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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3만명 가까이, 합쳐서 무려 9만명 가량 늘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수십 대 일,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처우와 복지가 좋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방역, 소방, 경찰, 군인, 민원 등 현장에서 진짜 고생하는 공무원에게 돌아간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러나 국민 혈세가 일상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 지침에 따라 해야 할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나태한 공무원들에게도 당연한 듯 지급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들은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지만 대국민 서비스의 품질의 개선은 커녕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만 양산하는 등 부작용만 낳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번 주 이슈포커스 주제를 ‘공무원 공화국의 민낯’으로 잡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3편에 걸쳐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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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박선옥 부장|한원석 차장·배태용·한대의·정동현 기자]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은 ‘정부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 부문에서 141개국 중 87위로 평가됐다. 이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는 ‘공무원의 민원처리 지연’이 꼽혔다.
‘공시 열풍’으로 치열한 경쟁을 거친 청년들이 공직에 들어가면서 공무원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내부에서도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공무원이 아직도 상당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갑질·늑장 민원처리에 국민만 속앓이… 탈세제보 지연 처리에 세수 손실도
수도권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박정양 씨(52·가명)는 얼마 전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박 씨는 서류 문제로 등기 공무원과 마찰을 빚었다가 곤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담당자가 낼 필요가 없는 서류를 요구해 이에 항의했는데, 그때부터 일종의 ‘태업’이 시작됐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담당 공무원은 자체적으로 폐기할 수 있는 서류를 가져가라며 박 씨에게 왕복 3시간이 넘는 곳으로 오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면서 박 씨가 신청한 업무처리는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다.
박 씨가 한 이의제기는 담당 공무원의 재량이 큰 사안이어서 번번이 묵살됐다. 그는 다른 경로를 통해 항의하는 방법도 시도해보려 했지만 ‘찍힐까’ 두려워 망설였다. 이런 가운데 업무처리가 늦어지면서 의뢰인의 재촉이 이어지자 결국 박 씨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문제로 반 년 넘게 씨름하면서 공무원들과 절대 부딪히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김세영 씨(55·가명)는 몇 년 전 귀국했을 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김 씨가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미국 운전면허증을 국내면허증으로 바꾸는데 담당 공무원이 서류를 잘못 알려줘 여러 차례 헛걸음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담당자가 자기가 모르겠다고 윗사람에게 물어봐야 된다고 말하는데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2년차 현직 9급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청원인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같은 공무원으로서 진짜 화나고 분통 터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잘릴 걱정 없다는 생각으로 배째라 드러눕는 공무원, 출장 달고 사라져서 퇴근 때 오는 공무원, 남들 일할 때 옆에서 드론 날리고 노는 공무원 등 별의 별 나태한 공무원이 너무나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나태 등으로 인한 업무처리 지연 사례는 한국에선 이미 흔하디 흔한 일이다. 가장 많은 민원을 다루는 부서 중 하나인 국세청만 보더라도 늑장 처리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8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에서 발간한 ‘2019 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말까지 국세청이 처리 중인 서면질의 2920건 중 접수된 지 1년 이상 지난 서면질의는 전체의 19%인 557건이었다. 6개월 이상 1년 미만인 질의 건수도 644건(22%)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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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세청 법령사무처리규정’에 따르면 국세청은 민원인의 질의가 담당부서인 징세법무국에 넘어갈 경우와 업무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에 이를 민원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5년 동안 국세청이 민원인에게 발송한 서면통지는 33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담당자가 업무처리 과정에서 민원인과 직접 통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별도의 서면통지가 없더라도 민원인이 상황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재위는 “납세자가 가산세 등의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서면질의 처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민원인에 대한 통지의무를 성실히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세수와 직결되는 탈세제보를 처리하는 데에도 이 같은 늑장 민원처리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감사원이 발표한 ‘탈세제보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부과 제척기간이 임박한 제보에 대한 조사를 지연해 과세하지 못한 금액이 가산세를 포함해 밝혀진 금액만 25억원가량이다. 공소시효 완성으로 100억원대 세금 탈루 혐의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전체 제보 중 204건(8.3%)이나 되는 탈세제보가 조사팀에 제공되지 않아 조사가 종결되기도 했다.
또한 이번 감사에서 2017~2019년 지급한 탈세제보포상금 896건을 점검한 결과 131건, 30억7000만원이 별다른 사유도 없이 뒤늦게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무려 2년 5개월이나 지급이 지연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민원 늑장처리는 비단 국세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정 처리 기간인 60일을 넘긴 민원은 2017년 752건에서 2019년 1661건으로 2.2배 증가했다. 민원처리 기간도 늘어 평균 민원 처리기간은 2017년(18일)보다 5일 늘어난 23일이었다.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 기름 많이 먹고 성능 시원찮은 고물차”
늑장 민원처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무원들도 할 말이 많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키려면 하루 3시간 이상 야근은 금지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는 공무원이 많다는 게 이른바 ‘빡센 부서’에 속한 공무원들의 하소연이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광역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부서별로 업무량 차이가 너무 심하다. 내가 있는 부서는 칼퇴근은커녕 야근을 하지 않으면 제 시간에 업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중앙부처 사무관도 “주 52시간 넘기지 않으려고 퇴근을 찍고 다시 들어와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며 “칼퇴근하는 부서도 있겠지만 세종에서는 어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칼퇴근과 나태로 인해 비판을 받는 공무원들이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야근과 업무 과중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공무원도 나타나고 있다. 이상협 전 공정거래위원회 서기관은 이를 공직문화, 특히 인적자원 배분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전 서기관은 “어느 부처나 마찬가지지만 본부에 있을수록 인사에서 우대를 받는 시스템이 문제다”고 질타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예로 들며 “신고 사건이 공정위 본연의 업무이면서 가장 중요한데 인사문제 때문에 수도권을 담당하는 서울지방사무소 등 일선에 승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신입 등 경험이 부족한 직원을 배치한다”며 “(신고된) 사건 수가 많더라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일이 몰리면서)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가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조직 자체 논리로 인한 중앙부서로의 인력 집중 때문에 국민이 공무원으로부터 받아야 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전 서기관은 “공정위를 봐도 국(局)의 선임인 정책과는 본연의 역할이 없다. 국회 대응이나 지침 개정 등의 알맹이가 없는 업무를 맡는다”며 “국회 업무나 기획을 한다며 사실상 이벤트 위주의 행정을 하는 곳에 인원이 많이 모여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 부서에서는) 어떠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응해 급조된 지침이나 법 개정을 할 뿐이지 근원적인 재발방지 등 깊이 있는 대책은 없다”면서 “그런 대책을 내놓고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이른바 ‘두더지잡기’ 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평소에 기술유출이나 갑질 등을 적발해 제재를 통해 시장에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승진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 대신 실질적으로 국민이 필요로 하는 대민부서에 인력을 충원하고 대민부서 업무 실적을 인사 고과에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정부기관은 전반적으로 기름 많이 먹고 성능은 시원찮은 고물 벤츠 같은 모습이다”고 꼬집었다.
이 전 서기관은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공정위의 현 인원이 지방사무소 포함해 600명 정도 된다”면서 “일본의 공정취인위원회는 지방사무소 포함해 700명 정도로 인구 수와 경제규모, 국토면적을 비교하면 우리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법무성(DOJ) 안에 반독점국 자체 인원이 약 1000명, 여기에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합쳐도 2000명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법원은 주로 세법과 관련된 판결에서 공무원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 민원인은 세금 납부와 관련해 담당 공무원에 질의한 결과 ‘비과세 대상’이라는 답변을 듣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가 가산세까지 물어야만 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납세의무자가 세무공무원의 잘못된 설명을 믿고 그 신고납부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관계 법령에 어긋나는 것임이 명백한 때에는 그러한 사유만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납세자의 고의·과실은 고려되지 않고 법령의 부지·착오 등은 그 의무위반을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다. 한마디로 세금과 관련해 전문가라 생각한 공무원의 말을 믿고 세금을 내지 않았을 경우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에 국민에게 공무원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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