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 고집쟁이 아이가 태어났다. 법원에서 일하는 아마추어 연극배우의 첫딸인 이 아이는 성질이 아주 까다로웠다. 정원에서 모래장난을 못 하게 하면 얼굴이 파래져서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 3살짜리가 말이다. 부모는 이 아이를 다룰 수가 없어서 하고 싶은 대로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귀족 가문인 어머니는 아이를 당시 관습에 따라 훈육했다. 방문을 열어두고 일기와 편지를 모두 검열했다. 정숙한 신붓감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아버지의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문학책을 실컷 읽었다. 가세가 기울었지만, 우등생인 이 아이는 매몰차게 공부했다. 대학 입학시험과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1949년에 이 아이는 세상을 뒤흔드는 책을 내놓는다. <제2의 성>,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인정받은 책이다. 저자의 이름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는 놀라운 주제의 책이다.
이 책을 쓰기까지 보부아르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단짝 친구인 엘리자베스 라쿠엥(애칭 자자)이 뇌막염에 걸려 21살에 코마 상태로 요절한 것이다. 자자는 메를로 퐁티와 사귀었는데 연애결혼을 허락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둘 사이를 거세게 떼어 놓았고, 충격과 실망에 빠진 자자는 열병으로 죽고 만다. 친구의 죽음은 보부아르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거세게 반항한 보부아르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디자인했다. 딸을 평범한 여성으로 키우려는 어머니의 기대를 박차고 세상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또 하나의 반항아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났다. 사르트르는 동지로서 연인으로서 그녀를 사랑했고 청혼했다. 보부아르 또한 그를 인정했다. 그녀가 원했던 지적이고 든든한 동반자였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평범한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르트르에게 제안했다. 앞으로 2년간 서로에 대한 사용권을 갖자고. 상대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 첫 번째 계약의 조건이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을 공개해야 했다. 비밀은 허용되지 않았다. 기한이 정해진 계약이었다. 2년 후 그들 각자는 자유였다. 사르트르는 이에 동의했다.
보부아르가 디자인한 계약 동거, 그 유명한 ‘계약 결혼’이 성립되었다. 그들은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고 사랑했다. 또한 세상의 불의에 함께 맞서 싸웠다. 사르트르는 죽을 때까지 보부아르 아닌 다른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 보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년 계약은 꾸준히 갱신되었다. 그들의 동거는 무려 51년간 유지되었다.
우리 각자는 세상에 던져진다. 시대도 나라도 부모도 어느 하나 결정권이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막론하고 우리 모두는 만들어진다.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와 마시는 물과 밟는 토양이 우리를 기르고 익힌다. 그것은 문화와 관습과 전통이다. 여기에 잘 적응하면 살아남는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런데 이 공기와 물과 토양 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길을 만든다. 자신만의 길이다. 가시덤불을 헤쳐야 하는 길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도 그랬다. 당신의 삶을 디자인하라.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