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일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병든 닭 몇 마리를 골라내기 위해서 투망을 던지면 그 안에 모인 닭들이 다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해결책이 이거 하나인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진경제로 갈수록 법보다 규범에 의해서 해결할 일이 많아집니다. 법만으로 모든 걸 규정하다보면 지나치게 되는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를 규범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법으로 할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관련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남긴 말이다. 사실상 호소에 가까운 박 회장의 발언은 그동안 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에서 제기돼 온 우려를 응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안 시행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꾸준하게 대화하고 토론해 최상의 결과를 찾아야 한다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기업규제 3법 잘못되고 후회스러운 것” 노(老)회장 호소에도 與 “어떻게든 처리할 것”
기업규제 3법 추진을 두고 주요 경제단체는 국회 등 정치권에 거듭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코로나 사태로 불확실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법안은 개별 기업은 물론 국내 산업, 나아가 국가 경제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기업규제 3법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을 일컫는 단어다. 상법 개정안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및 선임·해임 규정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속고발제 폐지·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등 법집행 체계 개편 △사익편취 규제 강화·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기업집단 규율법제 개선 등이 주요 내용이다.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의 경우 △자산 5조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춘 비지주 금융그룹을 감독대상으로 지정 △위험관리 체계 구축 및 자본적정성 점검 등 금융그룹 감독방안 마련을 주요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법은 특정 기업 한 곳을 타깃으로 만들어져 논란이 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과 깊이 연관이 있다.
경제계는 상법 개정안에서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규제 강화를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규제로 회사의 책임 경영과 리더십에 관련한 핵심 의사결정체계의 근간을 흔들게 될 소지가 있고 외국계 헤지펀드 등에 의한 주식배당 확대와 국부유출 문제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자회사를 통한 전략적, 미래 신산업·신기술 투자에 대한 안정적 실행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소송 남발, 법적 대응능력 부족에 따른 심각한 경영 타격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전속고발권 폐지의 경우엔 경제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1차 판단을 거쳐 검찰 고발 여부가 결정될 수 있도록 전속고발권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게 경제계 입장이다. 지주회사의 지분율 요건 강화로 지주회사의 성장을 저해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실물경제로 유입돼야 할 자금이 지분 확보에 과다하게 지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우리 기업의 신성장동력 확보가 어려워진다. 경제계는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제 내용이 시행령에 위임돼 있으므로 향후 금융그룹에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기업규제 3법 추진 의사를 밝힌 이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경련),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단체는 공동성명 발표 등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꾸준히 전달해 왔다.
특히 손경식 경총 회장은 정치권에 기업규제 3법 추진을 보류해달라는 뜻을 거듭 호소하기도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이번 국회에서는 규제적 법안 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과 투자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 경제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기업의 의견과 현실을 폭넓게 반영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 공정경제TF 정책간담회에서는 인사말을 통해 “기업들이 법을 위반하거나 반칙을 한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처분을 받아야겠지만 사전적이고 원천적으로 경영이나 사업을 제한하는 규제를 가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뛰기가 힘든 상황이다”며 “규제가 손실을 가져온다면 이는 잘못된 규제이며 후회스러운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고용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해외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신산업을 위한 경영전략과 과감한 실물투자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에서 우리 기업들을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경제계의 호소가 무색하게 정부·여당은 기업규제 3법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경제계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은 내비쳤지만 이를 수용하거나 법안 내용을 재검토하겠다는 등의 태도는 취하지 않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손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업계의 우려를 듣고 함께할 건 함께하며 또 부분적으로 보완할 게 있다면 보완하겠다”면서도 “다만 이걸(기업규제 3법)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공정경제TF 위원장도 경제계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저희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할 법안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정기국회에서 법을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무조건적인 반대는 곤란하다”며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을 처리할 것이다”고 못 박았다.
경제단체들 “기업규제 3법 통과되면 한국에선 기업 못한다”
정부와 여당이 기업규제 3법 강행의지를 거듭 내비친 가운데 스카이데일리는 해당 법안에 대한 주요 경제단체의 입장을 청취해 봤다. 경총을 비롯한 각 경제단체는 기업규제 3법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기업경영 여건이 크게 악화되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 자체가 외부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경제단체는 “기업규제 3법은 한국에서 기업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는 푸념을 전하기도 했다.
기업규제 3법과 관련해 경총 관계자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이슈 등이 가장 큰 현안으로 풀이되는데 정부와 여당이 경제계 의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며 “경제계의 우려가 큰 만큼 기업규제 3법의 신중한 검토를 희망한다”고 피력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규제 3법과 관련해 경제계가 많은 의견을 냈는데 정치권이 형식적으로 의견 수용은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영된 게 없어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기업규제 3법 통과로 경영권 위협 등이 현실화 될 수 있는 만큼 기업집단 경쟁력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다 어려운 시기다”며 “기업이 기존에 하던 사업도 정리하는 상황서 기업규제 3법을 추진하는 건 상당한 부작용이 뒤따를 우려가 있으므로 법 추진이나 논의 시점을 제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강조했다.
중견련 관계자는 “상법을 적용받는 상장사의 88% 정도가 중소·중견기업이고 이들 회사들은 주식시장 상장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하곤 하는데 기업규제 3법이 통과될 경우 기업들이 상장할 유인이 적어지고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 측면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대기업도 부담이 크겠지만 소송리스크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기업규제 3법의 피해가 특히 클 것으로 관측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이 불법행위를 할 경우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되는데 일부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편화해 모든 기업이 잠재적 범죄자인양 법안을 추진하는 건 문제가 있고 글로벌 표준과도 거리가 있다”며 “리스크를 감수하며 신사업을 추진할 기업은 많지 않을테니 기업규제 3법은 혁신을 독려하는 정부의 의지와도 배치된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가장 우려스러운 법안이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대주주 지분율 3% 제한)인데 이 법안은 상법에서 말하는 1주 1의결권과 상충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이다”며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밖에 없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선 글로벌 플레이어로 여겨지는 기업들이 발목을 잡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위 ‘스파이 이사’가 기업에 침투할 경우 국부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소송부담이 커질 경우 중소·중견 기업들은 회사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며 “경영활동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소송 등 불필요한 부분에 집중하게 만드는 기업규제 3법은 결국엔 자멸을 불러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입장이 부담이 되는 입장이고 중소기업이 특히 걱정스런 부분이 많은데 기업들한테 부담을 주는 규제들을 도입하기 전에 규제들에 대한 현장의 의견, 목소리 충분히 청취했으면 한다”며 “또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해당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장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모든 경제단체가 문제가 많다고 하는 부분이 있으니 귀를 좀 기울여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은 보완해서 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강주현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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