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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간의 질서<2>]-에너지 얼개 : 시간 속 에너지(①-1)
시간의 장(場), 일 가치 심판하는 자연 연금술사
초정밀 생명현상·우주의 조화 주관…인간의 운명까지 지배하는 자연의 시계
알앤알 필진페이지 + 입력 2017-11-08 14:15:09
에너지 담론과 시간의 효율적 지배력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눈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가지 범주의 시각으로 상반된 이해를 보여 왔다. 하나는 신이 주관하는 경외심 가득한 대상인 반면 또 하나는 인간의 의지로 좌우할 수 있는 대상이 각각 그것이다. 또 자연의 질서는 초정밀 예정설과 불확정설로 나뉘어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현재 신앙적으로는 예정설이, 과학적으로는 불확정설이 각각 상반되고 있다.
 
자연은 인류에게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게 한 계기를 주었다. 자연은 신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반추케 해 주는 거울이 됐다. 서양철학의 역사가 시작된 고대 희랍의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이 물, 바람, 공기, 땅 등으로 사유하기 시작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그리고 그 질서를 알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주관 하에 있다는 세계관이 자연에 대한 신적 경외심과 대립적으로 혼돈을 일으켜 왔다. 물리학, 천문학, 수학 등을 필두로 과학이 그 선두에 있어 왔다. 개인적 믿음과 학문적 연구 부문에서 논란은 여전하다. 그래서 지금도 철학적으로 사유 중이며, 과학적으로 탐구 중이다.
 
미지의 자연에 한 가지 관통하는 진실이 있다. 자연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거시의 자연 그리고 미시의 자연 모두가 수많은 개별 에너지를 갖기도 하면서 그것이 모여 에너지의 집합체로 끊임없이 역동하고 있다. 소립자 세계에서 자연의 디지털 원리라고 할 양자들의 에너지 역학은 창조성이 실현되면서 자연의 배아가 됐다. 이 같은 창조의 주체는 음양의 대칭성과 그것을 매개로 한 운동성을 원천으로 한 에너지다. 에너지가 자연의 창조주라는 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셈이다. 그 에너지가 하는 일의 양은 물론 질도 있다. 에너지에 시간이 가미되면서 효율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시간의 좌표 속 에너지는 곧 ‘창조의 효율성’이다. 과학의 원리로 시간은 에너지가 창조하는 자연을 재단해 신적 주관자의 위치에 있다.
 
에너지의 양자 특성은 거시의 현실 세계와는 달리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개념이다. 그 양자의 신비한 존재 생태계가 인간과 자연의 어머니로 분(扮)했다. 시간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듯 보이지만 공간과 씨줄·날줄로 엮이면서 물리량을 갖는다. 시간은 자연의 모든 물리량의 질을 따져볼 수 있게 한다. 물질은 공간에서 창조되지만 시간이 그 탄생의 의미를 결정짓는다. 시간은 결국 공간과 함께 에너지 영역을 차지한다. 텅 비어있는 듯한 공간은 창조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시간의 에너지로 꽉 차 있다.
 
지구의 자연 질서는 중력장이 미치는 곳이기에 가속운동의 지배를 받는다. 힘이 더해지는 물리량 없이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운동에너지는 힘에 이동거리를 곱한 일의 양(J,줄)이다. 힘(F=ma)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다. 그런데 중력계 정지상태 또한 가속 관성계의 물리량과 같다. 자연의 법칙이나 생명현상이 모두 일을 하는 개념인 가속운동의 에너지 장 속에 있는 것이다. 운동양(p=mv, momentum)은 질량에 속력을 곱해야 한다. 속력(v=s/t)은 또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힘(에너지, E=mc2)은 곧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결국 에너지는 시간 속에서 작동해야 의미 있는 물리량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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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scalar) 물리량의 경우 특정 효율을 내고자 하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지만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벡터(vector) 물리량은 에너지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특정한 위치를 찾을 때 1km라는 거리의 크기만 주어진다면 현재의 지점에서 수없이 왕래를 하며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해 찾아야 하지만 방향이 주어지면 에너지를 아주 적게 쓰고도 쉽게 원하는 지점을 찾는다. 시간은 이 같은 효율성을 재단할 수 있는 척도다. 시간이 없다면 물리량 가치를 매길 수 없고 에너지의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자연의 질서는 곧 초정밀로 작동하는 효율적 에너지 흐름이다. 시간은 이 모든 것에 관여돼 신비로운 역할을 해내고 있다.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스카이데일리
 
광활한 우주 또한 극도로 치밀한 20여 가지 상수들이 정밀하게 작동해야 존재한다. 우주의 얼개를 표현한 표준모형 안에는 만물의 존재 근거가 되는 소립자들이 있다.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라는 힉스는 최근 발견됐다. 이들 입자들은 물질의 원천이고 에너지 요소들이다. 소립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만물은 에너지의 흐름이 정밀하게 작동해야만 한다. 소립자의 에너지 장이나 그것을 기반으로 한 우주 상수들을 존재하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이 관통하지 않으면 우주상수 존재의미를 찾기 못한다.
 
에너지를 품은 현실은 분초를 다투는 생명현상들의 경쟁의 장이다. 거시의 현실에서 생명의 에너지 역동은 그야말로 복잡하면서도 정밀하다. 크기가 방향 값을 가져야 효율성이 있는 것처럼 초정밀 시간들이 생명현상 곳곳에 치밀하게 개입된다. 소립자들의 내적 진동 또한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와 순환 그리고 반복의 움직임으로 격렬하다. 빛의 빠름과 그 파동의 진행 방식은 그 대표적 흐름이다. 광속이라는 시간의 값이 정밀하게 나오지 않으면 전기파와 자기파의 교란은 불가능하고 빛도 탄생하지 않는다. 에너지 흐름은 이처럼 시간의 지배를 받으면서 반복성과 순환성이라는 옷을 멋지게 입었다. 시간이 에너지 가치를 결정하면서 시간이 속된말로 만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연금술사가 됐다. 인간의 삶도 단 한 순간조차 시간을 벗어나 살 수 없다. 삶 자체가 에너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과 에너지는 한 몸으로 어우러진다.
 
운동하는 물질의 시간지연 또는 느려짐 현상은 에너지의 지체현상이다. 개별 에너지장이 아닌 주변 에너지장 모두가 함께 지연된다. 에너지와 물질이 양립해 치환되면서 상호 존재를 규정지을 때도 이 같은 ‘시간의 장(場)’이 결부된다. 시간은 에너지와 같이 인력과 척력이 없어 일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안 되지만 전기장이나 자기장 못지않은 퍼텐셜 에너지(위치에너지)의 잣대를 제공한다. 기준점이 없이는 전위차가 없다는 것은 퍼텐셜 에너지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운동하는 모든 물질은 운동에너지와 퍼텐셜 에너지로 이루어진다. 위치에너지는 질량을 갖는 특정 물체가 이동하는 시간 동안에 갖고 있는 ‘보존력’이 해당물체에 힘을 미쳐 운동할 수 있는 ‘일의 양’이다. 이처럼 이동한 거리(일)에서 또는 가속한 운동(일)에서 시간의 장이 일의 가치를 매기기에 창조성이 부여되는 시간이다. 반입자(반물질)도 초대칭의 맞물림 속에 있기 때문에 시간을 온전히 초월하기 어렵다.
 
자연의 질서가 곧 인간의 역사와 호흡해 온 바탕엔 시간이 운동장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간이 자연의 일원으로 도덕률 잣대를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이 자연의 원리를 정교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테제가 안티테제를 잉태하면서 테제 스스로 존재를 규정짓듯이 에너지는 시간 속에서 시간을 배출하면서 스스로 시간의 틀 속에 들어가 일의 성격 내지 가치를 규정지었다. 그것이 수없이 많은 자연의 창조물로 잉태됐다.
 
현상계 시간의 절대성과 이율배반 진리
 
우리가 사는 거시의 현실은 또 다른 초월적 거시의 미시로 보는 시각 또한 상당히 긍정적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수학적 공리로 근원성이 해결된 것이 없지만 사유의 원리들이 쌓이면서 시간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곧 에너지라는 대전제를 깔아보면 보이지 않았던 진실들이 드러난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지구의 시간은 너무나 작아진다. 시간이 에너지와 물질의 가치를 결정하기에 극도로 작은 시간의 단위는 또 다른 거시의 세계를 역추정하게 한다. 초끈이론의 다중우주론은 수학적으로 이와 유사한 그림 같은 이론을 제공했다.
 
우리는 편의상 시간을 디지털화 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시간의 본질은 사실 아날로그다. 연속성의 개념을 크게 나누어 사용하는 개념이다. 1초 간격에도 무수히 많은 시간이 무한대로 흐른다. 이를 0에 가깝게 미분을 한다면 연속의 에너지 장이다. 아무리 작은 미분계수라도 질량이 있는 운동이라면 순간속도가 존재하는 운동하는 아날로그 값이다. 시간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특정 단위로 물리량을 표현할 때 의미를 갖는다. 무리수로 무한히 표현하는 시간은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시간이 갖는 고유특성인 에너지의 양이나 질을 재단할 수 없다. 다시말해 시간이 아날로그이면 에너지의 질을 측정하기 쉽지 않지만 디지털이면 수학적으로 쉽게 계량된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일의 양을 질적으로 변환시킬 때 시간은 디지털화 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원천인 전하들의 일의 양(가속도)을 질적으로 표현하려면 마치 양자화된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디지털화 된 시간으로 전위차의 질적인 조절과 통제를 통해 현대문명의 화려한 씨가 뿌려졌다. 시간이 갖는 가공할 물리력이다.
 
아날로그 시간은 또한 초미세 단위이지만 정확한 약속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현재 원자시계는 1억분의 1초의 시간단위가 가능하지만 시간 본래의 속성은 그 이하도 가능하다. 초정밀 시간도 디지털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시간은 곧 연속이자 불연속적인 이중성의 얼굴을 가졌다. 전자, 광자 등 소립자들의 입자와 파동이라는 성질을 모두 갖는 이중성과 유사하다. 입자는 파장을 가질 수 없고 파동은 질량을 가질 수 없지만 하나로 공존한다. 이중성은 흑과 백을 섞은 회색이 아니라 흑도 되고 백도 되는 것이기에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물리량이지만 엄정히 존재한다. 인간의 시간 역시 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에너지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의 힘은 무한소·무한대 우주의 구조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학의 공리보다 항상 앞서 전개돼 온 학문적 진리 사례들이 적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거시의 세계가 또 하나의 미시라는 사유 또한 수학적으로 계산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주의 프랙털(fractal) 구조론은 그 개연성을 높힌다. 수학이 바로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는 동일하게 시간의 지배를 받는 우리 인간이나 자연의 개체성들 모두 존재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기이한 에너지 양자 특성을 갖고 있을 가능성 역시 높이는 일이다. 거시의 존재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일종의 개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확률 자체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곧 확률이 진짜 존재의 모습이고 우리가 아는 존재는 가짜일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진짜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자신과 이 세상 만물이 환상일 수 있다는 점을 온전히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환상이라고 해도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미시의 원리들을 보면 인간과 자연의 세계는 충만한 에너지 파동이다. 마치 스토리처럼 이들 에너지가 갖고 있는 정보의 바다가 현실 세계로 드러났다. 모든 물질은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며, 그 근원이 시간의 지배를 받는 에너지 운동이다. 가령 인간의 몸을 보면 원자 및 아원자 단계에서 물질들이 무수히 사라지지만 DNA 정보에 의해서 정밀하게 재생되며 몸과 각종 장기의 원형을 유지한다. 우리 몸조차 생명유지 과정은 정보를 축으로 작동하는 일련의 시스템이다. 무한 변수의 에너지 정보가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인간과 자연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일종의 전지전능 정보로 간주된다. 정보를 주관하는 실체는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밝혀진 바 없고 신적 영역으로는 믿음의 대상이 됐다. 그것은 사람처럼 이성을 갖는 신일 수 있고 아니면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치밀한 자연의 원리를 따르는 현존재 인간과 대립되는 존재자의 신성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는데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box1#에너지 정보의 주관자를 논하기에 앞서 그 순환성과 반복성의 초정밀성은 모든 것을 잉태하는 그릇이 됐다. 자연과 세계 그리고 인간은 정밀하게 짜여진 에너지 정보의 틀 속에 있다. 다만 그 틀 속에서 빠르고 느리게 속도조절이 가능하고 전후좌우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속도조절도 방향전환도 모두 시간의 재단을 받는다. 예정된 운명의 범주 안에서 운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그것이 모순인 듯 모순이 아닌 원리가 그래서 통하고 있다. 운명이 시간의 원리로 정해지지만 그 시간의 원리로 변형 또한 가능하다. 사주팔자 운명론이 태어난 연월일시라는 시간으로 정해지지만 그 운명의 주관자 시간이 스스로를 결정짓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에너지 또는 운동량에 의해 시간의 느려짐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례다. 시간과 에너지의 불확정성 원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운명도 큰 틀에서 정해졌지만 삶의 시간에서 정해진 것 또한 없다는 것은 인간의 감각능력인 감성적 인식으로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그 원리가 무한소·무한대라는 전체 에너지의 얼개, 즉 시간의 수없는 변형으로 보면 틀리지 않는다. 시간 자체의 크고 작음이 무수히 많은 개념이다. 움직임이 다른 물체마다 시간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모두 조금씩 다른 것은 그 반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시간은 없다. 극미의 차이라도 시간차가 발생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물리량으로 불가능듯한 이율배반 그 자체가 진리라는 이율배반의 다른 고유성격이 있는 것은 아직 인간 인식 밖의 진리다. 우리의 오감으로 시간의 무한 창조성을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시의 이율배반이 진실이 아닌 듯 하지만 거시의 눈으로 본 미시의 이율배반이 진리로 검증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논하는 이율배반이라는 거짓을 진실로 규정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살지만 정해지지 않은 운명의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는 이것으로 설명 가능해진다. 에너지로 충만한 세계의 상호간 역진성과 호환성의 얽힘이 또한 이것이다. 자연도 시간도 연속과 불연속의 이중성은 같은 방식이다. 에너지의 성질을 이것으로 간주하면 유와 무는 같다. 시간이 유와 무도 가른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학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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