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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방지법, 시행되자마자 위헌심판 청구
/음주운전 가중처벌 윤창호법 이미 위헌결정
/민식이법·중대재해처벌법도 위헌 가능성 커
/대중 분노에 편승한 포퓰리즘 입법이 문제
/처벌강화 손쉽지만 결국 국민에 부담 전가
/위헌입법 발의 의원에 정치적 책임 물어야
이달 10일부터 소위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등이 시행되면서 인터넷 검열 논란이 불거졌다. 이 법은 카카오톡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나 웹하드 같은 특수유형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성착취물의 유통을 방지하고 이를 위한 기술적ㆍ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개정 전 법률도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한 경우에는 유통을 방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정 법률에서는 '명백히' 문구가 사라져 버렸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최대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사실 카카오같은 대기업은 과태료 500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강화된 법에 따른 삭제 조치를 소홀히 했다가 시정명령이라도 받게 되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 CEO가 국정감사에 불려갈 일이 걱정될 것이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필터링을 강화한 때문인지 단순히 살색 빛깔의 물체나 신체 일부가 노출된 사진만 올렸는데도 벌써부터 경고 문구가 떴다고 한다.
그래서 ‘빅브라더 사회’가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데 강용석 변호사의 가로세로연구소가 나서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그에 앞서 이미 3월경에 사단법인 오픈넷에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가로세로연구소의 주장은 사전검열의 소지가 있어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고 텔레그램같이 외국에 서버를 둔 통신망은 정작 규제 못하고 국내사업자만 불평등하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오픈넷의 주장도 성착취물 유통을 막자는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플랫폼이 이용자의 모든 통신 내용을 사전에 모니터링해서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n번방 방지법은 2020년 6월경 20대 국회 마감을 앞두고 급하게 통과됐지만 그래도 1년 6개월이나 유예기간을 거쳤는데 시작하자마자 위헌 시비에 휩싸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중의 분노에만 편승해 포퓰리즘적인 졸속 입법을 했기 때문이다. 위헌 청구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법률은 2020년 5월 4일 발의돼 불과 보름만인 5월 20일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이 개정된 정보통신망법도 2020년 3월 23일 발의돼 두 달 만인 같은 날 통과됐다. 입법 자료를 찾아보면 국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없고 심사보고서에도 대표발의자의 제안 이유만 있을 뿐 대체토론이나 찬반토론의 요지조차 기재된 것이 없다. 이러니 대체 무슨 논의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20대 국회 폐회를 앞두고 제대로 된 심사도 없이 졸속 처리됐다는 것이다.
이런 졸속 입법의 부작용은 지난달 25일 헌법재판소가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윤창호법’이라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 법률에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윤창호 씨 사건으로 음주운전을 엄벌하자는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종전에 3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돼야 가중처벌하던 것을 2회만 적발돼도 가중처벌하고 형량도 2배 이상 올려 버렸다. 이 법도 윤창호 씨가 사망하자 불과 한 달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됐는데 역시나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달려있지 않다. 그나마 음주운전 방지에 효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26일 보도된 MBC 뉴스에 따르면 윤창호법 시행 직후 음주운전 사고가 잠깐 감소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인명 사고 없어도 음주운전 2회 적발만으로 실형까지 선고되는 사례가 당연히 늘었다는데 이 사람들이 사실은 보통의 시민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번 구속되고 나면 직장과 사업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볼 일이 절대 아니다. 결국 이 법이 적용된 형사 사건에서 담당판사가 나서서 직접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했다. 구체적인 사정을 일체 불문하고 무조건 단 2회 위반 횟수만 갖고 가중처벌하는 것은 비례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윤창호법 위헌 시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 종전에는 1년 이상 징역에 처했던 것을 최고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개정한 것도 큰 문제다. 원래 교통사고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형량이 5년 이하의 금고형으로 낮다 보니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특가법으로 가중처벌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의범도 아닌 과실범에 대해 형법상 고의에 의한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버금갈 정도로 형량을 올린 것은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시속 30km 이상 운전해 어린이를 사망케 한 경우에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한 소위 ‘민식이법’도 마찬가지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나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 사건은 운전자에 대한 비난이 워낙 커서 그런지 아직은 위헌심판 청구 소식이 들리진 않는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시행 전부터 위헌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정된 이 법은 우선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받는 대상자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으로 모호하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둘 중에서 누가 처벌받고 누가 처벌을 안 받는지, 아예 둘 다 처벌된다는 것인지 부터가 헷갈린다. 그래서 자칫 사고 한 번에 사업주뿐 아니라 주요 경영진이 전부 처벌받게 돼서 회사가 아예 문을 닫는 것이냐는 우려가 크다. 그리고 너무 중한 형을 부과해 비례원칙 위반 우려도 크다. 법 위반 시 회사에 대해서도 최고 50억원까지 벌금이 부과되고 실손해의 최고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대재해를 유발한 기업은 엄벌해야 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 법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 사건에 분노한 민심에 편승해 졸속 처리됐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게 영국이 13년 걸린 법을 우리나라는 발의부터 의결까지 불과 7개월만에 끝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곳곳에 위헌성이 도사리고 있고 실제 적용 사례가 발생하면 곧바로 위헌심판이 청구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중의 분노에 편승한 처벌 강화 입법이 국회의원에게는 손쉬운 해결책이겠지만 어렵게 헌법재판을 청구해서 위헌으로 결정받기까지 모든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에 전가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법을 윤창호법, 민식이법, 김용균법처럼 피해자 명칭이 아니라 대표발의자 명칭으로 부르는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본다.
종합부동산세법이나 소위 ‘임대차 3법’의 핵심인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태인데 이를 발의한 의원들의 이름으로 그 법을 불러야 나중에 그 의원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래야 포퓰리즘 입법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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