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성폭행범이 최근 전입한 지역에서 주민들이 공포에 떠는 등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한국형 제시카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원 발바리’로 불리는 박병화는 경기 수원 지역 빌라에 침입해 젊은 여성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5년을 살다 나왔다. 출소 후 화성시에 살았던 그가 수원시로 이사하면서 이 일대가 공포에 떨고 있다. 연쇄 성폭행범이 무서워 이사를 가야겠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다. 범법자가 두려워 선량한 주민이 거주지를 떠나야 하는 이런 사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박병화는 2002년부터 5년간 수원시 일대에서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돼 15년간 복역하다 2022년 10월 만기 출소했다. 출소 후에는 화성시 봉담읍 대학가 원룸에 입주해 거주해 오다 지난달 수원시로 전입해 온 것이다.
박병화가 연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던 곳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집회를 열고 박씨의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박병화의 거주지 주변에는 중·고등학교 10여 곳·아파트 단지 10여 개가 몰려 있어 주민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현 상태라면 공포감을 크게 느껴 지역을 떠나가는 주민도 나올 수 있다. 조두순 사건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2008년 12월 아침 등굣길의 8세 여자 어린이를 끌고 가 끔찍한 성폭행을 저질렀던 조두순은 12년을 복역하고 2020년 출소해 경기 안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때 불과 1km 거리에 살던 피해자 가족은 가해자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 결국 이사를 가야 했다.
지난해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을 21대 국회에서 대표적인 법안으로 추진했다. 조두순·박병화 등 강력 성범죄자들이 출소하면서 거주 지역에 일대 혼란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실을 개선코자 한 것이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미국 ‘제시카법’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에서 일어난 아동 성범죄 피해자인 ‘제시카 런스퍼드(사건 당시 9세)’의 이름을 붙여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르면 12세 미만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최소 징역 25년 적용 △출소 후 영구적으로 위치추적 장치 부착 △아동이 많은 학교나 공원 주변 거주 금지 등의 법령을 따라야 한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됐다.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관리 강화를 위해 이들의 출소 후 거주지를 법원의 결정으로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 법안이 헌법상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발목이 잡혀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멈췄고 21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만일 21대 국회에서 제대로 처리가 됐다면 성폭행 피해자나 주민이 가해자를 피해 이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두순·박병화 못지않게 악명을 떨친 성폭행범 김근식이 출소하게 되면 똑같이 주민의 불안과 공포감을 일으킬 게 불 보듯 훤하다. 2000년·2006년 등 미성년자 연쇄 성폭행 혐의로 수감 중인 김근식이 2027년 10월 출소하면 거주지를 둘러싸고 주민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고위험 성폭력범이 출소한 뒤 자리 잡게 되는 거주지 인근에 사는 주민이 불안해서 이사를 가야 한다면 이는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범죄자의 거주 이전의 자유 보장이 일반 국민의 거주 안정을 비롯한 일상적인 안전에 위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22대 국회가 하루 속히 ‘한국형 제시카법’을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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