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각종 사회적 비용을 크게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출범과정에서 강조했던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훼손됐고 나라빚으로 운영되는 공공부문의 부채까지 확대됐다는 지적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는 수많은 청년들의 의지가 꺾인 부분까지 감안하면 직·간접적 사회적 비용 증가는 수치로 메기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여론 안팎의 지적이다.
정규직전환·공정·평등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한 文정부 비정규직 정책
현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 뒤인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면서 본격화됐다. 대통령이 직접 공언한 만큼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2000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통틀어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수 14만명을 크게 웃돈다.
수치로만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된 듯 보이나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직 전환 인원들이 무늬만 정규직일 뿐 실상은 비정규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인원 중 상당수는 본사가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이다. 자회사 소속 정규직 인원은 급여 등에서 본사 직원보다 처우가 낮게 책정됐다.
일례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알리오) 공시를 통해 확인 가능한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정규직 직원 평균 보수는 지난해 기준 3754만원이다.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직원 평균 보수액인 8634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본사 신임사원 초임인 3774만원보다도 낮았다. 공시상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설립목적(출자목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한 이유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극심한 반발이 불공정을 이유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공기업 입사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다는 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역차별 소지가 있다는 비판 등이 뒤따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과정에서 정부가 내세웠던 공정 등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뒤따른 것도 자회사 설립 배경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인국공 사태’ 당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원 1902명의 직접 고용을 위해 인천공항경비(현 인천국제공항보안)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현행법상 국내 모든 공항은 검색요원들을 직접 고용이 아닌 협력업체 소속으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검색요원들의 집단 파업으로 공항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련의 이유로 설립된 공공기관 자회사는 한국도로공사서비스와 인천공항경비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KAC공항서비스, 남부공항서비스, 항공보안파트너스 △인천국제공항 자회사 인천공항시설관리, 인천공항운영서비스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회사 LH사옥관리, LH주거복지정보 △한국부동산원 자회사 알이비파트너스 △한국수자원공사 자회사 케이워터운영관리 등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자회사까지 설립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집중했음에도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국내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800만명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8월과 비교하면 1년 사이 64만여명이 늘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8월보다 162만2000명이 늘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민간부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목표 중 하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선제적으로 없애 민간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성과없는 비정규직 정책에 직·간접적 사회적 비용만 급증…낙하산 인사 논란까지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는 공공과 민간 어느 한 쪽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만 대폭 증가시키는 부작용만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과 자회사들은 부채와 부채비율이 크게 늘었고 일부 청년들은 취업 의지가 꺾였다며 스스로 ‘백수’를 자처했다.
통상적으로 공공기관 부채는 ‘숨은 나라빚’으로 불린다. 공식적으로 국가 채무에 포함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반정부 부채와 마찬가지로 공공기관 채무 역시 종국엔 국민의 세금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국민 부담 확대에 일조한 셈이다.
일례로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설립된 자회사 중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지난해 말 부채총액은 435억원이다. 해당금액만큼 국가 재정 부담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부채 비율은 393.6%로 집계됐다. 부채비율은 기업이 갖고 있는 자산 중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기업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부채비율이 393.6%일 경우 부실기업으로 평가된다.
이 밖에 KAC공항서비스와 항공보안파트너스 등도 지난해 기준 부채총액이 100억원대를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각각 1069.7%, 1299.8% 등이었다. ‘인국공 사태’와 관계가 깊은 인천국제공항보안의 경우 지난해 부채총액이 195억원이었고 부채비율은 716.1%였다.
인천국제공항의 또 다른 자회사인 인천공항운영서비스는 아예 자본잠식상태였다. 이곳의 부채총액은 159억원에 달했다. 자본잠식이란 기업의 부채 등이 원래 투자금(자본금)을 까먹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일반적인 기업이 자본잠식에 빠졌을 경우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공공부문의 경우 혈세로 충당된다.
이들 공공기관 자회사들의 부채규모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은 주변의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일례로 인천국제공항보안의 올 상반기 부채총액과 부채비율은 각각 784억원, 1024.4%까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인천공항운영서비스는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지만 부채총액이 526억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됐다. 부채비율은 무려 3394.3%였다.
이들 기업의 부채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이 요원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들이 대표이사 등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포진이 눈길을 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등에 따르면 부채비율이 1000%가 넘는 KAC공항서비스와 항공보안파트너스 대표이사로 있는 인물은 김금렬 대표와 신용욱 대표다. 김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정무특보단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며 2018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송파구청장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문재인 정부 대통령경호실 경호처의 차장이었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의 노항래 사장은 옛 열린우리당 정책실장과 민주노총 공공연맹 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2018년엔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했었다. LH사옥관리의 김태환 대표이사는 과거 대통령비서실 정무 행정관,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으로 일했었다. 인천국제공항보안의 우경하 사장은 예비역 장성으로 앞선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과 동시에 문재인 후보 캠프의 ‘국방정책자문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과 관련해 일제히 우려 섞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공기업을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기는 행태가 공기업의 경영위기를 부르고 나아가 국민부담을 확대시킨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전부터 공기업은 정권의 전리품처럼 인식된 경향이 강했다”며 “선거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에게 일종의 보상을 제공하는 용도로 공기업이 활용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정권들도 비슷한 행태를 반복했다곤 하지만 이번 정권의 행보는 도가 지나치다고 본다”며 “소위 캠코더 인사로 불리는 비전문가들이 공기업 임원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공기업 경영이 잘 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기업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자연스레 공기업의 적자와 부채가 늘어날 것이며 그만큼 국민부담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가 표방하는 정책이 사회적 비용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측근들이 공기업에 진입할 수 있는 채널이 만들어졌고 이게 공기업의 건전성·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먼저 일련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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