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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다큐소설 전두환] <3> 박정희 업적
지만원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03 12:24:42
일본의 의미
 
이승만의 주요 업적은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과 한미동맹이었고박정희와 전두환의 주요 업적은 경제 부흥이었다박정희를 설명하려면 전두환을 설명해야 하고전두환을 설명하려면 박정희를 설명해야 한다박정희는 중화학공업·제철산업·기계산업·건설산업·산림산업·사회간접산업을 통해 ‘한강기적의 좌측을 완성했고전두환은 반도체산업·전자산업·통신산업·원자력산업·문화산업으로 ‘한강기적의 우측을 완성하여 우리나라를 경제 세계 10대 강국으로 올려놓았다박정희는 많은 자유를 묶었고전두환은 그가 묶어놓은 자유를 모두 풀었다이러하기에 박정희와 전두환은 한 세트인 것이다.
 
이승만은 정치달인이기에 일본을 적대시 했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은 경제를 중시했기에 일본의 경제능력을 활용했다일본을 증오하는 것은 감정이고일본을 이용하는 것은 이성이다식민지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80% 이상이 오랫동안 식민지였다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그들을 지배했던 식민종주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오히려 고마워한다미개한 생각을 깨워주고 원시를 문명으로 바꾸어준 데 대해 고마워하는 것이다최근 70대 노인이 독학과 검정고시로 대학까지 졸업했다고 한다왜 그렇게 노력했느냐고 물으니 공부를 하니까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이것이 개화다.
 
개화된 이승만 대통령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는가발전된 미국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보였다이승만은 그것을 이상으로 하여 대한민국을 세웠다일본 육군사관학교를 통해 개화된 박정희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는가미스비시 중공업이 보였고항공모함이 보였다경제와 안보가 보인 것이다.
 
이승만이 물려받은 국가유산은 얼마였나마지막 27대 조선 왕이 남긴 논과 밭 4억 달러와 일본이 남기고 간 23억 달러였다이조 518년 동안 이씨 왕들이 벌어놓은 자산은 전염병과 초가와 똥오줌의 거리와 악취나는 우물 그리고 논밭이었다일본이 35년 동안 남한에 쌓아놓은 자산은 철도·도로·광산·각급 학교 그리고 오늘의 대기업의 전신인 업체들이었다
 
이 일본 자산이 건국초기 총 국가자산의 80%를 상회한 것이다이 자산을 가지고 출범하여 12년동안 통치한 결과는 160개 나라 중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거지의 나라였다하지만 그는 건국의 터를 자유민주주의에 잡았고북한의 공산당이나 남한의 공산당이 훔쳐갈 수 없도록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결속시켜 놓았다이는 금전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위대한 업적이었다.
 
눈물 젖은 달러
 
박정희의 과제는 배곯는 국민을 배부르게 만드는 것이었다술 마시고마약하고투전하고쌈질하는 퇴폐분위기를 개화시키기 위해 새마을운동이라는 문화운동을 전개했다국민에너지를 이용하여 마을을 현대화하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토의하는 문화를 계발시켰다가난에서 벗어나보겠다며 미국 대통령 J.F. 케네디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달러를 벌겠다며 서독에 간호부와 탄광 노동자를 수출해놓고 그들이 불쌍하다며 서독으로 날아가 부여잡고 울었다서독 수상에게 ‘반드시 갚을 테니 돈 좀 꾸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견하여 베트남 건설 사업권을 따내고장병들의 전투수당을 빌려 산업자금으로 썼다전투 성적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얻게 되자 세계 각국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고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했다여기에서 단련된 병사들을 험악한 모래바람의 사막 땅 중동에 보내 중동 건설의 역군이 되게 했다.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다나무를 땔감으로 베어가지 말라고 19공탄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산림자산이 되었다영국에서는 1750년대에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했다밖에서는 이런 산업혁명이 지축을 흔들고 있을 때 조선 왕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있었다.
 
산업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었다실업률 30%에 인구 증가율 2.9%, 박정희는 일본에서 살 길을 찾기로 했다농업에서 공업국가로 전환한다는 것은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일본의 기술이 필요했다그 돌파구가 일본과의 국교를 트는 일이었다
 
일본으로부터 청구자금을 받아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기술을 빌리는 것이었다거저 받는 이 기술은 청구자금의 수 십 수 백의 가치가 있었다무상 3억 달러는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는 것이고유상 2억 달러는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이고상업차관 3억 달러는 기업들이 꾸어 쓰는 돈이었다국가가 꾸어 쓰는 돈의 한계가 2억 달러기업이 꾸어 쓸 수 있는 돈의 한계가 3억 달러라는 것이다그 어느 나라가 160개국 중 159번인 못 사는 나라에게 돈을 꾸어주려 하겠는가?
 
박정희에 감동한 일본의 도움
 
공업화의 토대는 제철공장이다제철소는 모든 산업국가의 로망이다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며 돈 좀 꾸어 달라 했는데도 문전박대 당했는데그 어느 나라가 제철공장 짓겠다는 거지 나라에게 돈을 꾸어주겠는가이러하기에 박정희와 일본대사 가나야마의 궁합이 전설이 되는 것이다청구권자금 중 120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양국이 합의했다이에 따라 6년 만인 1973 103t 규모의 포항제철덩샤오핑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포항제철이 완공된 것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고속도로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했다. 1967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를 모두 접촉했지만 비웃기만 했다처량한 국가였다여기에 일본이 청구권자금 690만 달러를 투입하는데 동의해주었다. 1968 21일 착공공사장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25개월 만인 1970 627 소백산 당제터널공사가 완료되는 순간, 428의 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됐다
 
세계에 유래가 없는 기적이었다수많은 낙반사고·용수분출 등으로 77명이 순직했다이 순직자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충북 옥천군 동이면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눈물젖은 공사장땀에 젖고 피에 젖은 이 공사장에 민주화의 영웅이라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달려와 큰 대자로 가로 누워 한동안 공사를 방해했다박정희가 불쌍한 농민의 논과 밭을 아작내고 있다는 것이었다고속도로 없는 국가를이 두 민주화 투사들이 민주화시켰으면 지금쯤 국가는 어느 공간에 가 있을까!
 
소양강댐아시아에서는 최대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큰 다목적 댐으로 담수량은 29t, 수력발전 용량은 20kw, 1967 4월부터 6년 동안 건설되어 1973 10월에 완공됐다일본 청구권 유상자금 2150억 달러가 투입됐다역시 일본 기술이었다.
 
여기에서 습득한 기술로 충주댐(27.5t)·안동댐·대청댐·평화의댐(26.3t)을 위시해 수많은 댐을 건설함으로써 한국은 댐 건설의 선진국이 되었다이어서 이 일본 자금으로 호남정유·나주비료를 위시한 중화학공업 건설과 수많은 산업 인프라 그리고 철로·수도·해운·송배전·개량사업 등 인프라가 증강되었다.
 
한심한 기업들
 
상업차관 3억 달러이 범위 내에서 기업들이 저마다 일본 자금을 사용했지만 경영능력은 부족하고 부정축재가 만연하여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했다기업인들의 경영능력이 정부의 경영능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이자와 원금을 정부와 은행이 대신 갚아주는 한심한 사태가 발생했다일부의 경영권을 박탈하기로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었다
 
기업들이 마구 빚을 지니 은행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리사채로 연명했지만 그럴수록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그나마 기업을 도산시키면 경제가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박정희는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고리사채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동결한다.” 지하의 고리 사채업자들이 눈을 뜬 채 날벼락을 맞았다이른바 ‘8.3긴급경제조치’, 1972 83일이었다
 
고리 사채업자는 없어도 되지만 기업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고육지책이었다기업에 외자 도입을 정지시켰다일본 차관을 봉쇄한 것이다그 대신 외국 기업을 한국에 들어오도록 유치했다수십 개 공단을 조성하고 ‘수출자유지역을 설치하여 수출 확대 분위기를 조성하였다경공업 체제를 기계공업과 중화학공업 체제로 전환했다.
 
실업률 30%에서 0%
 
공단을 많이 설치하면 자동적으로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는가기술노동력이 있어야 들어온다박정희는 갑자기 공업학교를 많이 만들어 기능공을 양성했다해마다 서독에서 기능올림픽대회가 열렸다. 1, 2, 3등을 한국 청년들이 다 차지했다국제 사회에 보도가 되자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로 인식됐다대사와 특사들이 선진국에 나가 “한국은 값싸고 질 좋고 온순한 기능공들이 많고공단도 많이 설치돼 있으니 한국에 투자해달라” 홍보를 했다어느 나라 기업들이 가장 많이 들어왔겠는가공단 대부분을 일본 기업들이 채웠다왜 그랬을까?
 
한국에는 원자재·원료·부품들이 없었다그런데 선진국들에는 이것이 풍부했다만일 일본이 아프리카 희망봉 정도에 위치했다면 부품과 소재를 한국공단으로 가져오는데 시일이 오래걸리고 수송비도 매우 비싸서 한국공단 입주를 꺼렸을 것이다그러나 일본에게는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이 가깝고미국 기업들보다도 한국이 가깝다그래서 일본 기업들이 가장 많이 들어 온 것이다.
 
결국 한국은 일본의 기술·일본 소재·일본 부품을 가져다 조립해서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체제로 경제기반이 형성됐다미국은 한국군의 월남참전을 계기로 매우 사이가 가까워져 이른바 ‘Buy Korea’정책을 폈다. 1970년 당시 미국에서 일본기업 브랜드가 찍힌 뮤직 시스템을 구매해서 집에 와 뜯어보면 ‘Made in Korea’가 붙어있었다그래서 당시의 한국경제를 ‘통과경제(Transit Economy)’라고도 했다실업률이 30%에서 0%로 떨어졌다기술자의 봉급이 사장 봉급보다 높았다잠실의 수박농가가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됐다여기에서 ‘졸부라는 경멸적 표현이 등장했던 것이다.
 
기술에 살고 기술에 죽고!
 
박정희가 여기에 만족했겠는가모든 기술 개발은 ‘모방(Copy)’에서 출발한다국산화를 시작했다무기 국산화그는 청와대 뜰에 지프차·박격포·M16 소총·무전기·유선전화기 등을 진열해놓고 국방부 장관을 위시한 군 수뇌들과 국방과학연구소장 등 기술간부들을 불러모았다.
이것들과 똑같은 것을 국산화 하시오.”
맨 땅에 헤딩하라는 지시였다대전 국방과학연구소(ADD)에는 자그마한 별채가 하나 있었다. ‘영빈관’, 대통령이 와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기술 개발을 독려하던 공간이었다그리고 그 말고는 그 누구도 초라하게 지어진 그 영빈관을 찾는 대통령이 없었다.
 
수많은 기업에 국산화 품목을 할당했다서양에서는 이미 한물 간 사양품(Sunset item)을 국산화하라는 것이었다사양제품이라 해도 그것을 제조하려면 기술자료(TDP·Technical Data Package)가 있어야 했다수많은 부품에 대한 설계도면·조립설명서·부품별 스펙들을 영어 또는 일어·독일어 등으로 설명한 문서들이 수십만쪽씩 되었다이것들을 배로 실어다 기업에 나누어주니 기업들이 무슨 재주로 이 문서들을 해독하겠는가그래서 대통령은 미리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 두뇌들을 대거 유치하여 KIST를 만들고 ADD를 만들고그들이 거주할 아파트를 지어준 것이다
 
정밀도와 강도에 대한 개념이 없는 기업인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생산공정 모두를 지휘하게 했다이것이 우리나라 생산기술의 모태가 되고 기반이 된 것이다과학기술처 등 기술계 직책에 있는 사람이 전화를 하면 대통령은 회의를 하다가도 그 전화부터 받았다과학자들과 자주 커피를 마신 대통령의 사랑과 의지에 감동한 과학자들이 과로로 사망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김일성은 폭탄 설치조를 보냈고저격범을 보냈고김신조 특공조를 보냈다이런 대통령을 훼방하기 위해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남로당 빨치산 후예들이 온갖 소요와 파괴공작을 일삼았던 것이다빵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민주화도 없다가장 기본적인 자유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다이 두 개의 자유가 없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대한민국은 북한만 사라지고 남한 내 공산당만 사라지면 한없이 행복한 나라다
 
서울구치소에서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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