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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6년 서울미래유산 탐방 답사를 처음 진행한 경험이 있다. 서울시와 서울신문, 그리고 필자가 대표로 있는 인문 공동체 문화지평이 공동으로 주관해서 20개 코스를 만들어 답사를 했다.
서울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시는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세대에 전할 100년 후 보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그동안 본 지면을 통해 서울미래유산 식당을 꾸준히 소개했고 이번 칼럼에서는 새로 선정된 곳을 추가로 싣는다.
문인들이 사랑하는 한정식 식당
인사동에 있는 ‘선천집’은 1971년 개업한 전통 한식당이다. 창업자 박영규 사장은 고 황혜성 교수한테 궁중음식을 사사했다. 궁중음식연구원 출신이란 의미다. 19세기 말 인사동 일대는 교회, 인쇄소, 출판사, 요릿집, 병원 등이 들어서고 신식 동네로 변해갔다.
천도교 수운회관, 승동교회, 태화관 터, 해정병원 등은 그 시절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1970년대 들어서는 인사동에 미술 붐이 일면서 동산방, 선화랑, 가나화랑, 노화랑 등이 속속 문을 열었다. 인사동이 명실공히 문화예술인의 거리가 되면서 샛길 안쪽 한옥에 전통적인 분위기의 음식점들이 들어섰다. 예술인은 사천집, 언론인은 경향식당, 가난한 화가들이 잘 가는 사동곰탕, 부산식당 등도 이때 들어섰다. ‘선천집’은 이 중 문인들이 자주 찾는 단골집이었다.
선천이란 상호는 박 사장의 고향인 평안북도 선천에서 따왔다. 박 사장은 자신의 음식철학을 “음식의 기본을 황혜성 선생님께 배웠다. 특히 선생께서 강조했던 것은 음식의 기본이 되는 간이었다. 조미료에 의지하지 않고 소금과 재료 본연의 맛으로 음식을 내야 한다는 철칙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선천집의 메뉴는 간단하다. 한식과 한정식 코스 메뉴와 불고기, 낙지볶음, 파전 등 8가지 일품요리가 전부다. 김치는 생새우나 생낙지를 넣어 맛을 내고 감칠맛을 더한다. 가정식을 내놓는 집이라면 된장, 김치 등 양념이 되는 음식을 직접 만들고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 요리 원칙이다. 찌개에도 조미료를 넣지 않고 조갯살과 표고버섯, 북어 등으로 국물을 내 시원한 맛을 낸다.
선천집은 정치인과 문인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황석영 작가는 장편소설 ‘심청’의 발간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선천집을 찾았다가 빈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다.
창업 77년 3대 가업을 잇는 노포
을지로 ‘순흥옥’은 1949년에 개업해 3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꼬리찜 전문점이다. 1945년 시어머니가 현재 자리에 창업해 운영해 오던 것을 1976년 김춘자 씨가 주방을 물려받았다. 2000년부터는 5대 독자 이종화 씨에게 3대 대물림을 했다. 상호 ‘순흥옥’은 창업주가 ‘순조롭게 흥하라’는 기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순흥옥은 꼬리찜과 꼬리곰탕 두 가지 음식만 판다. 꼬리찜은 큰 대접에 삶은 꼬리 세 토막과 감자 한 덩이를 담고, 데쳐 둔 대파를 수북하게 얹은 다음 끓는 꼬리 국물로 7~8차례 토렴해서 내놓는다.
상에 올리기 직전 반 토막으로 잘라서 데친 파를 먹기 좋게 가위로 숭덩숭덩 자른다. ‘파범벅 꼬리찜’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독특하다. 김춘자 대표는 “2~3시간 삶으면서 고기를 손으로 만져보면 느낌이 온다. 너무 삶으면 뼈가 쏙 빠져 버려 모양도 안 나고 살이 너무 퍼져서 맛이 없다. 손으로 만져 적당하다 싶은 때 건져서 식혀 뒀다 토렴한다”고 조리 비법을 말한다.
3대째 가게를 운영하는 이종화 씨는 2010년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해진 가업을 이어받았다. 요리는 어머니와 주방 직원이 하고 본인은 매장관리를 하며 요즘 세대에 맞게끔 조리법을 변경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충무로 영화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나 최근에는 별미를 찾는 젊은 고객층으로 고객층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여름철 보양식 꼬리곰탕 유명
서소문 역사공원 근처에 있는 ‘중림장’은 1972년 개업해 2대째 운영 중인 설렁탕 전문점이다. 수원 출신인 안영자 씨가 생선도매업을 하다가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중림장을 개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중림동에는 기차를 통해 지방 각지에서 집하된 수산물을 파는 수산시장이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생기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큰 수산시장이었다.
중림장의 설렁탕은 남대문식으로 육수에 하얀색이 감돌고 기름기가 많은 게 특징이다. 2대 주인인 김경호 사장은 “색깔은 뽀얀 우윳빛이 나지만 고기가 다 들어가면 맑은 색으로 바뀌게 된다. 사골 외에 도가니라든지 상급의 양지라든지 소꼬리라든지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면서 모든 고기와 뼈의 국물이 같이 스며들고 양지에서 나오는 육즙도 같이 스며들어 한꺼번에 우려내기 때문에 국물 맛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림장을 맡기 전에 여행업에 종사했었던 김 씨는 설렁탕, 도가니탕, 수육만 있던 중림장 메뉴에 꼬리탕을 추가했다. 꼬리탕은 맛이 없다는 모친을 1년 반 동안 설득해 새 메뉴로 추가했는데, 지금은 여름철에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가 됐다.
여름날 시원한 한 끼 새콤한 초계탕
‘평래옥’은 1950년 개업해 3대째 운영되고 있는 초계탕 음식점이다. 초계탕은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추운 겨울에 먹던 별미 요리이다. 조리법을 살펴보면 닭고기를 삶아 식힌 후 가늘게 찢어 차가운 메밀국수에 고명을 얹는다. 번거로운 조리법 때문에 초계탕은 늘 먹을 수 있던 음식은 아니었다. 궁에서도 여름철에 먹던 차가운 보양식으로 여겨졌다.
평안도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이름 붙은 평래옥(平來屋)은 1950년 평안도 출신의 김응곤이 서울로 내려와 명동 중앙극장 건너편에 음식점을 내면서 시작됐다. 1997년 임경란 씨가 이모할머니 음식점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임 씨는 9년간 어머니를 도우면서 비법을 전수받았고 1997년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식당을 물려받았다. 임 씨는 “육수는 음식 맛의 바탕이지요. 하루 두 번 저와 남편이 직접 솥 옆에 지켜 서서 육수를 고아내요”라며 육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벽 1시에 퇴근하고 새벽 5시 40분에 출근해 닭고기를 삶고 반찬을 준비하는 부지런함이 있는 곳이다. 1970년대에는 실향민들 모임 장소로도 많이 이용됐다고 한다. 실향민들의 애환과 이북 음식 맛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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