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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신명진 서울도서관 사서

“한국의 닉 부이치치 되는 게 최종 목표죠”

5살때 사고로 얻은 장애 극복…각종 스포츠에 도전하는 희망전도사

나광국기자(kkna@skyedaily.com)

기사입력 2018-09-27 0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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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진(사진) 씨는 5살에 기차에 깔려 두 다리와 한쪽 팔의 3분의 1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신명진 씨는 사고 후에 좌절하지 않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수영, 등산, 볼링 등 다양한 스포츠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을 깨달았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제가 좋아하는 사람인 닉 부이치치는 항상 사람들에게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죠. 저는 5살에 장애를 얻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다 보니 그 동안 많은 도전에 성공했어요. 지금 이렇게 서울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그 만큼 긍정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명진 서울도서관 사서(42·)5살 때 사고로 두 다리와 오른팔의 3분의 1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일반 학생들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대학교에도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신명진 씨는 각종 스포츠에 도전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배웠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그에게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여했다.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학창시절 그의 분신돼준 친구 만나 
 
신명진 씨는 바람이 불면 짠 내가 나는 인천 소래포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소래포구는 학교도 없고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1대 뿐인 가난한 시골마을 이었다  
 
그 시절 소래포구에 사는 사람들은 어업이나 소금과 관련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곤 했다. 당시 소래포구에는 커다란 소금창고가 있었다. 이 소금창고로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마을을 가로질러 철길이 놓여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소금을 나르던 그 철길 위였다
 
사고가 있던 날 어머니께선 많이 아프셨어요. 5살이던 저는 어머니가 아프셔서 근처에 살고 계신 할머니 댁으로 밥을 먹으러 집을 나왔죠. 할머니 댁으로 가는 길엔 소금을 운반하는 기차가 달리는 철길이 있었죠. 평소엔 늘 기차가 이동하는 터라 정차 중인 기차를 보지 못했지만 그날은 기차 한 대가 정차중이였죠 
 
▲ 신명진(사진) 씨에게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셋방살이를 하던 집의 주인아들이었던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 친구는 항상 신 씨의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다니며 신명진 씨의 가방을 들어주는 든든한 형제였다. 아쉽게도 사고로 친구를 잃었지만 신명진 씨는 지금도 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사진은 서울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신명진 씨 ⓒ스카이데일리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전 기차 위에서 놀고 있는 동네 형들을 만났어요. 형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지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기차 위로 올라탔죠. 헌데 그 순간 기차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5~6학년 형들을 잽싸게 기차에서 뛰어내렸지만 전 겁이 나 소금포대를 고정한 줄을 잡고 버티었죠
 
신 씨는 포대를 고정하던 줄을 잡고 버텼지만 5살 아이에겐 힘이 부족했다. 결국 줄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며 순식간에 기차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기차는 한참을 지난 후에야 멈추었고 주변은 그의 피로 흥건했다. 아파 누워계시던 그의 어머니는 5분 전에 나간 아이의 사고소식을 듣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며 병원으로 향했다.
 
신명진 씨의 어머니는 수술이 끝난 후 두 다리와 한쪽 팔의 3분의 1이 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항상 눈물을 흘리셨다. 하지만 그때마다 소년은 엄마 울지마. 나는 잘 살 꺼야라고 하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 때부터 신명진 씨는 이후의 인생은 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고 후 신명진 씨는 동네에 1곳 뿐 인 유치원에 들어갔다.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신 씨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마을에 초등학교가 없었기에 유치원을 졸업 후에는 버스를 타고 다른 마을로 학교를 다녔다. 다행이 같이 유치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함께 학교를 다녀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생활도 순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신명진 씨는 자신의 삶에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 하나가 고효범이란 친구를 만나 것이다.
 
저희 부모님이 신혼살림을 했을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셨어요. 당시 셋방살이를 했는데 그 집 주인이 효범이 부모님이셨죠. 그 집에서 제가 태어났고 몇 개월 후 주인집 아들인 효범이가 태어났죠. 정말 깊은 인연이죠 
 
학창시절엔 그 친구의 도움이 정말 컸어요. 실과 바늘처럼 항상 저의 옆에 있었고 제 몸이 불편하다 보니 그 친구가 항상 가방을 들어주곤 했죠. 저에게는 든든한 형제 같았죠
 
신명진 씨의 절친인 고효범 씨는 27살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던 신명진 씨는 살아만 있어 달라고 외쳤다고 한다.
 
사고 당시 어머니께서 저를 만나러 병원에 오셨을 때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학창시절 그 친구가 해주었던 모든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직 그 고마움을 보담하지 못했기에 살아만 있어 달라고 생각했어요. 그 친구 없인 전 학창시절을 설명할 수 없어요. 방황할 수 있었던 시절에 저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친구기 때문이죠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어요. 이후 화장을 하고 친구의 유골을 뿌렸는데, 화장을 하고 난 후라 그런지 유골이 너무 따뜻했어요. 마치 친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쉽게 보내지 못하겠더라고요.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인 후론 그 친구에게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게 됐죠  
 
대학진학 후 만난 두 번째 인연통해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얻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미래에 대한 그의 꿈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대입을 앞두고 자신의 직업을 공무원으로 정하고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신명진 씨의 두 번째 인연은 대학을 졸업한 후 잠시 다녔던 회사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두 번째 만남을 계기로 현실적이던 삶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사무실에 혼자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보니 장애인 한분이 휠체어를 끌며 계단을 올라오고 계셨어요. 그 분을 보면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동안 스스로에게 한계를 정해 놓고 살았나 싶었죠. 또한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되돌아보니 저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한계를 정한 놓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신명진(사진)씨는 스포츠를 하는 본인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인연을 통해 수영에 도전했고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었다. 이후 백두산 등정, 뉴욕 마라톤 완주 등을 통해 삶에 긍정을 배운 그는 현재 자신이 배운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사진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신명진 ⓒ스카이데일리
 
사무실을 찾은 분은 인천시청 소속의 수영선수였다. 신명진 씨는 그동안 운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장애인 운동선수를 보니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저도 수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수영선수였던 그분은 당연히 할 수 있죠. 배우고 싶으면 수영장으로 나오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라며 신명진 씨에게 수영을 권했다.
 
신명진 씨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에겐 물에 뜨는 것보다 의족을 벗은 몸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물에 뜨는 것도 힘들었어요. 수영장 물을 많이 마셨죠. 하지만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내가 과연 25m레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몸이 물어 뜨기 시작했고 조금씩 자신감이 쌓이기 시작했죠
 
수영을 배운 신명진 씨는 2003년 장애인전국체전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이를 통해 그는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성취감을 얻었다. 사람들 앞에 나가 당당히 내 한계를 극복하고 얻은 성과였기 때문이다. 이후 2009년에는 금메달, 2010년에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런 그에게도 싫어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로 눈과 계단 그리고 산이다. 의족을 사용해 걷는 신명진 씨에게 눈이 내린 날은 최악의 상황이다. 계단은 남들과 똑같이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같이 걷던 사람들이 계단에서 만큼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명진 씨에게 백두산 등반의 기회가 찾아왔다. 절단장애인협회가 추진한 백두산희망원정대였다. 그는 뒷산조차도 오를 생각을 안했는데 인생의 첫 번째 등산이 백두산이었죠. 산에 오르는 것은 저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두 눈에 담고 나니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죠.”
 
그때 많은 것을 느꼈어요. 산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정상을 향해 걷지만 정상만을 바라보며 산에 오를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지나면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자신감 얻어
 
이후 등산의 묘미를 알게 된 그는 2010년 몽골의 체체궁산(2256m)에 올랐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했다. 바로 마라톤이었다. 두 다리가 없는 그였지만 마라톤 완주를 하고 싶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스포츠를 통해 긍정의 힘을 깨달은 신명지(사진)씨는 닉 부이치치와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운동 중 도로위에 앉아 있는 신명진씨 ⓒ스카이데일리
 
그는 마라톤을 통해 인생을 느끼고 싶었다. 마라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혼자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1년 세계 4대 마라톤으로 불리는 뉴욕마라톤의 풀코스에 도전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마라톤은 6시간 정도 지나면 모든 시설을 철거해요. 그래서 6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하면 어디가 결승선 자리인지 알 수가 없죠. 저 같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죠. 하지만 뉴욕마라톤의 경우 참가자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시설을 철거하지 않아요. 그래서 참가하기로 마음 먹었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기에 몇 개 조로 나눠서 마라톤을 진행했어요. 저희 조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출발 신호와 함께 모두 앞으로 뛰어 나갔죠. 날씨가 추워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은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앞으로 달려가며 모두 겉옷을 벗어 던졌어요. 사람들이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고 제 앞에는 사람들이 벗어 놓고 간 옷만 남았죠
 
그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달리던 그가 첫 마을에 도착했을 때 길 양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순간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바로 미국의 여성 마라토너 캐서린이었다.
 
그녀는 마라톤에 참가한 신명진 씨를 보고 함께 뛰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기록을 포기하고 신 씨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신명진 씨는 그녀의 응원에 힘을 얻어 10시간 가까이 걸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해냈다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뿐 이였죠. 의족이 닿는 부분엔 물집이 잡혔고 결승선을 향해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지옥 같았어요. 그리고 그녀가 눈앞에 보였어요. 전 그녀를 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그녀가 없었다면 완주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하늘에서 제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신명진 씨는 그동안 다양한 도전을 통해 긍정을 배웠다. 그 전에는 장애를 한계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지만 좋은 인연들을 통해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명진 씨는 현재 서울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며 강의도 하고 KBS라디오를 통해 책을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는 그전까지 전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지만 이젠 현실이 됐다.
 
그동안 만났던 좋은 분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너무 감사하죠. 이제 제가 받은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닉 부이치치처럼 강의를 통해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것이 꿈이죠. 세상이 얼마나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 소중함을 제 경험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게 저의 꿈이죠
 
 
[나광국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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