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14일부터 11월13일까지 ‘독방에서 독립까지’ 공동기획전을 개최한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최근 발굴된 경성구치감 독방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일제가 1935년 신축한 경성구치감은 283개 감방 중 242개가 독방으로 구성됐다. 일명 사상범으로 분류되는 독립운동가를 격리하기 위한 장소였다.
전시가 진행되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갖은 고문과 형벌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하늘을 가릴 듯 높은 담장은 그 안에 갇힌 수감자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서대문형무소가 개소한 것은 1908년 10월21일의 일이다. 1907년 한일신협약(일명 정미조약)으로 사법권을 장악한 일제는 감옥 제도 전반을 일제의 감옥법에 맞추어 재구성했다. 이에 서울 현저동 일대 1만3000㎡의 부지에 수용인원 500여 명 규모의 감옥을 신축하였다.
일제는 본국의 체제 강화를 위해 1925년 4월 치안유지법을 실시하였고 이 법률에 의해 1920년대 중후반부터 이른바 사상범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사상범 검거 숫자는 1930년대에 이르러 사회문제화 될 정도로 증가했다. 당시 신문에 사상범의 증가에 따른 감옥의 부족과 열악한 환경이 연일 보도되었고 특히 조선총독부는 사상범에 의한 ‘사상의 감염 방지’에 안간힘을 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제는 서대문·함흥·대전 3개소의 감옥에 사상범 전용 구치감을 건설했다. 그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이 서대문형무소에 지어진 경성구치감이다. 약 4년여 공사 끝에 6개동의 옥사 및 청사·영치창고·기관실을 갖춘 대규모 구치감이 1935년 6월 완공되었다.
이로써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서대문형무소는 수용인원 3000여 명에 근무인력 300여 명의 일제강점기 전국 최대 규모의 감옥으로 운영되었으며 경성감옥·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서울형무소·서울교도·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달리하며 1987년 11월까지 사용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성구치감 독방의 실체와 독방에서 독립을 꿈꿨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전시물로 만나볼 수 있다.
도산 안창호와 몽양 여운형의 이야기는 인공지능(AI)으로 구현돼 관람객이 독립운동가와 소통하는 체험형 전시 콘텐츠도 경험할 수 있다.
한편 독립기념관은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의 공동기획전을 시작으로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전남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도 공동전시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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