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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상(아카데미상)이 새로운 역사를 또 하나 만들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란 영화는 주연한 양쯔충(양자경·미셸 여)이 여우주연상을, 남편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우리나라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란 영화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기록이 있지만 동양 여배우가 주연상을 받은 것은 새로운 기록이다.
‘몬스터볼(2001)’에서 주연한 할리 베리가 흑인으로서는(정확히는 흑백 혼혈) 처음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할리우드 영화를 상징하는 아카데미상이 크게 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랫동안 백인들의 잔치였던 아카데미상이 문을 넓혔다는 평가였다.
흑인 연기자가 주연상을 받은 것은 1964년 ‘야생백합’이란 영화에서 주연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첫 번째이다. 이때만 해도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백인 중심의 울타리를 넘어 흑인이 진입한 것은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큼이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우디 스트로드·짐 브라운·리차드 라운드트리·O. J. 심슨·모건 프리먼·윌 스미스·로렌스 피시번·대니 글로브·사무엘 잭슨·댄젤 워싱톤 등은 미국 영화계에서 활동했거나 하고 있는 흑인 배우들이다. 흑인들이 편견을 극복하고 약진하는 동안에도 아시아인들은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아시안 중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것은 주로 일본 배우들이었다. 하야가와 셋슈가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에서 일본군 장교 역을 맡았고, 다카 미이코가 ‘굿바이(1957)’에서 말론 브란도의 상대역을, 다니 요코는 ‘바렌(1960)’에서 안소니 퀸의 에스키모 부인 역을 맡았다. 단바 데츠로·미후네 도시로 등이 액션영화나 전쟁영화에서 눈에 뜨이는 활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카구라 겐·와타나베 겐 등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다.
한국인 배우로는 필립 안이 ‘모정(1955)’ ‘애욕의 전장(1959)’ 등에서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개성 있는 역할을 맡았다. 독립지사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이다.
1975년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출연한 오순택, ‘007 어나더데이(2002)’에 출연한 릭 윤 등이 한국 배우의 명맥을 이었다. TV드라마에서 활동한 김윤진·대니얼 대 킴·존 조·스티븐 연·마이클 하니·골든 글로브 TV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샌드라 오 등도 한국인 계보다.
홍콩 배우 중에서는 주윤발이 여러 편의 미국 영화에 출연했고, 감독 오우삼은 ‘브로큰 애로우(1996)’ ‘하드 타겟(1996)’ ‘페이스 오프(1997)’ ‘미션 임파서블Ⅱ(2000)’ 등 규모가 큰 액션 영화를 만들었다.
양쯔충의 이번 수상은 아시안이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록이다. 할리우드의 유리 천장이 또 한 번 깨진 것이다.
2020년 한국배우 심은경이 일본영화 ‘신문기자’에서 주인공 기자 역을 연기한 성과로 일본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록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당시는 문재인 정권의 반일 분위기가 극악을 떨었지만 일본 영화계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인식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인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다. 대종상이나 청룡상에서 한국 영화에 출연한 일본인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했다 하더라도 상을 주는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친일파’ ‘매국노’ 따위의 비난 여론이 물 끓듯 했을 것이다.
가수 조영남이 2005년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하는 도중에 ‘냉정에 대응하는 것은 일본이 한 수 위’라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되면서 일본을 편드는 매국노라며 여론이 들끓었다. 연예인의 한마디에도 분노하는 여론의 광기가 그대로 폭발한 모습이다. 난폭한 공격을 견디다 못해 조영남은 몇 년간 활동을 쉬어야 했을 정도다.
이 소동은 일본을 조금이라도 아는 척하거나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불문곡직 매도하는 분위기를 드러낸 사례로 남았다.
탈북민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에 편입한 이방인이 주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것은 수많은 탈북인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기에 충분한 본보기였다. 이는 여느 한국인들에게도 놀라운 사건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며 절망하면서도 가끔씩 만나는 기쁨이다. 드문드문 생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표시고 희망이다. 하나씩 금기가 깨질 때마다 짜릿한 충격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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