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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인에게 희망 선사한 25세의 골퍼
미국으로 건너간 뒤 애국심 더욱 커져
“잘 사는 조국을 만들고 싶다”가 소망
골프꿈나무 키우려 상금 안 쓰고 모아
이달 9일 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를 제패한 에리야 쭈타누깐은 ‘태국의 박세리’라고 불린다. 혼다 LPGA 타일랜드가 15년 동안 꾸준히 태국에서 열려왔지만 태국인이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년 전 같은 대회, 같은 코스에서 대 역전패를 당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쭈타누깐이 이번에는 감격과 환희의 눈물을 쏟아냈다.
쭈타누깐은 태국인 가운데 최초로 LPGA 우승을 거머쥔데다가 2017년 6월 한때 세계랭킹 1위에도 오른 LPGA 정상급 선수다. 그의 우승은 무려 34개월 만에 나온 것이어서 매우 값졌다. 더욱이 조국 팬들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기에 마냥 행복했고,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는 LPGA에 데뷔한지 6년 만에 벌써 11승을 거뒀다.
미국 골프유학 등 유복한 어린 시절
쭈타누깐은 비교적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국의 수도 방콕 인근의 유명 관광지인 로즈가든 등 4곳에서 골프샵을 운영하는 아버지 솜분은 에리야보다 한 살 위의 언니 모리야에게 골프를 가르쳤고, 쭈타누깐은 이를 보고 어깨너머로 따라 배웠다. 솜분은 작은 딸에게 골프에 재주가 있는 걸 알아채고 골프를 본격적으로 가르쳤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9세였다. 부모는 두 딸을 전문선수로 키우기 위해 일찌감치 미국으로 골프 유학도 보냈다. 그런 덕분에 영어에도 능통하다.
쭈타누깐은 미국에서 아마추어로 활약하면서 무려 10차례나 우승해 ‘될 성 부른 떡잎’임을 증명했다. 그는 2012년 2년 연속 미국 주니어골프협회(AJG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뒤 그해 말 프로로 전향했다.
그는 11세의 나이로 2007 혼다 LPGA 타일랜드에 진출해 LPGA 투어 경기 출전 최연소 선수를 기록했다. 주타누깐이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최종 4라운드에서였다. 유럽여자골프투어(LET) 멤버였던 쭈타누깐은 공격적이고 겁이 없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열광하는 팬들이 적지 않다. 그러한 공격적인 플레이는 2013년 혼다 LPGA 타일랜드 최종 4라운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조국 팬 앞에서 호기 부리다 실패
18번홀(파5)을 앞두고 2위인 한국의 박인비에게 2타차로 앞서 우승을 눈앞에 뒀던 쭈타누깐은 조국 팬들 앞에서 멋진 피날레를 장식하고 싶었다. 호기가 발동한 것이다. 호쾌한 드라이버 티샷에 이어 굳이 투온을 노릴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드를 뽑아들고 투온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이 그린 앞 벙커 턱에 깊이 박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네 번째 샷으로 온그린을 노린 공도 그린 뒤 러프에 떨어졌다. 다섯 번째 샷도 그린에 올리지 못한 쭈타누깐은 결국 트리플 보기를 범하며 박인비에게 한 타차로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프로 선수들에게 파5홀에서 아웃 오브 바운드(OB) 없이 트리플 보기를 범한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케이스다.
그토록 갈망하고 다 잡았던 LPGA무대에서의 첫 승을 날려보낸 뒤 언니 모리야의 품에 안겨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쭈타누깐이었다. 이 사건 이후 쭈타누깐은 더욱 강해지고 성숙해졌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LPGA에서 장타자로 꼽히는 쭈타누깐은 이후 티샷에서 드라이버를 잡지 않고 샷의 정확도를 위해 우드 3번이나 아이언 2번을 써오고 있다. 쭈타누깐은 자신의 드라이버 비거리가 250야드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조크를 할 정도다. 드라이버를 치면 좌우에 있는 나무를 맞히기 때문에 멀리 못 날아간다는 것이다.
세계랭킹 1위 등 LPGA무대 평정
헐벗고 가난한 조국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는 쭈타누깐이 LPGA에서 첫 우승을 하는 데는 무려 3년이 넘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2016년 5월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에서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주타누깐은 여세를 몰아 3주 연속 우승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3주 연속 우승은 70년 LPGA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그해 7월에 열린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과 캐나디언 오픈마저 제패해 한 해에 무려 5승을 거두는 업적을 남겼다. 이 해에 상금왕은 물론이고 LPGA ‘올해의 선수’까지 휩쓸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쭈타누깐이 이런 자리에 오르기까지에는 숨겨진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날마다 언니와 함께 10시간씩 스윙 연습을 했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심리 치료사를 고용해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고 멘탈을 강화하는 훈련을 했다. 쭈타누깐이 퍼팅이나 샷을 하기에 앞서 볼 앞에서 늘 미소를 띠는 것 또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태국 선수들의 미국 진출이 본격화한 것은 쭈타누깐의 LPGA 우승 덕분이다.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여자 골프가 1998년 7월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을 떨친 이후 미국 땅에서 맹위를 떨친 것처럼 태국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쭈타누깐을 태국의 박세리라고 부르는 이유다.
현재 LPGA 무대에서 활약 중인 태국 선수는 10명 남짓하다. 쭈타누깐 자매 외에도 4월 LPGA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21세의 패티 타와타나킷, 혼다 LPGA에서 2위를 한 아마추어 부동의 세계랭킹 1위였던 18세의 아타야 티티쿨 등 쟁쟁한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언제 어디서 우승하더라도 손색이 전혀 없는 후보들이다. 올해 열린 LPGA 투어 10개 대회 가운데 태국은 벌써 한국과 똑같은 2승째를 거둬들인 상태다.
훗날 어린이들 위해 쓰려 상금 모아
쭈타누깐은 미국으로 건너온 뒤 조국의 어린이들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고, 그들을 위해 할일이 무엇인가 나름 열심히 찾았다고 했다. 조국에다 골프 꿈나무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를 차리는 게 그의 꿈이다.
그렇기에 LPGA에서 벌어들인 총상금 923만달러(한화 약 101억5000만원)를 거의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놓았다고 했다. 이 거액의 돈으로 비영리 골프 아카데미를 차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25세의 소녀 쭈타누깐이다.
쭈타누깐이 언제 아카데미를 설립할지는 모른다. 2019년과 2020년 2년 연속 우승을 하지 못해 조바심을 냈던 쭈타누깐은 골프를 그만 둘 생각도 했다. 골프 선수에서 은퇴를 하면 곧바로 골프 아카데미를 설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늘 조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어 보다 잘 사는 태국을 만들고 싶다는 쭈타누깐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승승장구를 열렬히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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