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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왜, 주머니 달린 옷만 보면 사 달라고 졸랐을까
주머니에 손 꽂고
가끔 한쪽 어깨를 으쓱해야
등굣길에 책가방이 흘러내리지 않았네
주머니에 빵빵하게 허공을 채우고
휘파람 불며
두어 정거장쯤 걸으면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 따위도
제법 견딜 만했지
애인 손은 작은 새였네
새로 산 내 체크무늬 잠바 주머니에 작은 새를 불러와
애인과 나란히 걷고 싶었는데
새는 멀리 날아가고
나는 저만치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주머니 주름만 만지작거렸네
물 밖에 나오면 몸이 버터처럼 녹아 버린다는
바이칼 호수의 어떤 물고기처럼
주머니에서 손을 빼자
열 손가락이 줄줄줄 흘러내렸네
한때 내 주머니의 주머니였던 아버지는 주머니가 참 가벼운
사람
생활비 좀 달라는 어머니에게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주머니 탈탈 털어
주머니의 뿌리를 보여 주었지
마지막 입은 수의엔
빈털터리 주머니마저 없어서
불린 생쌀 한 줌 입 속에 겨우 넣어 드렸네
굳게 다문
푸르스름한 입이
그의 마지막 주머니였으니…….
주머니 사용법(2022)/ 임경묵
주머니를 발명한 사람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소지품을 넣거나
겨울철 손 시릴 때 사용하면 좋을 거라고.
설마 어깨에 힘 줄 때 주머니가 소용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주머니에 손 꽂고 한쪽 어깨를 으쓱하면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는 걸.
그게 허세라고 해도 주머니 속에 채운 허공 때문에
슬픔도 분노도 외로움도 잊을 수 있다는 걸.
작은 새처럼 연약한 그녀의 손을
잠바 주머니에 불러들이면
온 세상을 주머니에 담은 듯 뿌듯하다는 걸.
뿌듯함의 크기만큼 상실도 큰 법이다.
더 이상 애인의 손을 잡을 수 없는 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머니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것은 더는 어깨를 으쓱할 일도
작은 새 같은 애인 손을 불러들일 일도 없어서겠지.
임요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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