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위험한 곳이라면 왜 멀리 안 떠나고 그냥 계셨어요? 엄마가?”
“네 아빠가 너 낳을 때까지는 자기 옆에 있어 달라고 했대. 그래서 남아 있는 거라고. 아니면 벌써 프랑스로 떠났을 거라고.”
소선이 사랑했던 남자가 우룡이라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 역시 우룡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선우의 질문에 정숙의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네 엄마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나 같은 사람이랑 달라. 나소선은 어디 세워놔도 거기서 제일 빛나는 사람이야. 외모가 아니라 하는 행동이나 태도 어떤 일을 추구하는 모든 게. 그런 소선이 그렇게 무언가에 떠는 건 내가 처음 봤다는 거지.”
우룡이 선우를 자신의 딸로 여길 정도라면 두 사람의 관계는 깊었고 사랑했던 사이였던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두려움의 대상이 돼서 멀리 도망가야 할 상황까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는 부분은 한 부분이었다. 정숙의 기억이 뒤죽박죽이고 두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소선이 정말 두려움에 떨었다는 부분, 그 대상이 한우룡이든 아니든 분명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숙이 몸을 떨 정도로 당시의 소선이 느끼는 위험을 감지했던 거라면 그건 거짓일 수 없을 것이었다.
정숙이 기억해 낸 이야기들이 정확한 사실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애써 건져 올린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떠올리자마자 반응하는 몸의 기억은 진실에 맞닿아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가 한우룡인지 아닌지가 선우에겐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한우룡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기억 속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선우는 다시 물었다. 좀 더 쉽게 답하도록 질문을 바꿨다. 정숙은 말을 멈추고 한참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글쎄, 딱히 기억나는 게 없어.”
정숙은 소선에게 들은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이며 명환의 절친이고 명환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는 거였다. 그리고 소선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그 때문에 소선이 괴로워하며 자신의 집에 내려와 지냈었다는 거였다.
“내가 일일이 날짜는 기억을 못 하지만 분명히 그랬어. 순서가 그랬다고. 내가 그때 이 선생한테 그건 꼭 말해야 하겠다 싶어서 말한 거거든.”
진욱이 태블릿PC를 꺼냈다. 화면엔 한우룡의 사법고시 합격한 시기와 사법연수원 수료, 결혼, 출산 등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더 터치를 하자 소선의 유학과 입국, 결혼, 사망 날짜가 일목요연 정리된 채 그 위에 겹쳐졌다.
“아주머니 생각에는 그때 엄마가 두려워했던 게 뭐였던 거 같으세요?”
정숙은 저번에 내가 말했잖우, 하는 눈빛으로 진욱을 쳐다보았다.
“죽음.”
진욱이 대신 답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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