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달인들아,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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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막말과 품격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1-30 00:02:40

액체를 담는 병은 대부분 목이 좁다. 이를 비유해 차선이 합쳐져 교통혼잡이 극심할 때 ‘병목현상’이라고 부른다. 병은 입조심을 표현할 때도 주요 소재로 쓰인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넘쳐도 액체를 담아둔 병처럼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는 의미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과도 같은 맥락이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대문이란 의미의 구화지문(口禍之門)도 이와 마찬가지다.

옛 선현들은 입이 열렸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많이 남겼다. 세상을 살면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운명까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가리켜 ‘입살이 보살’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살(煞)’은 사람을 해치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말한다. 험한 말을 자주 하면 그 사람의 운명도 기울어져 결국 소리대로 간다는 뜻이다. 말하는 대로 되니 좋은 말만 가려서 하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해하려는 의도로 막말을 넘어, 저주에 가까운 망언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파는 물건 중에는 ‘저주인형’이란 게 있다.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그만 인형인데 옛날에는 이것을 ‘제웅’이라고 불렀다. 대못으로 찔러가며 온갖 험담을 쏟아 내고 인형을 부서뜨리면 저주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주술적인 행태는 역사에도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장희빈이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후 활을 쏴 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저주의식’처럼 혼자서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연하게 막말과 저주를 퍼붓는 경우다. 이들의 단어 선택을 보면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최대한 아픈 상처를 입히고 자신은 SNS나 언론에 일약 스타로 떠오를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막말을 접하게 될 사람들의 기분 따윈 안중에도 없다. 하수구 오·폐수보다 못한 저질스러운 말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무책임하게 배설해 놓고 나선 적당한 변명으로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달 중순 윤석열 대통령이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할 때, 대한성공회 소속의 한 신부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라고 해 논란이 됐다. 한술 더 떠 천주교 대전교구 모 신부는 윤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사진을 합성해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막말이라고 하면 정치인 또한 뒤지지 않는다. 21일 인천시의회 한민수 시의원은 행정사무감사에서 학교에 근무하는 고령 노동자를 언급하며 “81살이면 돌아가실 나이인데 청소할 수 있나”라고 발언해 윤리와 상식의 선을 한참 넘어섰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캄보디아 소년을 안고 있는 것을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 내뱉고 아직 사과 한마디 없다. 지난 폭우 때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수해복구 자원봉사 현장에서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허공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독기 서린 말은 상대방뿐 아니라 전해 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위력을 가진다. 1주일이 멀다 하고 사회지도층이란 사람들이 쏟아 낸 시정잡배보다 못한 악의적인 막말이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은 상황에서 이들이 흘려놓은 말은 국민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든다. 이성과 인성까지 팽개치며 막말을 하는 것을 볼 때면, 이들의 뇌 구조가 궁금할 뿐이다.

말은 사고의 표현 방식이자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거울이다. 그중에서도 공인이 하는 말은 전파나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 그럼에도 이들의 막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거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과 같은 집단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애먼 사람들만 분노와 좌절감을 경험하고 화병이나 정신 질환까지 얻기도 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 사람의 품격을 발견하고 심성을 가늠한다. 인간의 행동 속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또 다른 인간의 미가 언어에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선 인물 평가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해 용모·언변·글씨·판단력 등 4가지를 살폈다. 그중에서 특히 언(言)은 말을 함에 있어서 이치에 맞고 자신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어 가장 중하게 어겼다. 요즘 신입사원 뽑을 때 면접이 가장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많다. 특히 사회에서 유명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언어 책임 회피증상’이 더욱 심하다. 이는 혀를 통해 내뱉기 전에 몇 번이고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즉흥적으로 질러대기 때문이다.

남이 겪을 고통에는 관심조차 없고 자신의 기분만 중요할 뿐이다. 말의 가치를 한낱 지나가는 바람 소리 정도로 가볍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마구 내뱉은 막말은 ‘인상’은 강하게 남길지 모르지만 ‘인격’은 발아래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구화(口禍)를 두려워하지 않는 잘나가는 분들에게 충고한다. 제발 그 입 다물라.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