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Q. 민족국가의 배타성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A. 집단을 이루고 사는 것은 인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물들의 본능이다. 집단을 통해 상호 이익과 상호 안전을 도모하는 본능이 생명유지속성의 핵심을 이룬다. 집단 중 가장 최적화된 집단이 오래전부터 국가로 정립됐다. 국가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인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는 시스템으로 인류의 운명과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를 대체할 효율적인 집단 시스템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와 결부된 혈연이 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증대시키는 ‘잠재적 힘’을 키우고 확장시켜 왔다. (280쪽 : 잠재적 힘이 고통을 이겨내는 지혜를 선사해 준다) 혈연 중심의 민족국가 형태는 집단의 특성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잠재적 힘이 있다. 이 힘은 위기가 닥쳤을 때 실질적 힘으로 변한다. 나아가 잠재적 힘은 너와 내가 따로 없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하도록 해준다. 대부분 국가에서 민족 네트워크 형식을 발전시켜 온 배경이다. 혈연의 힘은 예외없이 민족국가들에게 소위 강한 포스를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혈연관계가 책임·사랑의 의지를 강열히 끌어내기 때문이다. 혈연의 얽힘은 모두의 생존과 이익을 담보하는 강력한 상호주의다 (280쪽 : 강한 포스는 책임을 위한 전제가 되기 때문에 나와 타자가 따로 없다) 혈연의 이타성은 가족을 넘어 민족으로 지향했다. 민족국가가 배타성 보다는 이타성을 더 크게 발현할 수 있는 집단이 됐다. 이 같은 민족국가의 특성은 전 인류가 추구하는 생명유지속성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민족국가는 인류를 하나로 묶는데 장애가 아닌 기초 단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Q. 인류가 가족의 범주라는 무국의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A. 국가를 간과한 듯한 무국의 질서를 논하는 것은 사실 섣부른 담론이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면 달라진다. 초국의 질서가 1인 나라와 초연결 된 다극화 개념의 항상성(恒常性)이라고 했다. 무국의 질서는 가족이 최우선시 되는 개념이다. 1인과 가족의 범주 역시 한 울타리에 있다. 가족에 대한 무한책임과 무한사랑의 끝은 모두가 1인과 같은 ‘모두의 개인’을 위한 상호주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가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이 고도화 될수록 불확실성을 키운다.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부른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자양분 삼는 끈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621쪽 : 수많은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습관이 축적되면 불확실성을 오히려 키우는 도전에 나선다) 두려움을 극복한 습관이 운명이 되기 위해서는 쉼 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도전은 개인의 삶을 바꾸고 타자들과 사회는 물론 국가까지 혁신한다. 무국의 질서는 도전을 통해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도전에 응축된 책임·사랑의 정신이 국가의 목표와 다르지 않다. 가족은 민족국가를 담지하면서 인류애의 근간이 될 상징성을 띠었다. 사해동포주의는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민족국가를 바탕으로 할 때 패권형 제국주의로 왜곡·발전하지 않고 인류애를 실현할 에너지를 축적한다.
Q. 끈기와 도전만으로 인류를 묶는 대가족이 가능할까
A. 가족을 향한 무한책임에 가장 필요한 의지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또 가족을 향한 무한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이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내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다. 끈기와 도전은 가족과 동행하기 위해 평생 가슴에 안고 있어야 할 이타성의 기반이다. 따라서 살아 있음을 반추하는 생명의 찬사가 끈기와 도전 속에 성스럽게 웅크리고 있다. (621쪽 : 끈기가 고독한 의식을 습관화 해 의식 속에 주춧돌을 놓은 것이라면 용기는 그것을 기반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습관이 축적된 에너지다) 용기는 가족의 파수꾼이다. 용기를 갖고 매 순간 도전하는 삶이 가족애를 유지한다. 따라서 가족은 인류애로 발전해 나갈 힘이다. 가족애와 인류애는 선덕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선덕은 악덕의 덕과 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선악을 특별히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애와 인류애는 특정한 시공간만을 점유하는 개념이 아니다는 점이다. 마치 신성의 원리처럼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는 무소부재(無所不在) 에너지다.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수많은 결합을 통해 물질의 창조역할을 하는 전자가 1인의 다극화 특성을 지녔다고 했다. (628쪽 : 전자는 특정 공간을 점유하지 않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과 중첩을 통한 동시다발적 존재의 양상을 드러낸다) 선악을 모두 수용하는 선덕은 악의가 존재하는 곳에도 머문다. 선덕은 악과 악의를 선의로 바꿀 힘을 가졌다. 끈기와 도전이 계속되고 용기를 계속 품고 있다면 선덕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수많은 가족들에 깃든 선덕 에너지는 마치 만물이 창조된 태극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태극은 자연과 인간의 자궁이다. 인류는 태극의 진리에서 단 한발짝도 떨어지거나 벗어날 수 없다. (628쪽 : 악한 자와 선한 자가 주관자적 관점에서 동시에 보일 때 자유 에너지에 대해서는 선악을 구분하면 안 된다)
Q. 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자유 에너지가 신 인류의 질서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A. 빅뱅으로 출발한 우리 우주의 진실은 여전히 의문점을 더 많이 던지고 있다. 빅뱅 이전의 상황들에 대한 명쾌한 진리는 물론 빅뱅 이후 시간의 흐름에 대한 명징한 정리가 논란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진리 하나가 인간의 존엄성과 붙어 다니는 자유 에너지다. 만물의 자궁이 태극의 정보에 있다면 자유는 그 정보와 어깨동무하고 있다. 끈기와 도전 그리고 용기 등이 모두 자유의 산물이다. 선덕을 기반으로 한 가족애와 인류애도 자유의 산물이다. 자유는 신 인류의 질서까지 영향을 미칠 무한 에너지 특성을 지녔다. (637쪽 : 정보 에너지에 의해 표현된 현상계 문명의 아버지가 자유다) 신성의 자유는 스스로 자신의 날개를 언제 어느 때 달고 날아야 할지를 알 뿐만 아니라 무엇 때문에 날아야 하는지도 인지하고 있다. 자유가 인간의 인위적 권력에 의해 제한되면 만물이 무너지는 이유다. 자유가 없으면 자연의 부가가치가 사라져 부(富)의 기운이 마침표를 찍는다. 에너지가 없으면 생명도 사라진다. (637쪽 : 리만가설이 증거된다고 해도 자유 에너지의 변동성이 수리로 증거되기 위해서는 패턴을 조합하는 초자유의 명령어들을 숫자로 표시해야 한다) 자유의 위대한 힘은 가족의 소중함과 연결돼 있다. 자유 에너지의 변동성을 수학적으로 표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자유가 생명수로 흘러야 생명이 유지되는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인류를 하나로 묶을 무소부재의 존재인 자유는 인류 스스로 확장하고 지켜야 한다. 무국의 질서에서 자유는 수많은 경계를 걷어내는 거침없는 도전자다. 미시의 무제한적 자유 원리가 소립자를 통해 확인된다. 미시의 원리는 거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Q. 무국의 질서 모형을 보다 정확히 규정해 줄 수 있나
A. 인류에게 진정한 평등주의는 결실을 만드는 과정에 녹아 있다고 했다. 분배 혜택을 누리는 공공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두면 결실에 차질이 발생한다. 분배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절대명제는 결실의 차질로 차별을 조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무국의 질서는 결실의 상징인 효율의 창조에 방점을 둔다. (665쪽 : 효율이 없는 생명은 존재한다고 해도 죽음의 임계상태다) 효율의 축적을 통해 탄생하는 부가가치는 가족애와 인류애에 필요한 절대적인 가치라고 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은 결실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 이 의지 자체가 책임있는 자유의 실체이며 사랑을 베풀고자 하는 자유다. (665쪽 : 효율은 네트워크를 통해 책임이라는 이타적 도덕률을 형성하는 근간이 돼 왔다) 효율을 내지 못하는 무능력은 분배혜택에서 공공성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아울러 능력자라고 해도 절치부심 새로운 끈기와 도전 그리고 용기를 만들어 내야 할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따라서 무능력을 자성하고 담금질 해 능력으로 전환하면 영웅적인 리더로 발전하는 전기가 마련된다. 이처럼 선덕을 체화한 리더가 부가가치를 키워갈 수록 자유의 공간이 넓어진다.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애는 인류애와 하나로 소통한다. 가족애의 확장 개념인 민족국가는 상호주의로 얽힌 초국의 질서에서 무국의 질서로 진화해야 하는 숙제를 짊어 진다. 가족애의 무한 발산이 계속되면 초국을 넘어선 무국의 인류애가 절대적 선덕의 가치로 옹립된다. 무국의 질서는 경계를 굳이 허물지 않아도 허물어지고 애써 책임과 사랑을 전파하지 않아도 퍼진다. 무국은 가족애가 국가의 기능을 대신해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묶이는 치밀한 질서다. 법이나 제도가 아닌 방식의 질서라는 점에서 인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진화다.
#box1#
Q.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 실현을 앞당길 수 없는지
A. 제도나 법률로 시기를 앞당길 질서가 아니다. 본질을 보고 수용하며 실천하는 혜안과 지혜 그리고 행동이 필요하다. (654쪽 : 본질은 가장 작은 것이 모든 것을 흔들 무한 힘을 갖고 있다) 본질은 제도나 법률로 떠받치는 기둥일 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보는 혜안은 그 실현을 앞당기는 중요한 시작이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본질은 모순 속에 웅크리고 있다. 모순을 보는 시각이 남다를 때 혜안이 있다고 한다. 현실에서 모순은 극대화 될수록 대칭구조가 강화되면서 최종적으로 조화에 수렴되는 원리가 있다. 실제로 모순된 상황이 수학적으로 극복되자 그 실체 자체가 조화였음이 드러났다. 인류는 앞으로는 모순 속에 숨겨진 본질을 확인할 길이 거의 무한대로 열려 있다. 신성의 원리는 그만큼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운 본질을 숨겨 놓았다. 이를 오감의 한계로 적절히 표현해 내기 어렵다. 하지만 오감의 한계는 또한 없기도 하기 때문에 한계라고 설정하는 것이 잘못이다. 본질을 끝없이 살피고 실천하는 노력 속에 오감이 확장된다.(655쪽 : 본질은 대칭적 얽힘의 상관성과 존재를 가능케 하는 상반성이 극과 극의 에너지 원리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막힌 조화 시스템이다) 상반성과 상관성은 무국의 조화다. 항상 대립하지만 상호 돕는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립구조다. 조화가 대립 속에 꿈틀거리고 대립이 조화 속에서 일어난다. 가족애는 조화와 대립의 원리를 이어갈 전자기장 같은 역할이 가능하다. 가족이 사랑을 유인하고 사랑이 가족을 유인하는 섭리다. 전기가 자기를 유도하고 자기가 전기를 유도해 빛이 만들어 진다고 했다. 전기와 자기가 하나가 돼 빛이 되는 것처럼 가족과 사랑이 하나가 되면 인류를 비추는 빛이 된다.
Q. 가족애가 무너지고 있는 현상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A. 인류에게 대단히 위험한 징조가 가족의 붕괴 현상이다. 가족이 무너지는 현상은 인류 공멸의 위기가 오고 있는 공포의 시그널이다. 이를 막기 위한 시스템이 초국의 네트워크이지만 이 조차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응 가능한 우선순위를 잘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 단추가 프랙탈 구조를 재인식 하는 일이다. 초국의 프랙탈 구조는 자기유사성이라고 했다. 1인의 다극화가 초국의 전체와 상통하는 자기유사성은 가족애가 무너지는 질서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프랙탈은 그 특성상 있음과 없음의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프랙탈은 미분 불가능한 연속이라는 모순을 잠재한다. (610쪽 : 프랙탈의 특성이 없음이 있음으로 그리고 있음이 없음으로 상호 무한 규정을 짓는다) 프랙탈 구조는 부피가 제로(0)이거나 없는 무(無)의 형태로 강력히 추정된다. 그런데 부피가 제로이면 오히려 있음을 존재하게 하고 부피가 없으면 없음을 증거한다. 제로와 없음의 전제조건은 각각 무(無)가 아니다. 그래서 전자는 생명의 탄생이고 후자는 그 생명의 배후다. 0의 존재는 좌표를 설정하는 기준이기에 무한소·무한대를 존재하게 하면서 있음을 증거한다고 했다. 없음에서 있음이 무한 창조된다고도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초국의 질서 경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순이 곧 존재다. 더 아나가 무국은 경계 자체를 논하지 않는다. 경계가 사라지는 최전선에 또한 가족애가 있다. 가족애 속 인류애를 실천할 강력한 자유의지가 넘칠 때 경계선이 사라진 무국의 존재가 확연히 보인다. 지금처럼 가족애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없음으로 존재의 배수진을 친 프랙탈 구조를 통해 떠받칠 수 있다.
Q. 민족국가는 무국의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A. 민족국가는 가족애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인류애 속 필요한 시스템이다. 가족과 인류는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인류를 향한 책임·사랑 의식이 가족을 대할 때와 같아야 하는 전제가 따른다. 모든 개인이 인류애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1인 다극화 네트워크 기반이 중요하다. 슈퍼인터넷과 유사한 1인 커뮤니티 시스템이 작동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들의 역량이 제고돼야 한다. 선덕의 도덕률 기반 위에 갖추어야 할 역량은 위험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끈기·도전은 선덕의 이행과정이라고 했다. 선덕을 이행하기 위한 용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쌓인다. (561쪽 :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꿈은 자유가 아닌 굴종이다. 노예적 삶은 사슬이 아니라 사슬의 두려움을 회피하는데 있다) 민족국가는 노예적 삶이나 굴종을 철저히 거부한다. 용기를 키워주는 배아가 민족국가다. 무국의 질서가 가족애로 넘치는 책임·사랑의 얽힘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국가에서 길러지는 개인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동양에서는 이를 군자라고 이야기 한다. 군자는 태풍같은 바람에도 강력히 맞서는 의지를 갖고 있다. 맞서지 못하고 피하면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렵다. 군자의 용기는 책임이고 사랑이다. 선덕을 실천하는 군자는 모든 일에 용기를 갖고 임한다. 무국의 질서에서 민족국가는 더 견고하게 유지되지만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도록 하는 가족애가 넘친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