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문용균 팀장|오주한·이창현·오창영 기자]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고 말했다. 당시 발언은 많은 국민의 기대감을 드높였고 반응은 고스란히 지지율로 나타났다. 취임 100일째에 나온 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78.6%를 기록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였다.
그러나 집권 4년차에 접어든 현재 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공염불이 됐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기회의 평당,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 등에 있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여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대북전단금지법 등 입법독주, 적폐청산을 앞세운 야당 표적수사 의혹,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복귀와 관련된 사법부 개혁 주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 여론은 고스란히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이달 4∼6일 전국 18세 이상 1505명에게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5%p.)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이 35.1%로 집계됐다. 지난주 36.6%에서 1.5%p 하락한 수치다. 부정평가는 지난주 59.9%에서 61.2%로 1.3%포인트 상승했다.
대통령 딸 관련 의혹 제기한 野의원, 文대통령 수사지시로 피의자 신세 됐다가 결국 무혐의
2019년 3월 문 대통령은 6년 전인 2013년 발생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수사를 법무부에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등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히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공신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직접 수사 지시로 해석돼 검찰청법 위반 논란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사정당국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검찰 내에서 최고의 형법제도 이론가로 알려졌던 이완규 변호사는 “대통령은 법이 아닌 여론을 업어 수사를 밀어붙였다”며 “대통령이 정 그런 뜻이 있다면 법무부 장관에게 얘기할 수는 있고 법무부 장관은 개별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만 지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이 대통령 발언의 위법성을 알고도 따르는 이유에 대해 “인사권에 지배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해당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화살이 야당을 향했다. 정확히는 문 대통령 딸 문다혜 씨의 해외이주 특혜 의혹 등을 제기해 청와대와 대립하던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문 씨 관련 의혹은 청와대가 곽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경고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 사안이다.
여권에서는 성접대 의혹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성접대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을 특정해달라고 의뢰하자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국과수를 찾아 결과를 별도 통보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국과수 관계자들도 청탁을 받았었다며 가세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 지시가 내려진지 불과 약 한 달 만에 검찰은 곽 의원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고 전방위적 조사에 나섰다. 곳곳에서 곽 의원의 혐의가 사실이라는 주장이 쏟아졌고 검찰은 범죄 혐의가 짙어 정식으로 사건번호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곽 의원이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야권에서는 “권력형 비리 의혹을 파헤치던 전 정부 인사에 대한 정치보복이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수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수사 결과 곽 의원의 혐의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월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뇌물수수, 성접대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곽 의원은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성접대 의혹 사건 당시 수사했던 경찰관들이 민정수석실 외압을 받은 적 없다고 진술했다며 국과수 행정관 파견도 수사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혐의 처분 이후 곽 의원은 “내가 아무리 대통령 딸 문제를 거론했다 해도 이건 정권이 너무 심했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곽 의원 불기소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전 의원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왜 빠졌나”며 야당을 겨냥한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여당 저격수 자처한 野원내대표, 실체 없는 루머로 공격 받다가 결국 낙선
얼마 전 TV예능에 출현해 인간적인 모습으로 여론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 전 의원도 곽 의원과 유사한 일을 겪었다. 그는 야당 원내대표 시절 문 대통령을 ‘신(新)독재자’로 규정하며 맹렬히 맞섰다 아들 김모 씨의 논문저자 등재, 원정출산 의혹 등 갖종 루머에 휩싸이면서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김 씨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려 2015년 미국에서 열린 학술회의 때 발표된 의공학 포스터에 교신저자로 참여한 서울대 의대 교수 윤모 씨는 2019년 10월 언론에 나 전 의원의 청탁 의혹을 주장했다. 나 전 의원이 아들을 제1저자로 등재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했다는 요지였다. 직후에는 아들 원정출산 의혹도 터졌다.
나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내는 등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는 2019년 7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정권이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아닌 이 정권의 절대권력 완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이것이 바로 이코노미스트(영국 대표 시사주간지)가 말한 신독재 현상과 부합한다”고 규탄하는 등 현 정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현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가하던 나 전 의원과 관련된 의혹이 쏟아지자 여당은 거센 공세를 쏟아냈다. 2019년 11월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포스터 의혹과 관련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고난도 연구 성과라는 전문가들 견해로 보아 입시를 위해 사실상 이름만 올렸을 것이라 강하게 의심된다”며 “국민의 좌절과 분노가 깊다”고 비난했다.
곽 의원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를 독촉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2019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나 전 의원 자녀 입시특혜 의혹 등에 대한 7건의 고발에 대해 고발 3개월이 지나도록 검찰은 압수수색을 한 차례도 안 했다”며 “검찰 중립을 지키겠다던 윤 총장 약속은 선택적 수사와 편파수사로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과 친문(親文) 지지층의 원색적 비난에 나 전 의원은 ‘조국 사태’를 가리기 위한 물 타기 작전이라고 대응했다. 그는 “수사 시작 동기가 너무나 불순·불량했다”며 “동원된 외부 세력이 고발장을 남발하자 민주당은 거기에 맞춰 ‘나경원 죽여라’를 수 없이 외쳤다”고 지적했다.
나 전 의원에게 제기된 의혹들은 결국 곽 의원과 마찬가지로 전부 허위로 드러났다. 검찰은 구랍 24일 나 의원에 대한 고발사건 13건을 증거 불충분 등의 사유로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같은 달 3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검찰의 기소 편의주의에 대한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고 있다”고 반발했다.
나 전 의원은 무혐의 처분 이후 “법조 카르텔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편의적 궤변에 불과하다”며 “누가 (나를) 수사했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초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 대한 윤 총장의 기소 지시 4번을 전부 어긴 것으로 알려져 항명파동을 일으켰던 이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대표적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정부·여당의 몰아가기 식 검찰 수사로 애꿎은 피해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현 정부 출범 후 서울 지역의 검찰 영장 기각률은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19년 1~5월 기각률은 △중앙지검 37.7%(전년 32.0%) △동부지검 38.9%(20.5%) △남부지검 33.3%(25%) △북부지검 38.0%(33.3%) △서부지검 60%(44.3%) 등이었다.
야당에선 해당 통계를 두고 적폐청산 등 검찰의 ‘정치수사’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지낸 정갑윤 전 의원은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구속영장 기각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증거 없이 여론에 편승하는 수사는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주한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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