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로소득을 원천 차단해 집값상승을 막겠다며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던 정부·여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발 물러섰다. 집값이 더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으려면 기존 유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줘 매물이 늘어나게 해야 한다는 부동산업계의 지적을 수용해 양도소득세(이하 양도세)를 완화하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두고도 시장 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뒤따른다. 완화 수위가 지금의 시장 과열 현상을 잠재우기엔 턱없이 낮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양도세 완화 대상자를 1가구 1주택자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집값 안정화를 위해서는 지금의 수요를 잠재워줄 매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나와 하기 때문에 주택 보유수를 막론하고 양도세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례없는 집값폭등에 결국 손발 든 정부·여당…차기 대선 앞두고 돌연 양도세 완화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는 문재인정부는 일찌감치 집값을 가장 많이 올린 정부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임기 동안 서울 집값이 무려 2배 이상 오른 탓이다. KB국민은행의 월간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 시세는 4652만원이다. 현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5월 2326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정확히 2배가 올랐다.
현 정부 출범 후 집값이 폭등한 이유로 여러 가지 요인이 지목됐지만 그 중에서도 기존 유주택자들의 퇴로를 막아 시장 내 매물잠김 현상을 유도했다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앞서 정부는 부동산 시장 내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거래가 집값 상승을 일으킨다고 보고 거래를 인위적으로 거래를 묶는 정책을 펼쳤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양도세였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에서 다주택자의 조정대상지역 양도세를 20% 중과하고 조정대상지역 내 1주택자의 비과세 2년 거주 요건을 추가했다. 2018년 9·13 대책에선 시세 9억원 이상 1주택자의 장기보유 특별공제 요건에 2년 거주를 넣었으며 2019년에는 1주택 비과세 보유 기간 요건을 1주택 보유 시점부터로 강화하고 1년 미만 보유 주택의 양도세율을 50%로 올렸다.
지난해에도 7·10 대책을 통해 1년 미만 보유 양도세율을 더 올렸다. 주택을 1년 미만으로 보유한 뒤 거래할 경우 양도세율을 기존 50%에서 70%로, 2년 미만의 경우 60%로 각각 올렸다. 여기에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 3주택자는 경우 30%가 더해지면서 양도세 최고세율은 75%까지 인상됐다.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양도세를 손봤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기존 유주택자들이 양도세 부담에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집값 상승폭은 더욱 커졌다.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경우도 급격하게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는 9만 1866건으로 관련 통계가 이뤄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역시 1~9월까지 전국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6만3054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주택자 대부분 실거주, 양도세 없어도 집 안 팔아…다주택자 물량 끌어낼 조치 필요”
최근 정부·여당은 양도세 압박 카드 철회를 결정했다. 이달 2일 1세대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는 ‘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부동산에 쏠려 있는 현 시점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차기 대선에서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그동안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양도세를 완화해야 매물잠김 현상이 해소돼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집값전망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내용만으로는 시장 내 매물잠김 현상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가구 1주택자들은 주택을 매도하는 목적이 더 높은 주택으로 이사하는 이른바 ‘갈아타기’ 성격이 짙은 데다 시장 내 물량 상당수는 다주택자 물량이기 때문에 1주택자 양도세 완화 카드만으론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보유자 1469만7000명 중 다주택자는 232만명으로 15.8%를 차지했다. 주택 보유자 6명 중 1명꼴로 다주택자다. 이 중 주택을 두 채 보유한 사람은 183만명(12.5%), 3채 보유한 사람은 29만7000명(2.0%), 4채는 7만6000명(0.5%), 5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11만7000명(0.8%) 등이었다. 양도세 퇴로가 열려 이들 다주택자가 자신이 실거주할 1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판다고 가정하면 단순 계산으로 최소 312만호의 매물로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종합부동산세 등에 대한 과세 조치가 이뤄짐과 동시에 다주택자에게 양도세 퇴로를 일시적으로 열어줄 경우 그들이 소유한 물량의 3분에 1가량이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이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양도세 퇴로가 열린다고 가정을 하면 다주택자가 소유한 312만호 중 3분에 1 가량인 약 102만호의 매물이 전국에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전문가는 차기 대선을 앞두고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는 지금이 집값안정의 골든타임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현재 금리 인상 이슈와 대선 후 정책 변화 가능성 등으로 인해 부동산 매수세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모습이다”며 “집값이 잠시 주춤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 다주택자가 물량을 쏟아낼 경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큰 폭의 하향조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한 급매물이 동시다발이 적으로 쏟아져 나와 가격 경쟁이 일어났을 때 가격하락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며 “정부·여당은 지금이 부동산 민심을 잠재울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서둘러 양도세 완화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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