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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패권형 제국 초월 새로운 인류질서 자가발전 순항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45>]-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 제국과 식민지(1)
식민지 존재하지 않는 제국정신 믿음의 과정에 절대적 선의(善意)
선의 확장엔 무한 신뢰 실천 의지···초국의 공동선 실현할 지름길
알앤알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3-19 00:02:51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Q. 제국(帝國)이 지배의 개념이 아니어야 한다면 식민지배는 없다는 뜻인가
   
A.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만연했던 식민지는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다. 인간의 권력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류 역사에서 패권·이권 지향형 제국의 열망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양과 형태만 바뀔 뿐 지배·피지배의 역사는 반복된다. 언젠가 인류 역사에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형 제국이 온전히 미래형 제국으로 재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요한 맥락이다. 설사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제국주의가 필연적으로 추구하는 식민지배를 통한 패권주의는 완성된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패권 제국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은 역천(逆天)이다. 패권은 그래서 늘 비운을 자초한다. 맞바람을 마주하는 운동성이 순리를 타기 위해서는 지배가 아닌 개척이어야 한다. 선두에서 활로를 열어주는 개척정신이 순천(順天)이다. 완전성이 아닌 불완전성을 도전적으로 수용해 책임·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정한 제국 정신이라고 했다. (253쪽 : 꽃은 맞바람의 먹이를 자양분 삼아 고통과 고난의 자가운동을 통해 아름답게 피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지 않는 미의 완성을 할 때만 순천자임을 인식한다) 거센 바람을 마다하지 않는 꽃은 암술·수술 수분(受粉)의 축복을 받는다. 결실이란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화사한 꽃잎들이 땅으로 떨어진다. 생명에게 미(美)의 완성은 도취가 아닌 희생의 결실이다. 제국의 꽃을 피우려 하면 지배·침략을 통해 얻고자 하는 식민지 욕심이 아니다. 식민지가 인류의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당위성이 인류의 꿈과 궤를 같이한다. 그 과정에서 지배·침략의 방식은 인류 스스로 거부해 가고 있다. 인류는 선의의 심성가치를 자가발전시켜 가고 있는 중이다.
 
Q. 이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의를 완성시키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A. 인간은 ‘이기적 욕망’을 버리기 어렵지만 항상 ‘이기적 이타심’을 향하는 과정에 있다. 이기심을 굳이 버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욕망이 권력과 상호 길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좌파 이념이 욕망을 매개하는 이기심과 권력을 매개하는 시기심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이기적 권력욕을 배제할 수 있다면 이기적 욕망은 이기적 이타심으로 발현되는 긍정의 힘이 있다. 이 덕성은 일종의 보호본능 상호주의다. 생명유지속성에서 강하게 형성되는 보호본능은 이기적 이타심을 실현해 갈 매개체가 된다. (262쪽 : 덕성의 실현은 인간의 보호본능을 타인 모두의 것으로 실현하는데 있다) 국가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생명·재산은 이기적 이타심의 원초적 대상이다. 사익과 공익이 공유돼 있다고 했다. 이기심은 국가가 해야 할 보호본능의 책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대중적 에너지인 것이다. 사익 같지만 공익의 선두에 있는 보호본능에 대한 욕구충족 실현은 반(反) 패권형 제국주의에 대한 강열한 열망과 같다. 인간 저마다 소중하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보호받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태어난다. 인정받는 것은 자존감이고 사랑받는 것은 신성으로 부여받은 축복이며 보호받는 것은 인류 스스로 상호 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다. 이들 모두 반(反) 패권형 제국주의 열망인 선의의 범주다. 선의는 완성이 아니라고 했다. 불완전한 연속의 과정인 선의에 이기심이 녹아들어 있음을 거듭 곱씹어야 한다.
 
Q. 불완전한 선의가 인류 스스로 선의가 아닌 악의를 만들어 갈 가능성은
 
A.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선악은 절대성을 규정짓지 못한다. 동일한 의지라고 해도 선의가 악의로 보일 수 있고 악의가 선의로 보일 수 있다. 선의의 절대성은 지상에 존재하기 어렵다. 인류에게 선의는 선의의 존재 가능성을 믿고 가는 강한 의지다. 그것은 과정이지 완성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선의를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 것이 인류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진정한 제국 정신이다.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제국정신의 선의다. 종교적으로 말씀 또는 다르마를 향한 노력이 절대정신을 향한 선의의 실현 과정이다. 그 형상은 사랑이고 자비이며 용서이고 포용이다. (267쪽 : 포용은 천사만이 아니라 악마를 반추해 드러나게 해주는 중심 에너지다) 이기심의 배타성에는 이타성의 포용력이 혼재돼 있다고 했다. 포용은 악마를 반추하는 극적 이기심조차 수용한다. 포용을 불러들이는 관용이 이기심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선의를 향한 실현 과정에 포용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완전한 선의에 이기심이 작용하지만 그 불완전성을 치료하는 포용을 불러내는데 이기심이 역할을 한다. 선의가 악의를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지만 불완전한 선의를 인정할 때 악의는 절제되거나 발현되지 않는다. 인류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보호본능을 실현하는 선의는 강력한 항상성(恒常性)을 유지 중이다. 수많은 형태로 흔들리고 있지만 인류는 선의를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항진하고 있다. 선의를 위한 순항은 절대 없다는 역설적인 선의가 순항을 한다.
 
Q. 국가와 개인이 모두 항상성(恒常性)을 최선으로 견지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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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모든 사건에서 대칭의 중심에 서기 위한 평행한 노력이 치열해야 한다. 극과 극을 아우르며 치우치지 않고 안으로 무게중심을 강력하게 잡는 것이 평행한 의지라고 했다. 이 의지는 반드시 대칭의 중심에서 발현돼야 한다. 항상성은 그 중심을 잡는 일이다. (274쪽 : 개인과 집단의 형평성이 항상성 에너지로 유지될 때 그 사회나 국가는 안정적 성장을 일군다) 많은 국가들이 항상성 에너지를 유지할 때 패권형 제국주의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인류 공통의 항상성은 인류의 조화이자 평화다. 국제관계의 약육강식이라는 식민지 논리는 존재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개인이든 국가든 극과 극의 중심인 변곡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의지와 노력이 아주 중요하다. 변곡점은 사건 또는 운동성의 중심이다. 변화무쌍한 사건의 중심을 찾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변곡점을 중심으로 한 대칭성을 선제적으로 잡아 나가야 한다. 사건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운동성을 주관한다는 것이다. 변곡점은 3차함수의 그래프처럼 점대칭을 연상하면 된다. 점대칭은 정적인 선대칭과는 다르게 그만큼 다양성을 띤다. 3차함수를 미분한 2차함수를 통해 실근 또는 허근을 파악하는 과정이 마치 변화무쌍한 사건의 중심을 찾는 일과 같다.
 
Q. 함수의 점대칭이 제국과 식민논리를 바로잡는데 어떤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인지
 
A. 3차함수를 미분한 도함수에서 실근이 두 개가 나오면 극대값과 극소값을 갖는 그래프가 그려진다. 일정한 파동의 운동성이다. 파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힘이 변화하는 점대칭의 변곡점은 매순간 존재 상태를 규정짓는다. 함수 자체가 존재를 규정하지만 운동성에서 규정되는 존재는 연속의 진행형이라는 특성이 있다. 도함수의 실근이 중근 한 개이거나 아예 근이 없는 허근조차 변곡점이 존재한다. 힘의 변화지점을 찾거나 선제적으로 잡아 나가는 것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정신이다. (336쪽 : 새 길을 만들어가기를 주저하는 비역동성은 운명을 읊조리는 사탄의 에너지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새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건의 변곡점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만들어 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처럼 새 길을 찾는 과정은 자기변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336쪽 : 선택은 자기변신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다) 선택은 선의를 향한 의지에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자기변신을 선의로 강력히 견지할 수 있다면 1인조차 초국의 질서를 만들어 갈 능력을 얻는다. 초국은 패권주의 제국과 연장선상에 있지만 엄밀히 다르다. 미래의 패권형 제국을 초국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초국을 지향할 때 과거형 제국을 따르면 중대한 실책을 범한다. 과거의 제국과 식민논리를 먼저 바로잡지 않으면 진정한 초국의 질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수의 점대칭이 갖는 의미는 누구든 초국의 질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구태를 벗은 초국은 ‘일즉다 다즉일’의 원리가 적용되는 일인·일다 중심의 질서체계다. 한 사람이 하나의 국가이며 초국이다. 미분 가능한 함수의 점대칭은 이 같은 존재자이면서 질서자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Q. 선의를 완성해 가는 존재자와 질서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A. 존재자는 강력한 선택의지를 꺾지 않는 새 길의 개척자다. 질서자는 죽음까지 아우르는 삶의 의지를 품고 있다. (519쪽 : 죽음조차 품어주는 태양은 생멸하지 않는 영혼의 서사시다) 태양은 인류에게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원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태양과 같은 수많은 항성들은 스스로 생명을 다하면서 인간과 자연을 이루는 원소들을 만들고 방출해 주는 창조주 역할까지 해 왔다. 존재자를 넘어 질서자로 나아가기 위한 새 길에는 생사가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서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의지는 태양과 같은 선의를 베푸는 의지를 근간으로 한다. 생사를 넘나든 별(항성)들의 고향에 인류의 현실과 이상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 인류는 태양을 숭배하고 신으로 여겨 왔다. 태양의 기운은 평범한 생명활동 에너지이면서 평범하지 않은 이상적 빛을 비추고 있다. 인류가 모두 평화롭고 행복한 신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태양과 같은 덕성을 분모로 하는 힘을 무한히 키우는 일이다. 분모는 기준을 잡는다. 기준은 늘 새로운 운동성 좌표다. 현실에서는 분모의 시작이 멈추지 않는 도전이다. (600쪽 : 선택의 시작이 불연속으로 연속할 때 자유는 계속 빛을 발한다) 존재자의 선택의지 정체는 자유다. 신 제국의 정신에는 인류가 힘겹게 이룩한 공든 탑 중 가장 위대한 자유가 깃들어야 한다. 자유를 뺀 이념주의는 패권형 제국의 신봉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국가 간 적대적 행위를 조장한다. 질서자는 이 조차 흡수해 진정한 초국의 질서를 이룰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이상이다. 존재자는 현실의 선의를, 질서자는 이상의 선의를 각각 추구한다.
#box1#Q. 선의로 가득한 선택의지라고 해도 이상이 개입되면 이념화 될 여지가 있지 않나
 
A. 존재자와 질서자는 대립할 여지가 없지 않다. 현실과 이상은 조화롭기가 녹록치 않다. 따라서 질서자의 이상은 이념화 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환상적인 질서의 추구는 실패로 귀결된다. 자유시장은 혼돈 속 질서를 추구하면서 이를 무한히 순화시킨다 (604쪽 : 정해지지 않은 운명과 정해진 운명 속에서 수없는 질서가 형성되는 사건의 섭리 속 정보 에너지를 보는 눈이 자유시장의 눈이다) 정보가 패턴이 될 때 힘이 된다고 했다. 이 힘은 시공간의 지배를 벗어나 영원성을 담지한다. 에너지의 실체를 본다는 것은 질서자의 영원성을 인지하는 것이다. 자유시장에 이 힘이 작동하면서 무한성의 카오스적 질서를 형성한다. 자유시장은 현실과 이상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 이상이 이념화될 여지를 자유시장이 선제적으로 막아 준다. (604쪽 : 인류의 역사에서 자유시장의 형태는 수없이 모양을 바꿔 왔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지만 그 근원성은 바뀌지 않는다) 악의를 부르는 가장된 정의가 자유시장의 긍정적 순환성을 막고 있다. 제국과 식민지의 존재를 여전히 문제로 삼으면서 적대적 이념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이념은 선의로 가득한 척 할 뿐이다. 자유시장은 불의가 많은 것 같지만 선의를 향한 과정을 버리지 못해 이념화되기 어렵다. 시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담론을 버리지 않는다. 성장담론을 배제하고자 하는 이념주의는 인류의 이상을 스스로 걷어차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식민지 이론이다.
 
Q. 자유주의나 자유시장주의 등도 넓게 보면 이념처럼 배타성을 띠는 것 같은데
 
A. 자유는 변수를 중시한다. 변수를 수용하는 것은 배타성이 없다는 의미다. 자유가 윤활유처럼 흐르는 자유시장도 다르지 않다. 자유시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완벽히 계량화 하는 것은 수많은 변수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를 사회적 평균 노동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무마하려 한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노동의 등가가치 정확성은 더 떨어졌다. 노동의 등가가치를 설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허무맹랑한 시도다. 자의적이고 작의적인 논리를 통해 제국과 식민지를 이유불문 절대적 악의로 규정했을 뿐이다. 물론 시장에 악의가 깃들기는 했지만 자유시장이 수없는 질곡을 거쳐 오면서 선의로 자기정화를 해 온 것을 부인했다. 풍요의 상징인 문명의 거탑을 이루게 한 자유시장을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채택한 것은 역사의 진실성을 대변한다. (642쪽 : 시장의 질서는 자유라는 본질의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강력한 변수가 너무 많아 수렴이 아니라 등가가치와는 전혀 다른 발산이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수렴은 노동의 계량화를 가능하게 하지만 발산하는 사실을 수렴으로 왜곡하면 본질의 오류를 범한다. 무한 변수는 발산이다. 발산이 무한 변수로 수렴할 때 가격이 만들어진다. 가격은 수렴 같지만 발산의 수렴이기 때문에 노동의 등가가치를 완벽히 대변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유주의나 자유시장주의는 ‘주의’라고 하기에는 엄밀히 맞지 않다. 배타성을 띠는 것 같지만 항상 수용하기 때문에 배타성이 아니다.
 
Q. 자유시장을 근간으로 한 초국의 질서가 선의를 담보할 수 있는가
 
A. 제국은 국가의 위상이 높지만 초국은 국가의 위상이 낮은 단계다. 무국의 질서가 나타나기 전의 모습이다. 초국이든 무국이든 무정부주의는 아니다. 정부가 존재하는 국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사라질 수 없다. 국가의 존재 위상이나 역할 범위 및 형태 등이 달라질 뿐이다. 따라서 과거에 사로잡힌 제국의 질서를 현재의 역사의식으로 갖고 있으면 타당하지 않다. (662쪽 :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패턴은 전체적인 조화의 질서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초국의 질서는 전체를 보는 개념이다. 국가와 인류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간주한다. 자유시장에 힘을 주는 패턴의 양상이 국소적이 아닌 공통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마치 유한과 무한이 하나로 역동하는 시스템이 듯 패턴의 극과 극을 동시에 번영하는 것이 초국의 질서다. 하나의 극은 국가의 존립 당위성이며 또 하나의 극은 초국의 성립 필연성이다. 국가는 초국을 부정하고 초국은 국가를 부정하는 극과 극이 아이러니컬하게 당위성과 필연성으로 엮여 있다. 이율배반의 정의이자 사건의 섭리다. 이 원리가 길항작용을 통해 상호 유도되면서 강력한 힘의 근원이 확장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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