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문화시설로 거듭나는 ‘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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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만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28 00:02:30

최근 정부 주요 부처가 ‘문화가 있는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특별전담팀을 꾸리고 협업에 나섰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는 산업단지 활성화를 목표로 산업 기반 시설에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접목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앞으로 신규 산업단지를 유치할 때도 계획 단계에서부터 문화시설을 염두에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요즘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보니 본인 의지만 있으면 장기간 근무가 가능하다. 급여 수준도 서울 구로·가산디지털단지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젊은 층이 산업단지를 기피하는 데는 특유의 삭막한 분위기가 한몫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산업은 전 세계가 경쟁한다. 산업 경쟁력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요즘은 아파트형 공장에 카페·식당·편의점 정도는 들어서고 있지만 기타 문화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지난달 경남 창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청년들이 살며 일하고 싶은, 문화가 풍부한 산업단지를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일터의 개념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늘었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는 이들도 있다. 하다못해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할 장소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근로자들이 멀리 가지 않고 직장 근처에서 문화를 소비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면 이 역시 산업 경쟁력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산업단지 한복판에 폐공장이나 창고를 재생해 클럽을 만들면 어떨까? 업무를 마친 직원들이 산업단지 내 클럽에 모여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감상한다면? 분위기 있는 갤러리 카페에서 편안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산업 관련 브랜드 스토어나 박물관·체험 현장도 좋은 대안이다.

서울 성수동은 최근 국내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지만 1970·80년대에만 해도 수제화 공장이 모여 있던 산업 지역이었다. 외환위기와 수입 신발의 공세에 밀려 도산 위기에 처한 공장지대를 살린 것은 도시재생 아이디어였다.

임가공 공장들이 모여 있던 문래동 공장지대 역시 언제부턴가 카페·갤러리·서점·공방·식당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한 힙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존 산업단지에 문화시설을 유치할 경우 지역적 특성과 입주 근로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딜 가든 비슷비슷한 곳이어선 곤란하다.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을 간직한 특화된 문화 장소여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성공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해 인천남동문화재단은 남동국가산업단지에 문화공간을 채워 넣는 ‘남동문화산단조성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여건 부족으로 청년들이 떠나고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자 이곳을 산업과 문화가 융합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에 재단은 △근로 문화 환경개선 시범사업 △근로자를 위한 문화예술 체험행사 △문화산단 홍보 영상 콘텐츠 제작 등 세 가지 사업을 추진했다. 근로 문화 환경개선 시범사업은 무채색의 산업단지에 예술 벽화 등 일상 속 문화 환경을 제공하는 작업이다. 일련의 벽화 사업으로 우중충한 산단 골목길이 밝은 분위기로 변했다.

또한 지난해 10월11일 인천시가 논현포대근린공원에서 제1회 산업단지 근로자 퇴근길 콘서트를 열어 산단 근로자와 인근 주민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역 예술인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산단 근로자와 예술인 모두가 함께 사는 길이다. 이러한 성공 사례가 계속 생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