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7년 6월 23일 인도 플라시. 영국군은 프랑스 포병까지 가세한 벵골군과 맞섰다. 숫자로 보면 패배가 예상됐다. 유럽에서 온 군인은 900명 남짓. 인도 현지 용병 세포이를 포함해도 고작 3천명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영국군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플라시 전투에서 이기면서 영국은 인도 패권을 장악했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승리 비결은 규율이었다. 프랑스 포격으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까지 쏟아졌다. 공포 속에서 영국군은 방수포로 대포를 덮었다. 대포가 젖었을 것으로 예상한 벵골군은 기병을 앞세워 돌진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영국 대포가 불을 뿜자 1대 16의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숙련된 훈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사도 정신이야말로 영국군의 강점이었다.
승리는 달콤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훗날 벵골 조세징수권(diwani)를 얻었고, 영국과 내통했던 미르 자파르는 벵골의 새 통치자(nawab)가 됐다. 자파르는 영국군 장교에게 특별 야전수당(batta)을 이중으로 약속했다. 수당이 급여 100~150% 수준이었으니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부유해진 장교들은 저택을 사서 하인을 부렸다.
부귀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로버트 클라이브 총독이 1766년부터 이중 수당을 삭감했다. 동인도회사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한 비용 절감에 장교들은 발끈했다. 소수 정예라서 대체가 불가능할 거라던 장교 200명은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장교들의 속셈은 단순했다. 동인도회사가 과연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벵골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교들은 국방을 인질로 삼았다.
결과는 반대였다. 사표는 즉각 수리됐다.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서 클라이브 총독은 통제 불능인 장교들을 버렸다. 부사관을 장교로 승진시키고 세포이를 직접 다스렸다. 승진한 부사관들과 수당을 받은 세포이들은 총독에게 충성했다. 공백은 없었다. 군대는 멀쩡하게 운영됐다. 거만했던 장교들은 실업자가 됐다. 일부는 복직했지만 주동자는 군법회의에서 처벌까지 받았다.
집단 이기주의는 무섭다. 충동이 이성보다 강해서 설득하면 귀를 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회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책 제목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고 지었다. 현실주의 아버지로 불렸던 니버는 도덕적인 개인의 충동이 집단에서 공동 목표가 될 때 훨씬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미국 연방 항공관제사협회(PATCO) 파업은 인도에서 벌어졌던 장교 반란과 비슷했다.
무려 1만 3천명이 넘었다. 연방 항공관제사들은 1981년 8월 3일 총파업했다. 우리가 없으면 하늘은 멈춘다? 그들도 확신했다. 항공대란이 일어나면 미국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게다가 PATCO는 선거에서 레이건을 공개 지지했었다. 대통령 지지자의 요구는 임금 1만 달러 인상과 주 32시간 근무, 조기 은퇴였다. 하늘을 지휘하던 항공관제사들은 세계 최강 미국 항공망을 인질로 삼았다.
“복귀하지 않으면 모두 해고하겠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예상과 달리 냉정했다. 48시간 안에 복귀하란 경고에 관제사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48시간이 지나자 지지자들을 해고했다. 복귀 명령을 어긴 1만 1345명은 망연자실했다. 군 관제사와 퇴직 관제사가 투입되자 미국의 하늘은 다시 열렸다. 미국은 파면된 관제사 재고용마저 금지했다.
관제사만 탓할 상황은 아니었다. 레이건 지지자였던 그들은 낡은 레이더 앞에서 지쳤다. 항공기 충돌을 막아내느라 레이더 화면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위궤양과 고혈압에 시달렸다. 심지어 레이건은 1980년 선거 당시 “관제사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국가를 볼모로 삼은 전문직에게 타협은 없었다. 거센 반발에도 원칙이 집단 이기주의를 꺾었다.
집단 이기주의란 병폐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45조원을 성과급으로 받아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영업이익 300조원을 기준으로 성과급 상한선을 폐지하고 영업이익 15% 배분을 제도화하라는 요구다. 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삼성전자가 약 30조원을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최승호 위원장은 결렬을 선언했다.
돈에 대한 욕심은 더 심했다. 영국 장교는 수당을 깎지 말라고, 미국 관제사는 1인당 1만 달러를 요구했을 뿐이다. 삼성전자 1인당 평균 임금은 1억 5800만원으로 대한민국 평균 연봉 약 4500만원보다 약 3배 많다. 노조 요구대로라면 반도체 직원의 올해 성과급은 약 6억원. 연봉을 더하면 대한민국 평균 근로자보다 무려 16배 이상 많은 돈을 받는다. 회사가 언급한 성과급으로 계산해도 12배 이상인데 노조는 거절했다.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겠다? 삼성전자 노조위원장의 발언은 벵골에 주둔했던 영국장교와 미국 공항을 지켰던 관제사를 떠올린다. 안보를 볼모로 삼았던 장교와 항공 여객을 인질로 잡았던 관제사처럼 국가 전략산업을 앞세워 돈을 요구하는 행태도 빼닮았다. 집단사표와 총파업이란 행태도 이름만 달랐지 구조는 같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해마다 삼성전자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다.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로 초격차를 유지하라는 취지였다. 국가 전략산업인 반도체 미래를 위한 국가적 투자이지 귀족 노조에게 돈잔치를 만들어주란 뜻은 아니다. 원칙이 무너지면 체계도 무너진다. 거만했던 제국의 장교와 하늘을 멈추려던 관제사의 말로를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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