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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자고 맨주먹 외식사업 500억 일궜죠”
“2~3시간 자고 맨주먹 외식사업 500억 일궜죠”
고교 졸업후 ‘호텔 서빙’ 밑바닥 딛고 성공한 이나희 대표(칠성포차 대표이사)
진용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3-10-15 19:38:48
2009년 창업 후 매장수 총 71개(가맹점 66개, 직영 5개)에 연매출 약 500억원의 규모를 올리고 있는 젊은 프랜차이즈 사장이 최근 화제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퓨전주점 ‘칠성포차’ 이나희(36)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칠성포차는 4년전 미아삼거리 직영 1호점을 개점한 이후 ‘마약찜닭’, ‘복고술집’ 등의 브랜드로 성공하면서 매장수를 늘려 지금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외식 프랜차이로 꼽힌다. 이 대표의 창업스토리를 보면 남다른 사업에 대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확신이 스며들어 있다. 사업은 헝그리 정신이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면모도 보였다. 무엇보다 3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했다면 그만의 비결이 있을 법 했다. 하지만 성공에는 편한 길을 갈 수 있는 비법이 있을 수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기 있게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그에게는 성공의 왕도였다. 실제로 이 대표는 아버지의 사업실패에 이어진 부모님의 이혼 등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하얏트호텔 서빙으로 시작한다. 이후 외식업계에 관심을 갖으면서 KFC 사업을 맡는 두산 외식사업부에 입사한다. 당시 그는 매장에서 점포의 운영 및 관리 등을 배우면서 창업의 밑거름을 닦았다. 이 대표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닥치는 부업을 했다. 양주 도매업, 신발 판매, 옷 가계에서 부터 야채장사까지 하루 2~3시간만 잠을 자며 초인적으로 일을 했다. 이 대표는 이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초기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이런 고통에서 탄생한 것이 지난 2009년 11월 오픈한 ‘칠성포차 미아삼거리 1호점’이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일궈 온 성공 비결에 대해 “창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계통에서 1년 정도 근무해봐야 한다”고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나희 대표를 만나 고교 졸업 후 호텔 서비스업을 시작으로 외식사업에 발을 디뎌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군 성공과정을 들어 보았다.

 ▲ 칠성포차 이나희 대표이사는 만 32살때 미아삼거리 직영점을 오픈해 현재 총 71개(가맹점 66개, 직영 5개) 매장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이 대표의 성장과장은 고등학교 때까지 말 그대로 평범했다.
 
현재 약간 통통한 외모와 다르게 초등학교, 중학교때 육상과 축구에 소질이 있어 운동을 생각했으나 보수적인 가정환경 탓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며 가정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대표가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할 시점이다.
 
이 대표는 “이후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당시 지방대는 붙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며 “어렸을 때부터 성취욕도 있었고 구상하는 거를 좋아했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한다면 모를까 고등학교때부턴 그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호텔 서빙 외식업계를 접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가 먼저 다니고 있던 하얏트 호텔에 입사해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 7개월간 서빙을 하며 주방, 홀 등에 대한 서비스업무를 첫 경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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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23살이 되자 28사단 수색대에 배치되며 군생활을 하게 된다. 가정형편 문제와 함께 이왕 갈거면 빨리 갔다오자는 생각에서 였다.
 
 
 ▲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가정형편이 어렵게 되자 이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하얏트 호텔에서 서빙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진은 칠성포차 외부(위) 및 내부 전경. <사진=칠성외식>

군생활을 하며 그는 여유가 있을 때면 책도 읽고, 제대 후 외식사업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됐다.
 
군 제대 후 그는 KFC 사업을 맡는 두산 외식사업부에 당당히 합격했다. 과거 하얏트에서 일한 경험이 경력으로 일부 인정됨과 동시에 면접점수가 상대적으로 좋게 받은 결과였다.
 
이 시점부터 이 대표의 외식사업 창업 행보가 본격 시작된다.
 
양주도매업, 신발 장사 등 부업 통해 자본금 마련
 
이 대표는 “30대 초반에 내 사업체를 갖기 위해서는 일단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입사했다”며 “KFC에서 매니저로서 점포 운영, 관리등에 대해 많이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닭에 대한 식재료 및 자재의 물류까지 많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사가 생각하는 부분, 매장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은 너무나 큰 갭이 있어 매장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 이 대표는 어려운 자신의 주변 여건에 굴하지 않은 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업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 그는 외식사업 관련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닥치는 대로 부업을 하면서 한푼 두푼 창업자금을 마련해 나갔다. 특히 33세 안에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펼쳐 결국 30대 중반에 외식업계에서는 이름난 프랜차이즈 사업을 성공시켰다. <사진=칠성포차 제공>

특히 그는 외식사업 관련 공부와 함께 창업을 하기 위한 자본금 마련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 대표는 “33살 안에 사업을 하겠다는게 목표였고 자본금이 있어야 했기에 입사 후 얼마 안지나 양주 도매업, 신발, 옷, 야채장사 등 하루 2~3시간 잠을자며 부업을 했다”며 “당시 20대 초중반이었는데 직장에서 시스템을 배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현실부분도 찾고 싶었기에 다양한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외식사업에 대한 집념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일례로 이 대표는 24살때 가장 친한 친구의 조카를 소개받아 만난 여자친구와 29살에 결혼하게 됐다. 결혼 후 장인이 건강이 안좋아지자 부산에서 운영하던 사업체를 인수인계해 운영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두산에서 퇴사하기 전 32살때였다.
 
일주일간 고민 후 이 대표는 반려하게 된다. 그는 장인에게 “지금까지 배운게 외식업종이었고, 이를 공부하기 위해 잠을 거의 자지 않으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며 “지금의 일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정중히 이야기하고 거절했다. 지금은 처남이 장인의 일을 맡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이어 그는 “더이상 나이 먹어 애기 낳고 하면 자신도 없을거 같고 지금쯤이면 사업을 해보면 될거 같았다고 장인에게 이해를 구했다”며 “당시 창업에 들 사업비는 점포하나 지역에 차릴만한 정도를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퇴사후 그는 상암 DMC단지 지하 푸드코트 자리에서 돈가스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 돈가스 집의 쓰레기통을 뒤져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1년간 운영하다 찌개집으로 바꿔 현재 그곳 가게는 어머니가 운영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칠성포차 탄생’ 서빙, 장사, 매장관리 등 경험 집합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대표는 ‘찜닭’, ‘통닭’ 개념을 바탕으로 칠성포차 창업에 돌입하게 된다.
 
경기가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접근성이 용이한 복고풍의 포장마차를 선택했다. 그안에 촌스러운 단어를 찾던 중 칠성을 찾게 됐다.
 
 ▲ 이 대표는 칠성포차 미아삼거리 1호점을 개점하기 전 도시계획, 홍보입지, 주민동선 등 철저한 상권분석 후 오픈했다. ⓒ스카이데일리

이 대표는 “칠성 별 7개 안에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나 자신이 77년생이며 회사에서 음식의 맛을 신경쓰는데 7성급의 호텔에서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자, 7개의 브랜드를 만들어 은퇴하자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닭볶음탕을 모티브로 찜닭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며 “20대 중반에서 30대 여성들의 입맛을 타깃으로 아이템 콘티를 잡고 2009년 11월 동료 2~3명과 미아삼거리역 근처에 칠성포차 1호점을 오픈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픈장소를 결정하기 전 철두철미한 상권분석을 했다. 이 대표는 “등기부등본과 구청 등 도시계획을 보고, 롯데백화점이 그곳에 100억을 투입하는 내용도 살폈다”며 “특히 버스가 많이 지나가는 자리라 노출효과가 좋고 아울러 지하철들을 나와 직진으로 향해  일(一)자 라인안에서 승부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때 당시 그곳에서 3개월 정도 고생했다. 우리 점포가 알려진 바도 없고 자리도 그리 뛰어나지 않아 처음에 찜닭과 알밥을 많이 드시게 하려고 했다”며 “4개월차 되니 뜨기 시작했다. 가게가 술집인데도 불구하고 오픈이 오후 5시였는데 6시 초반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전했다.
 
첫 오픈날 43만원의 매출로 시작해 25평 매장에 1일평균 매출 140만원까지 올리는 기간은 5개월이 걸렸고, 이어 2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일평균 180만원을 넘어서게 됐다.
 
가맹점주의 애로사항 직접 듣고 함께 고민한다
 
시장반응이 좋아지자 2011년부터 가맹점을 늘리기 시작해 현재 66개까지 불어났다. 이 대표의 구상대로 창업초기 자본금 마련, 입지선정 후 매출증가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후 가맹점 관리와 지속적인 고객서비스 만족을 이어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랜차이즈 점주들을 상반기, 하반기 한번씩 모이는 장을 마련한다. 신메뉴에 대한 아이디어나, 현장에서의 애로사항들을 직접 듣기 위해서다. 이는 이 대표가 두산에 몸담으며 매장 일선에서 느꼈던, 본사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 두산 외식사업부에서 점포 관리, 식재료, 물류 등의 탄탄한 기본경험을 거친 이 대표는 닭볶음탕에서 동기를 얻은 ‘찜닭’을 대표메뉴로 해서 칠성포차 창업에 들어갔다. 사진은 칠성포차의 대표메뉴 ‘칠성마약찜닭’의 모습. <사진=칠성외식>
그는 “원래 업계에선 프랜차이즈 점주들이 서로 뭉치는 등 다같이 모이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며 “하지만 점주 분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회사라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싶었다. 본사입장에서 매일 안 된다는 얘기를 하기 보다 서로 얘기를 듣고 가맹점주분들이 최초 투자했을때 3년안에 회수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칠성포차는 프랜차이즈 수준평가에서 우수프랜차이즈로 지정됐다. 프랜차이즈 수준평가는 가맹본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성공 창업 및 지원을 위한 평가제도다. 칠성포차 가맹본부, 계약, 운영 시스템 등 다양한 부분에 걸쳐 이뤄진다.
 
이 대표는 “작년 9월에 준비해 포장마차 컨텐츠 업계에서는 최초로 인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빵집, 치킨점 등을 창업 하겠다고 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배달도 해보고, 서빙도 하는게 중요하다”며 “이후 창업을 하면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실패확률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종목표는 가맹점 폐점율 0%다. 지금 칠성포차 점주들이 2호점을 하고 나아가 회사가 정직하게 한다고 인정되면 계속 같이 갔으면 좋겠다”며 “ ”이런 분위기를 잘 이끌고 가 새로운 브랜드도 런칭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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