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란 일반적으로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꾼다는 뜻이지만 영화번역이라는 작업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번역은 내용 뿐 아니라 감정을 머리와 마음에 동시에 전달하는 일이죠.”
국내에 소개된 일본영화 중에서 ‘러브레터’, ‘너의 이름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흥행작이라는 점 이외에 또 하나가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만의 부단한 노력으로 번역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강민하(44)라는 스타 번역가의 번역을 통해 소개됐다는 점이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고 학창시절에 영화기자라는 꿈을 꾸기도 했으며 대학교 전공도 신문방송학이었어요.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일본 교환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겼고 당시 처음 생긴 영화잡지인 ‘씨네21’ 일본통신원으로 활동하게 됐죠.”
강 번역가는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시상하는 피아영화제를 취재하게 됐고 영화기자로 활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일본 영화제에서 통역을 맡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문 번역·통역가로 자리 잡게 된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
“일본 영화제에서 통역일을 한 후, 귀국 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본 영화인들을 위한 통역 업무와 영화제 일본영화 번역 일을 하게 됐어요. 영화와 통·번역이라는 두 분야에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었던 시기였고 마침 일본 영화들이 정식으로 국내에 수입되면서 번역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죠.”
20년간 일본영화 번역과 통역을 담당하며 자신만의 영역 개척에 나서
“첫 작품이 1999년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였어요. 지금은 영화 번역 의뢰를 받을 때 스크린과 대본을 온라인으로 받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떠서 대본과 함께 집으로 우편물로 보내줬어요. 그때는 한 작품에 2주 정도 걸렸어요. 평소 번역하면서 국어사전, 한일사전, 일한사전, 인명사전도 찾아보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죠. 요즈음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어서 작업시간이 반 정도로 훨씬 단축됐어요.”
강 번역가는 일본영화 번역이라는 미개척 영역에 뛰어들어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다고 밝혔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지금에 비해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 영화의 자막 번역을 시작했을 때는 무척 막막했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는 시절이라 직접 극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해야 했죠. 예컨대 화면에서 자막이 어떠한 길이로 나와야 하는지 알기 위해 극장에 직접 가서 보고 스스로 터득해야 했어요. 그 당시에는 일본 영화를 번역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제가 거의 첫 개척자였던 셈이죠. 번역일과 함께 하고 있는 통역일도 마찬가지였어요.”
강 번역가는 ‘우나기’라는 일본 영화를 번역하고 이후에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인 ‘러브레터’을 번역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번역을 많이 했는데 그중 대표 작품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있고 멜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다.
“제가 번역한 일본영화가 300편 정도 돼요.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생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손꼽는 작품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예요. 이와이 슌지 감독은 지금도 인기가 많지만 그 당시 국내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감독이었어요. 그 감독님의 작품들을 번역과 통역을 하면서 감독님과도 많이 친해지고 연락도 자주 하는 관계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었죠.”
강 번역가는 이외에도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날씨의 아이’, ‘기쿠지로의 여름’, ‘하나의 앨리스’, ‘조금씩 천천히 안녕’,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고 소개했다.
“그 중에서 지난해 개봉한 ‘날씨의 아이’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지금 제가 ‘날씨의 아이’의 더빙용 작업도 하고 있어요. 자막과 더빙용 번역은 많이 다르죠. 특히 호흡이 중요해요. 호흡에 맞춰 모든 상황을 캐치하고 전달해야 하니까요.”
강 번역가는 자신이 초기에 일본영화번역이라는 불모지에서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체득해서 조금씩 길을 닦아온 것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으로 역경을 씩씩하게 견뎌나가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날씨의 아이’ 주인공 ‘히나’예요.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캐릭터라서 정말 마음에 들어요. 슬픈 상황이지만 씩씩하게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죠. 요즘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때에 여러분들도 다시 한번 보시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번역, 특히 영화번역은 여러 가지 제약사항이 있어서 많은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번역해야 하는 만큼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강 번역가는 그 중에서도 ‘너의 이름은’ 번역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신카이마코토 감독 작품의 ‘너의 이름은’을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전작들을 보면서 많은 준비를 했어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관객 370만명 이상을 끌어모으면서 국내에 개봉한 일본영화 중에서 성공한 영화이지만 번역이 힘들기도 했고 또 많이 수정했던 작품이네요.”
“예를 들어 한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갖고 있을 때는 다중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엄청 고민을 하게 돼죠. 때로는 영어자막을 참고하기도 했고 우리 젊은 층이 쓰는 용어를 차용해서 쓰는 식으로 번역을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많이 했어요. 더빙판을 낼 때는 바꾼 단어도 많았어요. 이 영화에는 노래들이 많아서 나중에 싱어롱 버전 상영을 해서 가사 번역도 했었구요.”
강 번역가는 ‘자연스럽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자신의 번역 철칙으로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번역은 의미를 전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지만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전달자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번역의 목표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중간에 걸림이 없는 번역이에요. 일본문화를 아는 팬들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하지 않고 우리말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강 번역가는 자신의 철칙에 따른 번역의 과정을 거쳐 작품이 새로 탄생하는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좋은 작품, 좋은 번역이 항상 흥행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 부분이 아쉽다고 밝혔다. 또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소통이 번역 작업에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첫번째는 바로 작품의 힘, 감독의 힘과 작품들 만드는 스태프들의 힘이고, 두번째는 영화 수입배급사, 마케팅 홍보사의 힘이고, 세번째는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번역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잘 안되면 관객이 5000명도 안 되는 영화도 많아요. 다양한 작품들을 했지만 번역한 작품이 잘 안되면 많이 속상하죠. 제가 번역한 영화들을 여러 번 보시는 관객 분들께 항상 감사하고 저 역시 번역가로 자부심도 느끼고 더 열심히 번역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 역시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관객들의 피드백을 잘 받아서 실수를 최대한 줄이면서 번역하기 위해 노력하죠. 저의 번역 작품을 사랑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정동현 기자/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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