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 지 올해로 51주년을 맞았다. 1960~70년대 당시에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등과 같은 열악한 처우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받기 일쑤였다. 전태일의 분신 항거는 억눌렸던 불만을 터트리는 기폭제가 됐고 노동자 권리 증진을 목표로 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현재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사회·경제 발전에 발맞춰 각 기업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처우가 크게 향상됐고 근로환경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심지어 ‘노동자’라는 단어 보다 ‘근로자’가 더욱 익숙하게 쓰이고 있다.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한 자발적 노력이 이뤄지다 보니 노동조합의 존재감은 점차 사라져갔다.
문제는 존재감이 사라진 노동조합이 설립 취지와 목표를 잃고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설립 취지인 노동자 권리 증진과 이익 대변은커녕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와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단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심지어 같은 노동자의 밥그릇까지 뺏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익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괴물집단으로 전락했다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말만 노동존중, 행동은 동료탄압…자영업자·비노조원에 횡포·갑질 만연
과거의 노동운동의 목적은 단순히 노동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더불어 잘 사는 사회, 차별 없이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자신보다 더 열악한 노동자를 챙기는 헌신적인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오늘날 노동자의 권익과 지위는 70년대 당시보다 크게 향상됐다.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됐고 법정 근로시간도 주 40시간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자 당시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세력들도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 대변 본분을 저버리고 오직 밥그릇·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의 노동단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의 행보는 일반 국민에까지 피해를 끼치는 등 도가 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민노총은 지난달 20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4개 지역에서 총파업 및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바 있다. 당시 총파업으로 11월 초로 예정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가 하루라도 앞당겨지길 고대했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노심초사해야 했다. 코로나19 장기화 영향으로 지난 1년간 막대한 매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또 다시 대규모 확진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난 9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파리바게뜨 배송기사들의 파업이 확산되면서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전국 파리바게뜨 가맹점 3400여 곳이 ‘빵 공급 대란’을 겪었다. 당시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한다는 한 자영업자는 국민청원을 통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이미 경영 환경이 최악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힘없는 자영업자를 볼모 삼아 본인들의 이익을 취하고자 파업을 강행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점주가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앞서 8월엔 경기도 김포에서 CJ대한통운 택배 대리점을 운영해 온 40대 점주가 민노총 조합원들의 집단 괴롭힘 끝에 결국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유서 내용에 따르면 민노총 산하 노조 소속 택배기사들은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며 무게·부피가 나가는 물품 배송을 거부했다. 이들은 비노조원들과 필사적으로 버티는 A씨 부부에게 온갖 폭언과 욕설·조롱을 퍼부었다.
“전태일 정신 왜곡하는 제왕적 권력, 민노총 스스로 해체 결단 내려야”
민노총은 선량한 노동자는 물론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청년들이 피해 입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현재 청년층 체감 실업률이 25% 넘게 치솟는 악재 속에서도 민노총은 무리한 정년연장, 정규직 전환 등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상 청년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의 밥그릇 챙기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민노총의 정년연장 요구는 고용안정성과 고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기업의 비용 부담만 늘려 청년 취업자 수 감소로 직결되고 종국엔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용절벽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청년실업은 물론 막대한 국가적 손실도 부추길 수 있다.
민노총은 전례 없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경영상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 증가는 결국 신규채용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 연구소 소장은 “오늘날 민주노총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이념과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전태일 정신을 왜곡하고 있다”며 “차별과 폭력, 분열·대립시키려는 노골적인 행보로 대중으로부터 숱한 질타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려면 지금이라도 밥그릇 싸움·기득권 지키기에 대한 구태를 조속히 벗어던져야 한다”며 덧붙였다.
김주성 국민의눈 상임대표는 “오늘날 민노총의 잇속 챙기기 행위는 과거 노동환경이 열악했던 노동계층들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했던 전태일 열사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다”며 “노동 약자(하류계층)를 대변·보호한다는 명분은 사라졌고 이념과 이데올로기에만 치우쳐 사회적 약자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들이 주장하는 전태일 정신을 잇는 길은 대대적 쇄신이나 해체뿐이다”고 강조했다.
김준용 국민노조 사무총장은 “민노총은 힘없고 소외당하는 근로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 헤게모니를 위해 싸우는 집단으로 변질됐다”며 “과거 숭고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밥그릇·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난달 20일 열린 총파업 같은 경우에도 노동자 권리향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요구는커녕 한미동맹 해제, 국방예산삭감, 기간산업 국유화 등 비상식적인 요구 행태를 보였다”며 “근로자·사회적약자(청년·600만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집단인지 스스로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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