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외려 국가 부흥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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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기의 한반도 테라포밍

영일동맹의 교훈, 조선과 같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
외교안보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 강력한 동맹구축만이 살 길
러-우 전쟁 등 국제적 혼란을 국운 융성의 계기로 삼자

박진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3 09:40:00

▲ 박진기 칼럼니스트·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K-정책플랫폼 연구위원

20세기 초반까지 제국주의가 국제관계와 세계정치의 중심이 됐다. 물론 중심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대영제국의 영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아직 영국의 왕을 형식상 군주로 하는 14개국을 포함한 56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이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대영제국은 대규모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압도적 군사력으로 줄루전쟁, 보어전쟁 등 잔혹한 무력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초 목적이 산업혁명으로 생산되는 막대한 공산품의 시장을 넓히는 것이었던 만큼, 식민지 현지의 시장경제 발전과 의회 시스템 구축, 그리고 영국식 교육을 받은 식민지 엘리트 양성도 함께 추진했다.

인도의 간디 역시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을 졸업했으며, 군에 자진 입대해 인류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 중 하나인 ‘보어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왜 아직까지 영연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영연방에 포함돼 있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과거 영국이 유럽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연합(EU)에 가입할 당시, 영연방 국가들은 자신들의 혜택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이후 2020년 영국이 EU에서 탈퇴했지만 이미 영국의 위상은 한참 손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이와 더불어 대영제국의 영광과 영연방의 상징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최근 서거가 일부 국가의 영연방 탈퇴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나비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영국과 조선의 만남, 거문도 점령

9월20일 전남 신안군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년 문화의 달 행사의 일환으로 ‘산다이’를 주제로 한 ‘섬 문화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 산다이는 무슨 말일까?

1885년 대영제국 해군은 러시아제국의 남하를 막고자 우리의 거문도를 점령(1885.3~1887.2)했다. 이때부터 거문도는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으로 불렸다.

이 기간 중, 영국 해군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유곽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주민들은 왜 군인들이 꼭 일주일마다 한 번씩 상륙해 술을 마시는지 궁금해 물어봤다고 한다. 이때 “오늘은 선데이(Sunday)”라는 대답을 들은면서 이것이 황금을 의미하는 노다지(노-터치, No-Touch)와 유사하게 구전되면서 ‘산다이’는 곧 술 마시고 노는 날 또는 장소로 전래됐다.

만일 대영제국이 1902년 영일동맹으로 조선에서의 일본제국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고 식민지로 삼았다면 지금 한국인들은 일본이 아닌 영국을 증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20세기 초반 한반도는 누가 차지하느냐의 시기였을 뿐이다. 지금도 거문도에는 ‘전함 알비온’ 승조원 포함 당시 주둔 중 사망한 ‘영국군의 묘지’가 남아 있다.

나마무기 사건과 영·일동맹, 일본제국의 시작

거문도 점령 이전인 1862년 8월 사쓰마 번주(藩主) 히사미쓰 일행이 교토를 방문한다. 이미 사무라이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기에 번주의 행차는 더 이상 경외(敬畏)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마침 같은 길을 통과하던 영국 관광객들이 행렬에 끼어들자 호위 사무라이가 즉시 영국인 한 명을 베어버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대영제국은 배상금 10만파운드를 요구하며 전함 7척을 동원해 사쓰마의 거점인 가고시마항(港)을 공격해 승리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양국은 상호협력관계로 발전해 나가면서 ‘영일동맹’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은 러시아제국을 패망으로 이끈 러일전쟁, 특히 발틱함대를 궤멸시킨 ‘쓰시마 해전’의 뒷배경이 되기도 했다.

당초 대영제국의 영광은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부터 시작됐다. 놀랍게도 그녀는 1581년 해적왕이던 프란시스 드레이크를 해군 준장으로 임명한다. 해적 드레이크는 다름 아닌 ‘에스파냐(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몰락시킨 ‘칼레 해전(1588년)’의 주역이다.

20세기 초까지 유럽 국가들은 해군과 해적의 경계선에 있는 ‘사략선(私掠船·privateer ship)’을 이용해 국익을 증진했다. 일본 역시 ‘카이조쿠슈(海賊衆)’를 ‘관제적(官制的) 해적’으로 활용했다. 사략제도는 우리에게는 이준 열사 덕분에 알려진 1907년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완전 금지됐다.

조선의 지배층들이 중화사상과 모화주의에 빠져 동족 대다수를 ‘노예(노비)’로 만들어 500년간 정권을 유지하는 동안, 서구 열강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구축하고 해외로 뻗어 나가며 제국을 건설하고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불과 110여년 전 국권을 잃은 이유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다.

같은 시기 영국의 침략을 받았던 조선과 일본, 그러나 두 국가의 행보는 달랐다. 한 나라는 제국으로 성장한 반면 한 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몰락과 더불어 1,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오히려 혼란의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례를 토대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번에는 우리가 동북아 최강의 국가로 거듭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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