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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의 빨간불이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증권사 어느 곳도 지난해 영업이익 ‘1조 클럽’에 들지 못한 채 부진한 실적을 맞이할 전망이다. 주식거래 감소, 채권운용 손실 등 나빠진 영업환경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는 여전히 크고 주식시장·단기자금시장 저조로 수익성·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특히 은행 계열사가 없고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형 증권사들이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리 인상에 주식·채권 부진하자 실적 악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주요 증권사 7곳(한국금융지주·미래에셋·메리츠·삼성·키움·NH투자·대신증권)의 작년 한 해 영업이익은 총 4조9365억 원으로 전년(8조6524억 원) 대비 42.9% 급감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전년(7조1091억 원)보다 46.6% 쪼그라든 3조799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 ‘1조 클럽’도 전무할 전망이다. 2021년 증권사 5곳이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증권사별 영업이익을 보면 △미래에셋증권(9505억 원) △메리츠증권(9470억 원) △한국금융지주(8562억 원) △삼성증권(6938억 원) △키움증권(6823억 원) △NH투자증권(4977억 원) △대신증권(3090억 원) 순이다. 7곳 모두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NH투자증권과 대신증권은 예상 감소폭이 60% 이상이다.
가파른 금리 상승세가 실적을 끌어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위탁수수료 수입은 급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15조9113억 원으로 전년(27조2929억 원) 대비 41.7% 떨어졌다. 한국기업평가가 산출한 위탁매매 실적도 지난해 3분기 기준 3조3000억 원으로 전년 3분기(6조9000억 원)의 절반 이하였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도 악재였다. 증권사는 부동산 PF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을 통해 수수료를 받는데 레고랜드 사태 이후 ABCP 발행·판매량이 줄면서 수수료는 급감했다.
채권평가 손실도 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증권사의 채권평가손실 규모는 1조3000억 원에 달했다. 기업공개(IPO) 부진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공모기업은 70개로 전년(91개) 대비 21개 줄었고 공모액도 19조7000억 원에서 16조 원으로 급감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증시와 부동산 동반 부진으로 연말 자산 재평가 시 이익이 아닌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며 작년 9월 이후 신규 PF 딜(거래)이 크게 감소했고 거래 대금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배당락은 배당락 전일 기준 예상 배당수익률보다 높았는데 이는 올해 실적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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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
증권업계의 위기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구조조정이 눈에 띈다. KB증권은 작년 12월 1982년생 이상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회사 인력구조 개선을 위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2020년 이후 2년 만이다. 하이투자증권도 지난달 1967년생 이상, 근속연수 20년 이상 등의 요건을 두고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은 인력 효율화를 위해 법인부와 리서치사업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투자은행(IB)·자기자본투자(PI) 등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자산 매각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자회사 다올인베스트먼트(지분 52.0%)와 태국법인 다올타일랜드(69.9%) 매각을 진행 중이다. 5일에는 메이슨캐피탈 등과 다올신용정보 매각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회사 측은 기존 사업을 재정비하고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 건전성·수익성·유동성 모두 ‘먹구름’
증권업황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려울 전망이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나이스신용·한국기업·한국신용평가)는 관련 보고서에서 증권업에 대해 일제히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한기평은 △비우호적인 사업환경 △저하될 실적 방향 △부정적인 등급 전망 등의 평가를 내렸다. 한신평은 △산업전망 ‘비우호적’ △신용전망 ‘부정적’ 등의 의견이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증권사들이 부정적인 산업환경하에서 수익성 저하를 지속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나신평은 금리 상승에 따른 부동산경기 둔화로 증권사의 건전성·자본 적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짚었다. 2021년부터 중·대형사를 중심으로 위험인수를 빠르게 확대하는 과정에서 브릿지론·후순위 등 위험성이 큰 국내 부동산 PF 우발부채 비중이 늘었기 때문이다. 브릿지론이란 시행사가 본격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직전 땅 매입비용 등에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말 국내 24개 증권사(유효등급 보유사) 기준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채무보증·대출채권·사모사채·지분증권·부동산펀드·리츠 등)는 51조9000억 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71.1%에 달한다.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중 기초자산이 고위험 사업장 비중은 자본여력이 부족한 증권사일수록 컸다. 중소형사(자기자본 1조 원 미만)와 대형사(자기자본 1조~4조 원)의 브릿지론 비중은 각각 32.1%, 24.8%로 초대형사(자기자본 4조 원 이상) 18.4% 대비 높은 수준이었다. 중·후순위 비중도 △중소형사 70.4% △대형사 58.9% △초대형사 33.8%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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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박서현 기자] ⓒ스카이데일리 |
부동산경기 둔화로 고위험 사업장의 비중이 높은 중소형사의 재무건전성 악화 위험성도 높은 상태다. 지난해 9월 말 요주의이하자산은 2021년과 비교해서 초대형사는 1.2% 늘어났지만 대형사는 67.3%, 중소형사는 77.6% 급증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금융비용 증가·분양경기 저하 등으로 기초자산이 부실화될 경우 자산건전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윤재성 나신평 수석연구윈은 “PF 채무보증건의 확약 실행이 늘어나고 유보되는 이익 규모가 저하될 것임을 감안할 때 순자본비율 등 자본적정성 지표가 저하될 것이다”며 “특히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익스포저가 크고 계열지원 제한 등으로 재무적 대응능력이 열위한 증권사를 중심으로 부정적인 영향에 크게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수익성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금리에 따라 위탁매매부문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돼서다. 부동산 익스포저 부실화에 따른 대손비용·상각처리 등도 수익성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PF 사업 특성상 부실을 인식하지 못하다가 일시에 인식되거나 PF사업장 간 부실 전이로 동시에 악화되는 경우 대규모 일회성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효섭 한기평 책임연구원은 “증시거래 위축, 신용공여 감소로 위탁매매수지가 저하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글로벌 자산시장의 불확실성 지속으로 집합투자증권 등 자기자본투자(PI) 관련 손실 위험이 높아져 상품운용부문의 실적 부담도 지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PF가 감소하는 가운데 금융시장 전반의 긴축 기조로 주식발행시장(ECM)·채권발행시장(DCM)부문의 부진한 실적이 지속되면서 IB수익도 감소할 것”이라며 “조달비용 상승과 PF 관련 대손비용 부담도 수익성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단기자금시장 불안에 따른 유동성 위험도 악재로 다가올 전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의 단기사채 발행규모는 438조1000억 원으로 전년(715조 원)대비 38.7% 급감했다. 단기사채는 만기 1년 이하·1억 원 이상 발행 등 요건을 갖춰 발행하는 사채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증권사의 유동성이 쪼그라들면서 발행금액도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윤 수석연구원은 “RP매도(자금조달)의 대부분이 익일물RP로 구성돼 있는 점, 증권사 우발부채의 상당부분이 PF ABCP로 구성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금리 급등이나 외부충격에 의한 단기금융시장 경색 시 유동성 위험이 높아질 것”이라며 “ABCP 차환가능성 저하에 따른 우발부채의 현실화 가능성도 증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책임연구원도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책과 계열사로부터의 지원 등을 바탕으로 유동성 부담이 다소 완화됐지만 단기 자금시장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며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될 경우 PF 우발채무 중 브릿지론 비중이 높거나 비금융그룹 증권사인 경우 유동성 대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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