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밥 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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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밥 사는 마음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18 08:54:13

시도 때도 없이 허세를 부리며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설렁탕 한 그릇 사는 것도 아까워 주저하는 사람이 있다. 쓸데없는 허세도 좋을 게 없지만 지나친 절약 정신도 문제다.

단순히 삶이 구차해 보여서가 아니다. 돈을 안 쓰면 안 쓰는 만큼 삶의 반경이 줄어든다. 맛있는 밥과 향기로운 차가 맺어주는 인연이 얼마나 많은지 돈 안 써 본 사람은 잘 모른다.

돈을 아끼는 마음은 본능이다. 인류의 유전자에는 ‘불안’이 담겨 있다.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게 약 35만 년 전이다. 원시 인류는 순록·매머드·야생마를 사냥해서 먹고 살았는데 늘 먹이가 풍족한 것은 아니어서 짐승을 잡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언제든 굶주릴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 한 귀퉁이에 불안이라는 강을 흐르게 했다. 이 강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때조차 잘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돈 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된다. 이는 심정적 불안이 신체적 무력감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뜻도 되지만, 삶에 적절한 투자를 하면 열매가 되어 돌아온다는 뜻도 있다. 내 수중에 쓸 돈이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더 감사한 일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사는 것은 허세와 다르다. 허세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기 위한 목적에서 벌이는 가짜 선행이다. 이제껏 다른 사람을 발아래 두기 위해 술을 사고 밥을 사고 큰소리를 쳤다면 차라리 돈 쓰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 돈을 아끼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불안 유전자 때문이다. 게티이미지

밥을 사는 일이야말로 유리잔을 옮기듯 조심조심 행해야 한다. 그 사람이 나의 초대에 응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온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세상에는 돈보다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오늘 내가 초대한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의 귀중한 오후 시간은 내 주머니 속 몇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걸 기억하자.

상대를 얻어먹는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 대접받는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는 내 태도에 달렸다. 돈을 아끼느라 내 인생에 행운을 가져다줄 귀인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살피는 한편, 괜한 허세로 나는 돈을 잃고 그 사람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임요희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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