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행복한 지음(知音), 아름다운 금슬(琴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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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9 06:31:00

교향악은 아름답다. 아침에 일어나면 음악 FM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유능한 라디오 PD 덕분에 활력 가득한 음악이 아침을 연다. 음악의 에너지가 방 안 가득 차오르면 더 이상 이부자리에 축 처져 있을 수 없다. 어떤 날은 음악을 듣느라 뒹굴거릴 때도 있는데 나와 잘 맞는 음악이 나오면 일어나서 부스럭대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자연스럽다’는 것이고 음악 연주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소리를 닮은 것이다. 숲이나 정원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나뭇잎이 팔락대는 소리가 없다면 그 풍경은 그림과 다름이 없다. 청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애벌레가 꿈틀대는 소리나 뿌리가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도 들을 것이다. 가끔 우리는 큰 나무의 둥치를 안고 나무의 울림을 듣기도 하지 않는가! 셀 수 없는 생물과 무생물의 교향곡이 바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중학생 때 합창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학교들에선 학생 활동으로 매년 빼놓지 않고 구기대회와 합창대회를 했다. 반 대항으로 열리는 구기대회는 학생들의 단합에 한몫했다. 여학생은 피구나 발야구를 했다. 물론 운동을 잘하는 친구의 어깨가 무겁긴 했지만 선수는 선수대로 응원단은 응원단대로 신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합창대회는 왜 그런지 분위기가 영 달랐다. 반주자와 지휘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합창은 왜 매번 티격태격했던 것일까.

합창이란 게 반 친구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다 보니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골나고 누군가가 소외되면 화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휘자는 음악성이 기본이지만 그것보다 균열되려는 친구들의 마음을 한 가닥으로 붙잡아 매어 두는 리더십이 절실했다. 나의 기억에 음악은 그렇게 솔직했다. 모두의 음성이 하나 되어 화음을 이루고 한 사람의 소리인 양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려면 한 점 마음의 티도 허용되지 않았다. 늦은 저녁까지 합창 연습을 하다가 말 안 듣는 친구 때문에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만 지휘자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반 친구가 60명이 넘었고 그 안에는 공부 잘한다고 거만 떠는 친구부터 멋쟁이 날라리 친구에다 소극적으로 움츠린 친구와 와일드한 친구까지 별별 성격과 갖가지 목소리의 소유자가 난무하니 지휘자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한참 고난의 시간을 지내고 반 대항 합창대회가 시작되던 날, 나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5개 정도의 각 반이 단상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데 열정과 단합과 일치된 마음들이 하나 되어 유명한 세계적 합창단 못지않은 화음을 울려 냈다. 두 달여의 연습 끝에 친구들은 불평하고 싸우고 원망하면서 어느 새 서로를 다독이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어떤 활동보다도 합창대회가 인상적임은 내가 그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합창은 아름답다. 주위 사람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소리를 다독이는 그 순간, 서로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교향악도 마찬가지다. 특정 악기가 독주할 때 다른 악기들은 숨을 고르며 자신이 등장할 시각을 카운트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악기가 중대한 역할을 맡는 순간 가슴은 떨리고 손에 땀이 차오른다.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 악기의 연주자처럼 어느 순간엔 차례를 기다리며 쉬어도 결정적 시간에는 자신의 역할을 최대치로 해낸다. 같은 악기 또는 다른 악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느 정도의 강도와 크기로 연주할지 시시각각 주의한다.

그렇다면 합창과 교향악을 통솔하는 지휘자는 어떤가? 인생의 지휘자는 자연이다. 자연이어야 자연스러움을, 아름다움을 구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휘자는 자연의 소리를 재현하는 사람이다. 악보뿐 아니라 연주자 각자의 마음을 읽어 내고 하나로 끌어 내는 재주꾼이어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했다. 이는 춘추시대의 고사성어 ‘백아절현(伯牙絶絃·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연주를 공감해 주는 친구 종자기가 있었다. 백아가 높은 산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아 태산처럼 웅장하네”라 하고, 큰 강을 연주하면 “도도한 강물이 황하 같다”고 마음을 읽어 주었다. 그런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니 백아는 더 이상 연주할 마음이 없어졌다.

부부 사이의 애정 또한 금슬(琴瑟)에 비유된다. 거문고와 비파는 둘 다 현악기인데 두 악기 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기가 워낙 힘듦에서 나온 말이다. 금슬이 좋으려면 피나는 노력이 따른다. 사람의 마음을 현(絃)악기에 비유한 것은 마음이 갖는 울림과 반향을 떠올린 것이다. 마음은 그렇게 예민하기도 웅장하기도 하다. 곧 가정의 달 5월이다. 부부 사이에 부모자녀 사이에 형제자매 사이에 지음과 금슬의 아름다움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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