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맞이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을 향한 금융권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전통 금융 분야에서 가계대출·집값 증가세를 잡는데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긴 하지만 첨단·혁신 금융 분야에선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암호화폐 등 미래금융에 대한 정책 추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특히 빅테크·핀테크 관련 정책은 규제인지 지원인지 구분이 모호해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플랫폼의 영업 형태를 ‘중개’로 판단해 시장과 소비자에게 혼란을 일으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빅테크와 핀테크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 규제로 인해 중·소형 핀테크 전문 기업들은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금융플랫폼 금융권과 기능에 차이… 법적 근거도 미비”
올해 9월 금융위원회(금융위)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유예 종료 및 본격 시행을 앞두고 온라인 금융플랫폼의 서비스 목적이 정보 제공보다 판매인 경우 중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금소법상 금융상품 판매대리업자 또는 중개업자로 등록하라는 통보였다.
그러나 현행법상 판매대리·중개업자로 등록 가능한 경우는 대출뿐이어서 대책 없이 규제를 앞세웠다는 원성이 높았다. 금융플랫폼 기업들은 시정 기간 유예를 요청했으나 금융위는 “계획이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규제 방침에 따라 주요 핀테크 기업들은 서비스를 개편하거나 잠정 중단했다. 카카오페이는 자동차보험 비교 서비스와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투자 서비스 등을 중단했다. 토스는 신용카드 비교 서비스 등을 전면 개편했다. 금융상품 추천부터 계약까지 한 번에 이뤄지던 과정은 해당 금융사 홈페이지로 연결해 계약하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서비스 개편으로 핀테크 기업들은 주요 수익원을 잃을 취기에 처했다. 핀테크 기업은 그동안 획기적이거나 남다른 금융서비스로 회원을 모은 뒤 이들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핀테크 기업의 성장 공식이 금융위라는 커다란 벽을 만난 것이다.
고 위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동일 기능(업무) 동일 규제’ 원칙을 견지해왔다. 금융권과 빅테크 포함 핀테크 업계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빅테크·핀테크 업계는 기존 금융권과 기능·업무가 같지 않으며 동일 규제는 획일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빅테크 기업 관계자는 “(고 위원장이) 균형(된 규제)으로 공정한 경쟁을 이끌겠다고 계속 강조하는데 금융플랫폼은 금융권과 기능에 차이가 있어 전제부터 틀렸다”면서 “(빅테크·핀테크는) 아직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도 나오지 않은 상황으로 산업 사이클상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법적 기반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소법 시행에 맞춰 중개업자 등으로 등록하라고 하는 바람에 혼란을 겪었다”며 “좀 더 일찍 면허를 갖고 금융상품을 팔라고 알리고 법적 근거도 마련해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금융플랫폼 특성 감안한 규율체계 마련돼야”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 개정안 갈등도 은행·카드 업계와 핀테크 업계의 주요 이슈다. 종합지급결제업이 허용되면 핀테크 기업도 은행처럼 계좌를 열어 줄 수 있다. 현재 은행에 더해 카드사·증권사도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허용 방침만 내놓고 손을 놓고 있어 전금법 개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카카오페이 대표인 류영준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종합지급결제업 허용을 넣지 않더라도 전금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달라고 촉구했다. 류 협회장은 “전금법 개정안에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업권의 새로운 규제와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 등 중요한 내용이 많아, 우선순위로 보면 종합지급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시목 핀테크협회 감사(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이미 성장한 사업자 뿐 아니라 핀테크 진출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의 고민이 깊다”며 “온라인 금융플랫폼 서비스 특성을 감안한 새로운 맞춤형 규율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장도 이러한 업계의 불만과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 이달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고 위원장은 “디지털 금융 ‘혁신과 경쟁’ 유도와 함께 ‘금융 안정과 소비자 보호’라는 금융 원칙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며 “(둘 사이를) 균형 있게 접근해 핀테크 산업의 안정적·지속적 발전을 위한 정책을 앞으로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과 수익 모델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금융사와 빅테크의 공정한 경쟁 체계 마련 등 시급한 문제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조만간 빅테크·핀테크 업계와도 만나겠다”고 덧붙였다. 고 위원장은 9일 핀테크 업계와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무분별한 플랫폼 규제가 첨단 금융기술 경쟁력마저 추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 플랫폼, 소위 ‘빅테크’로 불리는 기업의 독과점, 골목상권 침해 등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핀테크 기업까지 규제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과 핀테크 전문 기업은 엄연히 차이점이 있다며 규제 과정에서도 구분을 명확히 해 첨단금융 기술 경쟁력 저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핀테크 기업 관계자는 “금융소외현상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흩어진 정보를 일일이 모아서 비교·검증하려면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며 “소비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금융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비교하는 서비스를 금융 외 사업까지 전개하는 빅테크 플랫폼과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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