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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를 극복하며 관광 경기 살리기에 안간힘을 써 온 괌 교민들이 예기치 않은 '물 폭탄' 악재를 만나 망연자실하고 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재난지역의 이미지를 벗고 '관광 천국' 이미지로 되돌리기까지 또다시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참담한 심경으로 풀이된다.
30일 태평양에 자리한 미국령 괌 동포사회에 따르면 한국인 관광객이 떠난 빈자리에 남은 현지 교민들이 여전히 식수난과 전력난, 물자부족난, 찜통더위에 시달리는 힘겨운 시간 속에서 이웃을 위로하고 십시일반으로 도우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괌에 거주 중인 한인 동포 A씨는 "우리 집에 물이 들어오고 있어 얼음을 만들었다"라며 500ml 페트병 6병에 수돗물을 넣어 무료로 제공했다. 또 발이 묶인 한국인 노인과 어린이 관광객에게 혈압약과 땀띠약을 제공하고, 진통제와 멀미약 정보를 번역해 전달했다. 한인 의료진이 근무하는 병원과 약국 정보를 찾아 건넨 동포도 있었다. 특히 공포로 과호흡과 두통, 메스꺼움을 느끼는 관광객에게 병원 치료 방법을 알려줬다.
바로괌(BaroGuam)은 고립된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료 셔틀을 운행했다. 이틀간 총 600명을 운송했고 노약자 임신부를 위해 총 18대의 차량을 제공했다. 교통약자가 아닌 관광객들의 탑승 요청으로 한때 운전기사가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었다.
느닷없이 발이 묶여 불편을 호소하는 한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빈축을 샀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동포도 있다.
숙박업계에 종사하는 한인 동포 B씨는 통화에서 "우리(교민)도 식수난에 허덕이는데 관광객에게 제공할 물을 구한다는 공지를 보고 마음이 씁쓸했다"며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우리로선 고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재기로 물자가 부족한 마당에 나누어 쓰기도 벅찬 실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인 동포 C씨는 "유학·해외 파견·영주권자 등의 이유로 한국 국적을 갖고 괌에 체류하는 교민들이 먹는 물도 모자란 실정에 교민들에게 더 지원해달라는 말이 상식 밖으로 여겨져 안타까웠다"며 "관광객(을 위한) 식수도 못 실어 온 한국 정부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어느 한국 관광객은) 괌에서 기억은 너무 안 좋았지만, 자기 것도 모자라면서 기꺼이 챙겨주신 교민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다시 괌을 찾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고 소식을 전한 동포도 있다. 익명의 동포는 "여름휴가 시즌 극성수기 대목을 앞두고 코로나 이후 정말 큰 위기가 온 상황"이라고 우려를 전하고 "비행기 타고 나가는 (관광객)분들이 괌의 영업사원이고 판촉직원"이라며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괌의 휘발유 공급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많게는 100대 안팎의 차량 행렬이 주유소에서 줄지어 기다리는가 하면, 길게는 7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한인 동포 D씨는 "물과 전기가 다 되는 곳에 갔다가 안 되는 곳으로 오면 문명과 원시를 오가는 기분"이라며 "불과 차로 10분 거리인데 전혀 다른 세상 같다"고 했다.
일부 주유소는 군인·소방대원·구급대원 등 필수재난복구인력(only first responder)에게만 휘발유를 공급해 어렵게 찾아간 동포들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인 동포 E씨는 "괌 정부에 근무하는 사람에 따르면 괌에는 45일 정도 사용할 휘발유가 비축돼 있다"고 알렸다.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가격이 치솟을지언정 휘발유가 동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호텔업계는 전기가 다시 들어왔지만, 저전력 탓에 에어컨은 약한 바람만 나오고 있어 신규 투숙객의 예약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인 요식업계도 딜레마에 빠졌다. 영업하는지 묻는 전화가 빗발치지만, 기름을 넣는 자가발전기 사용에 애를 먹으며 냉동공조기를 온전히 쓰지 못해 가게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한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빵과 라면만 먹었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교민들도 있다. 일부 문을 연 한인음식점은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한식당 '명가'는 비빔밥과 칼국수를 관광객에게 무료로 제공해 감동을 주고 있다.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급기야 발전기까지 도둑맞았다고 하소연하는 동포도 있다. 자전거를 도둑맞아 발이 묶였다는 이들도 나온다.
식수 안전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된다. 괌 수도국(GWA)은 물을 아껴 사용하고 박테리아 오염 가능성을 경고하며 끓여서 마실 것을 권고하고 있다. GWA는 곳곳에 이동식 물탱크를 설치하고 총 2만 리터의 식수 지원에 나섰다. 빗물을 받고 있다는 한인도 있다. 이날 현재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인 동포 F씨는 "양동이에 빗물을 받아서 욕조에 채우니 뿌듯하다"고 밝혔다.
한인들은 전력 수급난으로 에어컨을 사용하지 못하며 열대야를 힘겹게 버티는가 하면, 인터넷마저 끊긴 소식불통의 시간을 견뎌 내고 있다. 일부 가게들은 카드단말기 사용이 원활하지 않아 현금거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금인출기(ATM)조차 작동이 안 돼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괌 주지사는 라디오 연설에서 "물 공급은 45% 수준이고, 이번 주까지 전력이 100% 복구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항공모함 USS 니미츠호를 급파해 구호물자를 지원하고 적십자 역시 구호의 손길을 뻗고 있다. 괌을 취항하는 유나이티드항공사는 재난지원품을 수송한 보잉 777호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냈다. 28일 도착한 지원품에는 비누·치약·칫솔·휴지 등 생필품과 작업 장갑·쓰레기봉투 등이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재난지역'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향후 관광 경기를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는 비관적인 전망에 한인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동포 G씨는 통화에서 "코로나 탓에 죽은 관광 경기가 되살아나며 한국인 관광객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였는데 태풍 악재로 모든 것이 수포가 된 기분"이라고 말 못 할 속내를 내비쳤다.
외교부와 괌 하갓냐출장소는 한국인 관광객을 본국으로 수송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긴급 신고 데스크를 현지에 설치하고 동포사회 복구 지원에도 힘을 쓰고 있다. 재괌 대한체육회는 19개국에서 답지한 성금을 동포들을 위해 쓰겠다고 공지했다.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FEMA)도 피해사례를 접수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괌 하갓냐출장소는 "한인회 등 교민단체와 현지 정부 당국과 협력해 우리 교민들의 생활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본지에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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