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젊은 이어령은 왜 “싹 갈아엎자”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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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서정주·김동리·백철·조연현 때리며 문단 혁신
조선일보도 젊은 기자들이 새로운 신문 목소리 내야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02 06:31:00

2년 전 타계한 문학평론가 이어령만큼 과대평가된 사람도 드물다. 평생 공허한 재담(才談)으로 명성을 얻은 탓이다. 그를 두고 “영험함도 철학도 없는 문화 무당”이라고 수차례 비판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단, 젊은 시절의 패기만은 나름 멋졌다. 갓 스무 살 남짓이던 1950년대 중반에 꺼내 든 이른바 화전민 문학론이 그것이다. 그건 “기성 문학판을 확 갈아엎자!”는 선언이었다.

“우리는 화전민이다. 저 불순물을 땅의 자양으로 바꾸는 마술이, 성실한 반역이 우리의 운명이다.”

시인 서정주·소설가 김동리·평론가 백철과 조연현 등 당대의 거물이 이어령의 표적이었다. 서정주·김동리 등은 당시 40대 중년에 불과했고, 실은 이 나라가 세워진 지도 7~8년밖에 안되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뭘 갈아엎자는 선동엔 논리도 설득력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애송이 이어령의 세대교체 목소리가 한국 문화에 역동성을 가져온 효과만큼은 인정된다. 옛 이어령을 떠올린 건 망가진 조선일보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그 신문의 전직 주필 김대중·강천석의 퇴진을 언급했다.

“쓰면 쓸수록 노추(老醜)인 전 주필 김대중은 자진해 붓을 꺾는 게 맞다. 호남 라인을 상징하는 강천석도 절필이 옳다.”

그 소신에 변함없다.

사실 조선일보는 상업지다. 그들이 김대중·강천석에게 지면을 주건 말건 그건 그들의 선택이다. 단 문학·언론은 공론장이므로 누구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더욱이 업계 1위 조선일보는 언론계 전체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대체 언제 적의 김대중이란 말인가? 그의 조선일보 입사가 1965년이다. 9년 전 조선일보가 기자 김대중 50년을 조명한 바 있으니 내년이면 60년이 된다.

사람들은 김대중이 1992~2004년 시사저널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1위 자리를 도맡았다는 것도 기억한다. 곤혹스러운 건 그런 게 거의 허명(虛名)이란 점이다. 그건 판단하기 쉽다. 곡절 많은 한국 사회 고비고비에서 그의 통찰이 빛나거나 선한 영향력을 준 적이 있었던가? 드물거나 없었다. 그리고 그의 거의 모든 글은 정치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청와대 권력이 어쩌고저쩌고 떠들고, 여야 힘겨루기에 진부한 코멘트를 주구장창 반복해 온 것이 전부다. 좌파 운동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보여 주거나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뜨거운 가슴을 열어 보인 글은 한 꼭지도 찾아볼 수 없다. 일테면 이번 다큐 영화 ‘건국전쟁’에 대한 정성 어린 칼럼 한 꼭지를 쓸 줄 모르는 청맹과니가 김대중의 실체이고, 그의 글쓰기다.

그러다가 결정적 사고를 친 게 문재인에 대한 사법 처리는 안 되며, 그건 정치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2년 전 헛소리였다. 취임 초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슨 조언이랍시고 했던 게 그 악명 높은 칼럼이었다. 김대중만 그러했나? 그건 조선일보의 구조적 한계다. 박근혜 탄핵을 전후해 대한민국 세력 대 반(反)대한민국 세력 사이의 체제 전쟁을 지적하는 지면을 조선일보는 선보인 바 없다.

저들은 나라를 망가뜨린 문재인정부 5년 동안 탈원전·최저임금 등의 사안에 대해 뻔한 정책 비판을 줄기차게 반복했던 것에 불과하다. 간첩, 그 이상인 문재인의 숨겨진 실체에 대해서는 외려 쉴드를 쳐 준 것이 조선일보였다. 실제로 지난 7~8년 태극기 세력이 광화문에서 아우성을 쳤지만, 단 한 번도 지면에 반영한 바 없었던 것도 그 신문이다.

그러다가 요즘 슬그머니 좌우의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 신문 흉내를 내고 있다. 주필 양상훈이 광화문 태극기 세력을 모독한 칼럼을 실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재삼 지적하지만 조선일보는 위기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지치지 않고 내뱉는 2.5류 칼럼니스트 김대중, 그리고 거기에 미스터 광주일고인 강천석, 글도 안되는 송희영을 논객으로 앞세우는 판에 미래가 있을까?

실은 20년 가까이 조선일보가 고정 외부 필진으로 떠받들어 왔던 한신대 교수 윤평중의 글도 자유 우파의 시각에선 끔찍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무렵인 2016년 이후 ‘촛불은 21세기 시민정치의 불꽃’이라고 했고 “찬란한 공화정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며 흥분하던 인간이었다. 그가 대학 좌경화의 원조인 ‘사상의 은사’ 리영희 옹호론자라는 것도 아는 이는 다 안다.

반복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조선일보가 정신 차릴 때다. 방법의 하나를 서두에서 제시했다. 싹 다 갈아엎고, 김대중·강천석의 붓을 꺾게 하자는 이어령식 화전민 논리를 편집국의 젊은 기자들이 나서서 외치면 된다. “우리는 화전민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그 옛날도 했는데, 지금이라고 그걸 못 하란 법이 없다. 요즘이 어떤 시절인데 그런 말이 통하겠느냐고? 정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정말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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