯어 온 석재다.
광통교·정조대왕능행반차도에 숨은 재미난 역사
원래 광통교는 흙다리(토교)였다. 비가 많이 올 때면 청계천이 넘치면서 광통교가 무너져 인명피해가 났다. 의정부에서 돌다리(석교)를 세울 것을 건의하자 태종(이방원)은 옳거니 하고 계모인 신덕왕후 능의 부재를 이용해 만드는 데 썼다. 이에 앞서 태종은 도성내 무덤을 쓰지 않는다는 법을 들어 정동에 있던 정릉을 성북구 정릉동으로 천장시켰다. 부재는 천장을 하고 남은 것들이다.
신덕왕후와 태종은 정치적 정적이었다. 조선 건국에 공이 많은 태종이었지만 신덕왕후와 정도전이 편을 짜는 바람에 세자가 되지 못했다. 이런저런 불만이 쌓인 태종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세자 방석 등을 제거했다.
형 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승리한 뒤 왕위에 오른 태종은 눈엣가시 같았던 신덕왕후 능을 옮기고 남은 석재로 광통교를 세웠는데, 자세히 보면 일부러 거꾸로 쌓은 것들이 눈에 띈다. 그만큼 신덕왕후를 저주했던 것이다. 해설사의 해설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뻔한 역사의 에피소드다. 참고로 청계천 다리는 모전교에서 무학교까지 모두 22개다.
이번 야행의 마지막 해설지는 ‘정조대왕능행반차도’ 벽화다. 2005년 장통교 아래 설치된 높이 2.4m, 길이 192m, 가로세로 30cm의 세라믹 자기타일 5,120장을 사용한 세계최대, 최장 도자벽화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 묘가 있는 화성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담았다.
당시 도화서에 있던 단원 김홍도 지휘 아래 그려진 것으로 단원의 해학이 깨알 같이 숨어 있다. 벽화에는 1779명의 인원과 779필의 말이 그려져 있다. 혜경궁 홍씨가 탄 가마와 정조의 말을 찾다보면 어느새 192m의 긴 벽화를 다 보게 된다. 정조의 두 누이인 청연군주와 청선군주가 동행했고 우의정 채제공이 따라 나섰다. 정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만 덩그렇게 있는데, 지존을 그리지 않는 예법에 따른 것이다.
답사의 종착역은 맛집...종로 관철동 <삼일전집>
늘 그렇듯이 답사의 종착역은 맛집을 찾아 스며드는 것이다. 원래는 종로3가 먹자골목에 잔뜩 들어서 있는 굴보쌈집을 가려 했지만 미처 도착하지 못한 일행 때문에 근처 <삼일전집>으로 스몄다. 마침 구석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예약석처럼 준비돼 있었다. 옥호(屋號)는 삼일빌딩 인근이라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삼일전집>의 대표안주는 모듬전이다. 동그랑땡, 호박전. 두부전, 깻잎전, 동태전, 새송이전과 김치찌개가 함께 나온다. 전은 두 번에 걸쳐 제공되는 데 동그랑땡, 호박전, 두부전이 먼저 나오고 소쿠리 바닥이 슬쩍 보일 때쯤 깻잎전, 동태전, 새송이전을 담아 온다. 전을 부치는 시간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두 번에 걸쳐 나오면 따뜻한 전을 맛 볼 수 있어 좋다. 또한 부쳐 놓은 것을 데워 내지 않는다는 무언의 표시이기도 하다.
전(煎)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를 묻혀서 지진 음식을 총칭하는 말이다. 전유어(煎油魚), 저냐, 궁중요리에서는 전유화(煎油花)라고도 했다. 전통적인 식탁에서 전은 한 가지만 내지 않고 세 가지나 다섯 가지를 준비한다.
전에는 막걸리가 화학공식처럼 뇌리에 박힌 지 오래다. 이날은 서울막걸리 대신 지평막걸리와 마리아주를 했다. 짧은 답사였지만 저녁 밥 때를 넘긴지라 시장기가 심했다. 허겁지겁 몇 순배 돌아간 후에야 여유를 찾고 수다가 이어졌다. 낭만야행팀의 아듀 2019년 답사는 이렇게 끝났다.
서울은 넓고 깊고 그윽한 도시다. 한 왕조와 국가의 수도로써 600년이 훌쩍 넘은 시층을 보유한 역사의 보고다. 차를 타고 다니면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걸으면 보인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 인문 소양을 윤택하게 한다. 그리고 답사를 마치면 길 끝에는 맛집이 있다. 그래서 ‘맛’있는 ‘동’네 ‘산’책, ‘맛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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