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감독 우승’ 징크스 따위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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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새 감독 선임에 바람

김학형 국제팀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23 00:02:40

우리는 외래어 징크스(Jinx)를 긍정적·부정적인 상황에 모두 쓰는데, 영어권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에만 쓴다. 한글에 적확한 대체어가 없으니 어떤 상황에 쓰는 표현인지 모르고 용법이 굳어진 탓이다. ‘불길한 징후’ ‘불운’ 정도로 쓸 수 있다지만 잘 들어맞는 것 같지 않다. 징크스의 사전적 의미는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악운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부정적 어감이 명확하다.

굳이 징크스를 한글로 바꿔 보자면 ‘자신만의 미신’이 어울릴 듯하다. 합리적인 인과관계가 없어도 관념 또는 경험상 몇 개의 사건이나 사물이 무관하지 않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내게도 새 옷을 입거나 새 신발을 신는 날 비가 오는 징크스가 있다. 분명히 매번 새것이 비와 흙탕물에 젖을 리 없는데도, 그런 경험이 뇌리에 깊이 박히면 그렇게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스포츠만큼 징크스가 널리 쓰이는 곳도 없다. 중국 축구의 대표적인 징크스는 이른바 ‘공한증(恐韓症)’과 ‘월드컵 예선 탈락’이다. 실제 한중의 상대전적은 ‘36전 21승 13무 2패’로 한국의 우세지만 중국의 승리가 없지 않다. 아시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가 가장 높은 일본에게도 종종 이기면서 한국만 만나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이 주최국 자격으로 지역예선에서 빠진 덕에 본선 무대를 밟았으나 3패(9실점)로 조기에 탈락했고, 이후 20년간 예선에서 탈락했다.

한국 축구에는 ‘이란 아자디 징크스’가 있다. 한국은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경기장에서 1974년부터 2무 5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 경기장은 해발 1274m 고지대에 위치해 ‘원정팀의 지옥’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해 10월에 치른 예선 경기에서도 1-1 무승부(손흥민 1골)를 기록했다.

징크스와 유사한 루틴(routine)도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경기장에 독특하게 들어간다. 먼저 오른발로 경기장 옆줄(사이드라인)을 밟은 뒤 왼발을 내딛지 않고 점프해 다시 오른발로 디뎌서 입장한다. 경기에 임하기 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인데, 별다른 인과 관계없이 그리하면 잘 되리라 기원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징크스와 같다.

100년에 가까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역사상 외국인이 감독을 맡은 나라는 우승한 적이 없다. 최초의 1930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자국민 감독이 이끄는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결승전에 오른 두 팀 모두 그랬다. 아르헨티나 국민인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이 이끄는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프랑스 국민인 디디에 데샹 감독은 지난 대회 우승컵과 이번 대회 준우승컵을 안았다.

이제 한국 축구팀은 새 사령탑을 세워야 한다. 흔한 말로 징크스는 깨라고 있는 것이니 새 감독이 꼭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선진 축구를 이식하는 데 용이한 외국인 감독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징크스 따위 무시하고 앞으로 4년간 한국 축구를 또 한 번 성장시킬 수 있는 감독이 선임되길 고대한다.

김학형 국제팀장 hh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