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십수 년이 흘렀지만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내 외국인 근로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 1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 배경에는 그들의 경제적 빈곤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자국에서의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권 사각지대에서의 고된 삶을 스스로 택하는 것이다.
한국서 목숨 걸고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일자리 없는 내 나라보단 낫다”
올해 1월 국세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외국인 취업자는 86만명이다. 이 중 연말정산 대상자의 평균 연봉은 전체 연말정산 근로자(3744만원)의 73% 수준인 2732만원으로 집계됐다. 33만명은 연말정산 대상에서 제외되는 임시·일용직 근로자다.
연말정산 대상자는 △중국(21만2032명) △베트남(4만6465명) △네팔(3만4985명) △인도네시아(2만9276명) △필리핀(2만8687명) △태국(2만4525명) △미국(2만4080명) 등이었다.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빈곤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의 국적을 지닌 셈이다.
빈곤국 국적을 지닌 외국인 근로자들은 내국인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쉽게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처우를 받는다 해도 자국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턱없이 적은 돈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차별과 수모도 감내하며 빨리 목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스리랑카 출신의 미등록 일용직 건설노동자 아흐메드 라지크 씨(30대·가명·남)는 브로커에게 한화로 수백만원을 지불하고 한국에 왔다. 현재 서울 서초구의 한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안전하게 돈을 벌어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소원이다”고 말했다.
아직 안전하게 일하고 있는 라자크 씨의 상황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체로 기피업무로 분류되는 일에 투입됐다가 안전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산업재해(산재)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작년 산재 사고사망자는 882명으로 이 중 94명이 외국인이었다.
전체 근로자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사망률로 평가된다. 재해 유형은 △추락(328명) △끼임(98명) △충돌(72명) △물체에 맞음(71명) △깔림·뒤집힘(64명) 등이었다.
똑같이 영어 써도 빈곤국이라는 이유로 기피… “경제력 유지 못 하면 남 일 아닐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는 단순히 안전 위협뿐 아니라 인격적인 무시를 당하는 일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키르기스스탄 고려인 출신의 영어강사 아지즈 시디코프 씨(30대·가명·남)의 경우 학부모들이 노골적으로 개발도상국 국적의 강사를 기피한다고 귀띔했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비영어권 출신 영어강사는 의외로 흔하다. 법적으로는 미국,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영어권 7개국 출신만 초·중·고 원어민강사로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에 그 외 국가 출신이더라도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아예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다문화센터 등에서 원어민 영어강사 양성교육을 실시해 제3세계 출신 강사들은 양지로 끌어내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양지로 이끌어내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정작 학부모들은 비영어권 강사들을 노골적으로 기피한다는 게 시디코프 씨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식 억양 등을 이유로 학부모들은 영어권 강사들을 선호한다.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우리가 일하고 있지만 언제 (제3세계 출신 백인 강사로 교체되고) 내쫓길지 모르는 신세다”며 “인종차별은 정말 참기 힘들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한국인 동료 직원들이 공공연히 자신의 뒤에서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뒷담화를 하는 장면도 수차례 목격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민족주의가 버젓이 남아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선 나와 다르면 일단 곱지 못한 시선이 쏠린다”며 “특히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라가 못 사는 비극은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것이다”며 “우리나라도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면 경제력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과거 우리나라도 노동력을 수출하는 빈곤국가였다. 1963년부터 1980년까지 실업문제 해소, 외화획득 등을 위해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 간호사들은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 투입돼 갖은 모욕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오주한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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