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문용균 팀장|오주한·이창현·오창영 기자] 지난해 6월 꿈을 좇아 부단히 노력해 온 청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발생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문재인정부 ‘비정규직의 정규직’ 행보의 일환으로 협력업체 소속 보안검색 요원 1900여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인국공의 정규직 전환 소식을 접한 전국의 수많은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일 년에 한두 번에 불과한 공채에 목숨을 걸었던 취준생들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열심히 노력해야 합격할 수 있다는 당연한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취준생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가 결국 노력하는 사람을 바보 만드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이 발생한 후 반년가량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는 상황이다. 다수의 청년은 정부가 ‘과정의 평등’을 강조하는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결과의 평등’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노력의 대가를 보상받는 구조는 깨진 지 오래라는 푸념도 적지 않다.
서류는 블라인드, 면접에선 부모·학력 질문… 文정부 환상정책에 취준생들 혼란
올해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 김경모 씨(27·가명)는 얼마 전 한 중견기업에 최종 합격했다가 며칠 뒤 돌연 합격이 취소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김 씨는 “처음에 전화를 받고는 어이가 없었다”며 “갑자기 합격이 취소됐다는 이 상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해당 기업에서 합격이 취소됐다는 얘기를 전할 때 이유도 명확하게 알려주지도 않았다”며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들과 친구들,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도 하고 축하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 와서 합격이 취소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 씨는 합격이 돌연 취소된 데 대해 채용과정에서의 비리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현 정부가 주창하는 열린 채용 지침에 따라 서류 전형에서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했다. 자기소개서 가이드라인을 통해 출신 지역과 학교, 전공 등을 비롯해 어학 점수나 자격증 등 각종 스펙도 적을 수 없도록 했다.
열심히 공부해 서울 4년제 대학까지 나온 김 씨는 스펙을 내세울 수 없는 데 대해 불공정하다 느꼈지만 취지에 대해 국민 반응이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딱히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면접 전형 이후 그는 ‘열린 채용’은 현실과 거리가 먼 정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씨는 “운 좋게 서류 전형을 통과해 면접 전형 기회가 주어졌다”며 “만반의 준비를 통해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정작 면접관이 출신 지역과 학교, 가족관계를 먼저 물어봤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지원자는 면접관이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부모님에 관한 정보와 학력을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면접관이 별다른 제재도 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김 씨는 면접 전형 때의 상황이 혹시 최종 합격 취소 통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김 씨는 “최종 합격된 지 며칠 만에 갑자기 번복돼 합격이 취소되자 면접 전형 때의 일이 떠올랐다”며 “물론 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좋게 생각하고 싶지만 당초 서류전형 때부터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면 이 정도 허탈하진 않았을 것이다”고 씁쓸해 했다.
이러한 일은 민간 기업만의 일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남부발전)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채용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를 내세워 여러 지원자를 탈락시킨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일었다.
남부발전 역시 모든 전형에서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통해 직원을 선발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도입한 남부발전은 지원자의 성별·신체조건·용모·학력·연령 등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발생하거나 임직원의 가족이 우대 채용되지 않도록 하는 등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런 남부발전은 지난해 하반기 채용 과정 중 서류 전형에서 블라인드 채용 취지에 맞지 않은 정보를 입력했다는 이유로 지원자를 대거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일부 지원자는 블라인드 위반 사항이 무엇인지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남부발전은 어떤 부분이 위반됐는지 말해줄 수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발전과 지속적으로 통화를 시도한 한 지원자는 “인재경영실로부터 어떤 부분이 블라인드 위반 사항인지는 모르나 자기소개서상에 블라인드 위반 사실이 보인다는 불성실한 답변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지원자는 “수년간 남부발전 입사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해 왔다”며 “서류전형에서 블라인드 위반 사실이 있으나 어떤 부분이 블라인드 위반 사항인지 알려줄 수 없다는 남부발전의 발언은 실로 무책임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부발전이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악용해 일부 지원자의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미 내정자를 선정해 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해당 지원자 역시 “블라인드 채용 방식 뒤에 숨어 말로만 공정하게 인재를 채용한다고 해놓고 뒤로는 미리 내정된 구직자를 채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 사실이다”며 “이는 남부발전 입사를 목표로 하는 지원자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든 행위다”고 지적했다.
“취준생 체감 못하는 열린 채용… 기업에 자율권 줘야”
‘열린 채용’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문재인정부는 우리 사회의 채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오히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이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며 자평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취준생 대상 블라인드 채용 교육 횟수는 2018년 227회에서 2019년 230회로 소폭 증가했다. 공공기관 인사담당자 및 면접관 대상 블라인드 채용 교육 횟수 역시 2018년 8회에서 2019년 10회로 확대됐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블라인드 채용 교육에 힘입어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준수율이 2018년 12월 90.3%에서 2019년 12월 93.6%로 증가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실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현 정부가 주창한 열린 채용의 효과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효과 역시 체감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잡코리아가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취업 활동을 한 구직자 2635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채용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설문에 참여한 구직자 중 74.0%가 ‘입사지원서에 인적사항이나 출신 학교 등을 묻는 기업에 지원한 적 있다’고 답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한 채용에 기여한 정도가 얼마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보통이다’고 평가한 구직자가 48.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 28.9%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 12.3% △‘매우 기여를 했다’ 6.6% △‘전혀 기여를 하지 못했다’ 4.1% 등의 순이었다.
현 정부가 자랑하는 열린 채용이 공정한 채용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전체의 35.5%에 불과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용 정책이 취준생의 의지를 꺾고 구직을 포기하게 만들어 자칫 노동시장의 경쟁력까지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홍균 자유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이어 열린 채용을 통해 채용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나 역설적이게도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상황만 등장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열린 채용은 거창한 명칭 뒤에 숨어 노동시장의 균형을 깨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민간기업에 열린 채용을 강요해 채용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기업에게 공정한 경쟁을 통해 고용할 자율권을 주는 등 민간기업 차원에서 고용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악용한 내정자 채용, 낙하산 인사 등 논란투성이인 열린 채용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노동유연성을 높여 청년들의 일자리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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