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불평등’ 혹은 ‘상대적 박탈감’. 국내 미성년자가 손에 쥔 금융 자산이 10조 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는 소식에 여론은 한 색깔로 물들었다. “비정상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아니길 바랄 뿐”과 같은 댓글부터 “사적 자산 내역 공개는 개인정보 침해 아니냐”는 지인의 한탄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수억 원의 자산을 안고 출발선에 선 이들의 존재가 계층 간 격차를 다시금 일깨운 탓일 것이다.
7월 말 기준 국내 19개 은행의 18세 이하 예·적금 잔액은 9조7413억 원, 계좌 수는 900만 개에 육박한다. 1억 원 이상 고액 보유자만 2500명이 넘고, 10억 원 이상 초고액 계좌도 불어나고 있다. 국내 금융 생태계가 맞이한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 사례다. 양극화라는 프레임으로만 해석하기엔 가계의 자산 관리 전략과 금융 환경이 이미 고도화됐다. 적법한 과세 절차를 거친 자산 승계가 정당한 부의 이전이자 조기 금융 교육의 결실이라는 측면으로도 조명돼야 하는 이유다.
자산 승계 중심축은 ‘사후 상속’에서 ‘투명한 선제 증여’로 옮겨갔다. 0~5세 영유아 계좌 잔액이 2조 원을 넘어서고, 계좌 수가 112만 개에 달한다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 세대가 법적 공제 한도를 적극 활용하고, 초과분에 대해 정당하게 증여세를 신고·납부하며 장기적인 자산 형성 플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부의 조기 이전을 ‘부의 불평등’이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프레임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적법한 승계 과정을 거쳐 납부된 증여세는 국가 재정 확충과 안전망 강화에 기여하는 ‘사회적 공헌’ 성격을 띤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은 국가 인프라 확충과 복지 재정의 밑거름으로 깔린다. 정당한 부가 합법적인 승계 절차를 거치며 과세 기반을 넓히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본인 명의 계좌로 이자 수익과 복리 효과를 경험하는 건 교과서 이론을 넘어 실질적인 ‘금융 이해력 훈련’으로도 작용한다. 예·적금부터 주식까지 다양한 금융 상품을 접한 감각은 시장 생리를 이해하고 건전한 투자관을 세우는 자양분으로 남는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역시 적지 않다. 미성년 자산은 단기 시세 차익이나 일회성 소비로 휘발되지 않고 수년에서 수십 년간 금융권에 체류하는 ‘장기 안정 자금’ 역할을 한다. 이러한 장기 고정 자산 증대는 금융권 수신 기반을 다지고 국부의 선순환 체계를 뒷받침하는 체력으로 새겨진다.
물론 자산 이전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고 편법 증여나 자금 출처 미비 등 제도적 허점을 바로잡는 노력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산의 투명성을 확보한 부의 승계가 비난받을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다. 자녀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마련하려는 부모의 책임감, 그리고 절차적 정당성을 지닌 부의 승계 절차를 존중할 때 선진 금융 생태계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될 것이다.
‘미성년 자산 10조 원 시대’가 던진 화두는 부의 세습에 대한 경계가 아니다. 정직한 납세와 투명한 절차를 통해 성숙해진 우리 사회의 자산 운용 지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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