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정부는 과감한 세출 구조개혁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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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투입 우선순위 조정, 기존 지출 과감히 메스 대라
치밀한 준비와 공청회 등으로 국민적 공감대 만들어야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07 06:31:30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변화에 맞추려면 과거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기준(뉴노멀)과 이에 걸맞은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 심지어 개인에게까지 공통으로 적용된다.

오늘까지의 성공 방정식이 내일에도 통할 것이라는 안일한 자세로는 살아남을 확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남의 것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는 단순 추격자에서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거대한 체스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의 여러 여건을 주시하고 있는 글로벌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급격한 추락은 아니더라도 성장 속도가 계속해서 둔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후퇴를 멈추기 위해 제동을 걸 수 있을 만한 강력한 처방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패러다임 시프트를 더는 늦출 수 없다. 지난 60여 년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일방적 국가 주도의 산업화·민주화 모델이 계속 유효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내부 곳곳을 보면 온통 권위주의와 허례허식이 겹겹으로 도배가 되어 있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국가가 감당해야 할 예산 범주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국가부채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존 예산 사용 범위를 축소하지 않고 부채는 부채대로 계속 증가하다 보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허다하다. 이 과정에 모랄헤저드에 더해 비리와 부정부패가 판을 친다.

예산의 주인은 분명히 국민인데 예산에 눈독을 들이는 좀비들이 사방에 넘쳐난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가장 엄중한 현안은 양극화의 확대와 수축 사회의 확산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가 처한 현실이 더 비상하다는 것이 문제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어 1997년 IMF 위기 이전의 20%에 비해 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이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다.

중산층의 비중은 줄어들고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작년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세계 최하위이고 올해는 0.6명대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대두되고 있는 마당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이 진영으로 나뉘어 분노가 폭발하고 사회 불안이 증가한다. 저출생으로 인한 세대 갈등마저 심각하다. 특별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이런 현상을 멈출 방도가 없다.

여소야대의 정치판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갖은 포퓰리즘적 정책을 남발한다. 총선에서 이긴 야권은 민의라면서 민생회복 지원금 25만 원을 주자고 목청을 높인다. 정부는 신생아를 위한 아파트 특별 공급에 더해 자녀 1인당 현금 1억 원을 직접 지급하자는 여론조사에서 63%가 동의했다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지난 2006년부터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출생률 극복이 되지 않았다는 고언을 한다. 여하튼 사회의 수축을 억제하기 위한 효율적인 대책이 시급하고 국가 예산의 추가 투입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다른 부문의 예산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13조에 달하는 민생회복 지원금, 24조에 달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 수십조의 지방교육교부금 등 논란이 많은 예산을 그대로 두고 밀어붙이면 얼마 가지 않아 국가가 거덜 날 것이다. 이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넘길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국가 예산에 의존하여 연명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발에 차일 정도다. 산업화·민주화가 진행되던 당시엔 필요에 의해 생겨나긴 했지만 이미 존재 가치나 의의가 없이 수명을 다한 곳들이 수두룩하다. 전관예우의 낙하산 인사들이 자리를 잡고 정부 예산에 파이프라인을 대어 예산을 갉아 먹는다. 기능이나 역할을 변경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첩되는 업종별 단체가 수도 없이 많으며, 그중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무역협회 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중진공이 해외 마케팅에 관한 국가 예산을 전담하고, 이익단체인 무역협회가 이렇게 큰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예산 낭비와 비효율이 극에 달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다 보니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방만한 정부 구조나 여의도 정치도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줄일 수 있는 세출을 줄여야 격차 해소를 위한 복지와 인구 소멸을 저지하는 데에 더 많은 예산 투입이 가능하다. 그것이 국가 패러다임 시프트의 출발점이다.

거미줄처럼 얽힌 규제와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 칸막이를 허무는 차원을 넘어 부처 통·폐합을 통한 작은 정부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무원 수도 과감히 줄여야 한다. 공무원 가운데 34% 이상이 이직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하고, 보직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고위직의 수가 넘쳐난다.

여당이 제안한 여의도 정치 개혁도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개혁에는 거센 저항이 뒤따른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준비와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 등으로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내야 한다. 의료개혁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무리 정당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졸속으로 처리하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고 후유증이 남아 모두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