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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란 의미가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바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자체가 통일이라 생각해요. ‘평화도 계속 연습해봐야 할 수 있다’고 누군가 그랬어요. 탈북민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부터 우리 안에 일어나는 작은 통일의 시작이 아닐까요.”
신분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대한민국… 그러나 또 다른 편견의 속박
한 주간 이어지던 지독한 한파가 차츰 그 위세를 가라앉히던 겨울 한복판의 어느날 오후, 따뜻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종로구 혜화동을 찾았다. 남북통일의 작은 씨앗이 되고자 작은 사랑부터 실천하는 비영리단체 엄에스더 유니시드 대표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비영리단체 유니시드가 인터뷰의 대상이지만 코로나 감염예방책의 일환으로 오늘은 대표만 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수줍은 듯 발간 뺨을 하고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엄 대표의 첫 인상은 외면과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1년 전 다른 언론사들과 했던 인터뷰의 소회를 밝혔다. 당시 엄 대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보다 ‘탈북민’을 강조하고 미화시키는 등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가 송출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심스러운 그의 모습에 기자는 엄 대표의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천천히 대화를 나눴다. 우선 탈북의 계기와 과정을 물었다.
“저는 2004년에 탈북을 처음 시도했어요. 하지만 중국 베이징에서 발각돼 북송됐죠. 2006년에 다시 탈북을 시도했고, 2008년도에 처음 한국에 왔어요. 탈북 과정은 보통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우리들이 처음 밟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난민으로 탈북민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신분의 자유가 없어요. 그래서 한국이나 미국, 영국 등으로 자유를 찾으러 가는 것이죠.”
엄 대표가 말한 ‘신분의 자유’가 기자의 마음에 와 닿았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떠나온 엄 대표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편견이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받은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한 사회의 일원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전히 탈북민 신분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두고 있어요.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탈북민 자살률이 1위라는 통계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통계보다 3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전해 들어 가슴이 너무 아팠죠.”
“북한을 탈출하고자 결심한 사람들의 유형이 다 달라요. 정치형, 가족형, 생계형, 자유형 등 여러 유형이 있죠. 그런데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묻기를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왔으면 영리사업을 할 것 같은데 왜 비영리사업을 합니까’라고 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왜 살아가는가, 왜 나에게는 탈북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걸까, 왜 나는 북한 함흥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서울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면서 또 다른 이름과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이런 질문을 통해 찾은 답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즉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에요. 탈북 이후 북에 있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삶의 의욕을 잃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여기서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가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됐죠. 이 답을 실천하기 위해 저는 여기서 대한민국을 알아가고, 배우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편견을 없애고 함께하는 것… “그 순간이 평화이자 통일의 시작이죠”
자유를 가진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탈북민에게는 ‘북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다는 엄 대표의 얘기에, 그 꼬리표는 그들이 스스로 단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자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했다. 그러면서 ‘유니시드’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통일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되고자 하는 그의 강인함에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시드란 ‘평화통일을 위한 작은 씨앗’이라는 뜻이에요. 통일이란 의미에 대해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제가 바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자체가 통일이라 생각해요.”
유니시드의 슬로건은 ‘나눔과 대화의 한반도를 만들자’이다. 2014년 7월 유니시드를 처음 창단했을 때는 엄 대표를 포함해 탈북민 4명이 함께 시작했다. 회비를 조금씩 내서 도움을 주는 정회원은 현재 105명 정도이며 평소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함께 활동하는 준회원도 많이 있다고 엄 대표는 설명했다.
“유니시드의 설립 목적자체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의 장을 형성하는 거예요. 제가 유니시드를 설립하자고 제안했을 때 창단 멤버들이 ‘나도 대한민국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베푸는 삶의 비전을 함께 이뤄보고 싶다’고 뜻을 함께 해줬어요.”
4명이서 시작한 작은 씨앗이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꽃으로 활짝 핀 듯 했다. 엄 대표에게 유니시드가 실천하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물었다.
“유니시드는 나눔·문화·장학사업 세 가지를 진행하고 있어요. 나눔 사업의 경우 서울역 노숙자들, 쪽방촌에 거주하시는 노인들께 유니시드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전해드려요. ‘오순도순 도시락 나눔’인데, 오순도순이라는 뜻처럼 남북 청년들이 도시락 반찬을 같이 만들면서 평화 통일을 경험해보자는 취지예요.”
엄 대표는 사실 2014년 유니시드 설립 직후 도시락을 나눠드렸을 때 어떤 분이 ‘빨갱이가 주는 건 안 먹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은 엄 대표를 알아보고 달려와 반기면서 주머니에 사탕 한 알이라도 있나 뒤적이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이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면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밝혔다.
“문화 사업의 경우 ‘차이 좁히는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남북에 대한 이론적 지식보다는 ‘너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 가자. 그 차이를 알아보자’는 취지죠. 서로의 공통점과 다름을 알아야 인정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각자 마음에 내재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싶었죠.”
“다양한 이유로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말씀드렸듯, 가장 큰 이유는 ‘신분의 자유’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탈북민을 그저 ‘배고파서 탈출한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토크 콘서트를 통해 남북 사람들이 만남의 시간을 가지면 서로의 인식과 편견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우리 안에 잠재된 편견과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다양한 것임을 일깨워주고 싶었죠.”
유니시드는 나눔사업과 문화사업 외에 장학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장학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엄 대표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수혜를 받은 적이 있어 그 고마움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엄 대표는 당시 ‘나도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첫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장학사업은 유니시드 회원이 십시일반 모은 금액을 전달하고 있다. 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대단한 액수는 아니지만 1년에 5, 6명 정도의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장학금 지급은 사회적 공익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유니시드에서 장학금을 지원 받았던 한 학생이 졸업 이후 첫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받은 것을 다시 유니시드 장학금으로 후원을 한 거예요. 그때 느낀 점은 ‘받았던 사람에서 나누는 사람’이 되는 선순환에 참 감사하고 뿌듯함을 느꼈어요.”
말 언저리마다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말하는 엄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향후 비전을 물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 생각으로 말씀드렸지만 제가 바라는 점은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인정받아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길 바라요. 종교가 다르다고 배척하고, 정치적 성향이 달라 배척하고, 출신이 다르다고 배척한다면 차별과 대립이 끊이지 않아 결국 사회가 공존할 수 없겠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지속해서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고 도울 거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꿈은 훗날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유니시드처럼 비영리단체뿐만 아니라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를 잇고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내일 죽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엄 대표와의 인터뷰 시간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을 때, 하늘에서는 하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엄 대표는 창문을 등지고 있어 내리는 눈을 보지 못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잠시 담소를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난 엄 대표는 하얗고 고운 눈을 보곤 “저 눈을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처음에 약간은 불안해 보였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따뜻하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 돼 있었다.
[김찬주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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