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거인(巨人)’ 불리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고 이 회장은 첨단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사업을 새롭게 개척한 장본인이자 이를 발판삼아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재계 안팎에선 위대한 경제인을 떠나보낸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동시에 본격적인 3세 경영체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고 이 회장의 도전·혁신 DNA를 물려받은 후계 경영인의 활약과 이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기대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을만한 초대형 악재가 남아 있어 우려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약 1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상속세다. 전 세계 유례없는 과도한 상속세로 삼성그룹의 향후 행보에 제동이 걸리고 결국 국가경제에 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돼 국민적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상속세 개편을 촉구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기업경영 고민 할 시간에 세금걱정…징벌적 상속세에 멍드는 한국경제”
삼성그룹의 상속세 관련 이슈에 한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고 이 회장이 살아생전 보유했던 계열사 주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지배구조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엔 오너 리더십이 흔들려 종국엔 한국의 대표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삼성전자(4.18%), 삼성전자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6%), 삼성SDS(0.01%) 등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주식의 가치는 약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상적으로 주식에 대한 상속세는 상속시점 전후 총 4개월간의 평균가액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3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인 50%의 세율이 매겨진다.
여기에 최대주주 및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에 대한 20% 할증이 더해진다. 세금을 자진 신고할 때 3%의 공제를 적용해도 상속세 규모는 약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3월 정부의 1차 추경 예산안(11조7000억원)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재계는 역대 기업인 상속사례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인들의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은 내년 4월 말까지다.
현재 액수가 큰 만큼 상속인들은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를 활용해도 매년 1조80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한다. 개인적으로 마련하기엔 상당히 부담되는 액수로 평가된다.
재계 등에 따르면 무려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는 오너 일가 뿐 아니라 삼성그룹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악의 경우 리더십 부재라는 악재에 휩싸일 수 있다.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만약 고 이 회장 소유였던 각 계열사 지분이 공중에 붕 뜬 채로 남게 된다면 외국계 자본의 경영간섭이 현실화 될 수 있다. 앞서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은 삼성그룹의 크고 작은 현안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그룹 전체를 흔든 바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당은 일명 ‘삼성생명법’이라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데 이 역시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흔드는 악재로 꼽힌다. 지난 6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보유분을 시가로 평가해 총자산 3% 초과분(혹은 자기자본의 60%)을 처분해야 한다. ‘시가평가’ 기준으로 계산법이 바뀌기 때문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30조원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이처럼 시가로 계산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가치가 자산 3%인 9조원을 훌쩍 넘어서게 돼 결국 삼성생명은 20조원이 넘는 초과분을 시장에 내놔야 하는 처지다. 이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에 경영권을 행사하던 오너 일가의 지배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상속세 폐지’ 글로벌 트랜드 속 한국만 요지부동…“기업역량 저해, 경쟁력 약화 초래”
그동안 상속세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줄곧 부의 대물림과 편법 승계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활동 반경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국내 정서에 국한된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상속세법으로 인해 기업의 역량이 낭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나라들의 경우 상속세법 완화로 기업들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OECD 36개 회원국 중 캐나다 호주 등 13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미시행 중이다. 포르투갈·슬로바키아(2004년)를 기점으로 해서 스웨덴(2005년), 러시아(2006년), 오스트리아(2008년), 체코(2014년) 등이 잇따라 ‘상속세 없는 국가’를 선언했다.
미국·독일·영국에는 상속세가 있지만 한국처럼 세율이 높지 않다. 미국과 영국은 상속세율이 40%지만 직계비속이 기업을 승계하면 기업 규모에 따라 50~100% 공제해 상속세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상속세를 과도하게 부과할 경우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 몰락해 자칫 실업대란이 발생하고 종국엔 재정과 복지까지 무너져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명목세율은 50%로 일본 55%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최고 세율로 단순 비교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벨기에(80%), 프랑스(60%), 일본(55%) 등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러나 벨기에, 프랑스 등은 가족에게 상속할 경우 각각 30%, 45%를 우리나라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또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일본 보다 무려 10%나 높아 OECD 국가들 중 1위 수준을 차지하게 된다.
징벌적 수준에 가까운 상속세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상속세의 대대적인 수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 이건희 회장 사후 이후 삼성전자가 중대한 기로에 놓인 만큼 상속세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검토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며 “현재 OECD 36개국 중 13개국은 상속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높은 상속세는 기업의 경제활동 제약은 몰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를 초래한다는 공감대 때문이다”며 “한국도 상속세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쪽의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나친 상속세 과세로 삼성전자가 해외투기세력에 넘어가는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창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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