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으로 자갈의 표면을 훑는 바닷물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맨발에 닿는 차가움. 썰물이 빠져 나간 자리. 바람이 지나간 자리. 모래 위에 남겨진 자국. 아이의 발자국은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이 드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하운을 흔들어 깨웠다. 손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시 병실이었다. 하운이 눈을 떴다. 다시 침대였다. 콘크리트처럼 굳은 줄 알았던 슬픔이 깨어났다. 꾸역꾸역 소용돌이치며 서러움이 복받쳤다. 이름 지을 수 없는 상실감이 발사체와 분리되는 로켓처럼 한순간 튕겨 올랐다. 11주가 지나면 아이의 성별이 결정된다는 걸 알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더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간호사를 밀치고 맨발로 슬리퍼를 꿰어 신고 병실을 나왔다.
깨진 유리 조각을 밟는 것 같았다. 그날 부서진 영혼은 영원히 복원되지 않을 것 같았다. 눈물이 양쪽 귀로 흘러내렸다. 하운은 두 다리를 꼭 붙이고 무릎을 끌어당겨 빈 배를 끌어안았다. 비로소 애도 의식이 끝났다. 하운은 여전히 너무도 아프게 살아 있었다.
“최 박사님을 찾아갔던 건, 죽기 위해서였어요. 그 몰골로 죽은 채로 발견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날….”
거기까지 말한 하운이 뒤돌아섰다.
“살고 싶었어요. 아이를 죽이고도, 살아 있고 싶다는 걸 알았어요.”
하운이 허탈하게 미소 지었다. 푸르르 떨리는 입술을 감추려 이를 악물었다.
“처음이었어요. 그날 이후. 나 아닌 다른 생명을 품어 보려 했던 마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 아이한테 줄 수 없었던 모성애를 흉내 낸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어요.”
하운은 문장을 완성하며 몇 번이나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내 슬픔까지 짓밟도록 허락할 수는 없어요.”
나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하운에게 기대했다. 날 이해해 주길. 날 사랑해 주길. 날 안심시켜 주길. 그러나 내가 이 여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럴 여유가 내겐 없지 않았는가. 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떻게 했다면 이 여자가 지금도 내 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해야 내게 남은 몇 시간,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고 용기를 줄 수 있을까.
“난 지쳤어요. 살고 싶은 마음도 포기했어요. 난 죽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응석 부리는 아이처럼 중얼거렸다.
“설사 오늘 당신이 죽는다 해도, 나는 죄책감을 갖진 않을 거예요.”
하운은 가혹했다. 더 이상의 동정이나 연민은 내게 주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알아요. 당신은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빛을 소망하고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걸. 삶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그렇게 의식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살아남을 거예요. 그래서 놓아 주는 거예요. 당신을 살고 싶게 하는 아내를 찾아가라고. 그러나 모르겠네요. 당신이 아내를 되찾을 수 있을지.”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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