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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 ‘살아있으니 참 좋다’ 저자 형근혜

“절절한 투병 일기… 아픈 이들의 희망됐어요”

터키서 패러글라이딩 사고… 새 삶 위해 악착 재활

작은 행복 하나씩 쌓이면 삶이 살만하다고 느껴

기사입력 2022-07-23 00:05:36

 
▲ 사랑실버빌요양원 앞마당에서 밝게 웃는 형근혜 원장은 패러글라이딩 사고 후 겪은 자신의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저 말없이 아픈 이 곁에 있어주는 묵묵한 사람처럼.  ⓒ스카이데일리
 
내가 누군가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매일 매일 글로 내 고통을 다 노트에 얘기하듯 써내려 갔어요. 그렇게 아플 때마다 거의 매일 글을 쓰니까 조금씩 몸도 호전되기 시작했어요
 
도전, 사고 그리고 재활고마운 사람들
 
제가 운영하던 사랑 실버빌이 안정될 즈음에 산행을 가게 됐어요. 그때 산 정상에서 이대로 날아올라 저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패러글라이더를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형근혜(48) 원장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사랑실버빌요양원을 12년째 운영하고 있다. 스물 다섯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가정을 이룬 형 원장의 삶의 행로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삶에 대한 특별한 도전으로 바뀌게 됐다. 그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 회원 모집 현수막을 보고 지원을 했어요. 근데 동호회 회장은 삼십대 후반인 가정주부가 처음으로 비행을 배우겠다고 하니 선뜻 회원으로 받아 주지 않고 지상훈련을 받아 보라고 하셨죠.
 
형 원장이 동호회에 지원할 때 나이는 38세였다. 동호회 회장도 나이가 있어 회원으로 받는 걸 원치 않았지만 형 원장의 의지가 강하다는 걸 알고 동호회에 받아줬다. 그날부터 형 원장은 한 달 넘게 지상에서 글라이더 세우는 연습을 했고 연습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형 원장은 자격증을 시작으로 해외무대에서 경기를 뛰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2017년 중국에서 린저우오픈세계선수권대회가 태항산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처음으로 세계대회 데뷔전에 나가서 5일간 꾸준히 비행을 했어요그때 여성부 1전체 선수 20위로 대회를 마쳤죠.
 
형근혜(가운데)은 원장은 2017년 중국에서 열린 린저우오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성부 1위를 차지했다.  [사진=형근혜 씨 제공]
  
같은 해 형 원장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여성부 1위를 차지했다. 국가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속상함에 카자흐스탄 오픈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세계대회 경험이 전무한 형 원장은 120명이 참가한 대회에서 전체 5위를 했다연이어서 카자흐스탄 CIS컵 대회에서도 여성부 1위를 계속 이어갔다.
 
두 번의 국제 대회 동안 탑10에 모두 들고 여성부 1위를 계속했어요.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성취였죠. 거의 모든 비행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됐고 성적까지 좋았어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참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도전이 계속될 줄 알았던 형 원장은 20189월 터키 이스탄불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주행하다 추락사고를 겪게 된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도중 이상 기류가 발생해 떨어지면서 척추를 심하게 다쳤고 하반신이 마비될 거라는 예측을 받을 정도로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사고 후 터키에서 수술을 하고 한국으로 이송됐어요. 사실 지금까지 치료와 재활을 계속하고 있어요. 운동치료·수중치료·전기치료 등 다양한 치료들을 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재활하고 있죠. 치열한 재활을 하면서 8개월 만에 휠체어를 졸업했고 워커(이동보조용 의료기기)로 이동하는 게 가능해 졌어요.
 
사고 후 1년은 온통 재활로 채워졌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붙들고 서 있었던 것 같아요.
 
형 원장은 사고 후 재활을 받으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가족이었다. 처음에 비행을 많이 반대했던 남편이 사고 후에도 원망하지 않는 모습이 형 원장에게 재활의 힘이 돼 주었다. 두 아들도 형 원장이 집에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힘과 용기가 돼 주었다. 그리고 준비하지 못했던 삶에서도 작은 행복들이 형 원장을 응원해 주었다.
 
일기가 책으로… ‘살아 있으니 참 좋다’
 
사실 매일매일 아프면 대부분 주변 사람들한테 짜증을 내요아프다고 계속 말하지만 듣는 사람도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형근혜(오른쪽) 원장은 재활 기간 동안 하루하루를 모질게 견뎌낸 힘은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라면서, 그 행복을 꼭 붙잡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말했다. 사랑실버빌요양원에서 요양하고 있는 어르신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 원장. ⓒ스카이데일리
 
저도 병원에서 퇴원 후 사랑 실버빌에서 4개월 정도 재활 치료를 받았어요. 그때 어르신들과 함께 있으면 늘 아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어르신들이 나 어디가 아프다 하시면 사실 들어 주면서도 굉장히 힘들 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저는 누군가에게 아프다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로 표현하는 대신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형 원장은 치열한 재활을 견뎌내면서 드디어 재활 1000일째 되던 때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실버빌에서의 재활 과정에서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환자로 입소한 박기영(가명) 씨가 형 원장이 재활 치료하러 나갈 때마다 운전해 주고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은 요양원 직원으로 일하면서 입소한 어르신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 내 고통을 그냥 노트에다가 이야기를 하는 거였어요. 너무 많이 아플 때는 거의 매일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조금씩 덜 아파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 그 다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아픔에 대해 적는 날이 줄어들었죠.
 
형 원장이 아플 때마다 쓴 글은 주변 지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는데 일기장이 도움이 될 것 같으니 한번 보내달라는 지인의 요청으로 형 원장의 일기장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형 원장의 일기를 읽은 지인은 엄청 울면서 위로가 됐다고 형 원장에게 전했다.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같은 아픔을 겪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보다 먼저 아팠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내가 지금 이 정도 아픈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아픔을 이겨낸 사람을 보고 희망을 품고 싶은 게 아픈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형 원장의 힘든 재활과 인고의 시간을 기록한 글들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었다. 형 원장은 자신이 쓴 에세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픔과 고통을 일기장에 써 내려갔는데 그게 다른 아픈 이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살아 있으니 참 좋다는 도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계기가 된 셈이죠.
 
사고가 나기 전까지 형 원장은 마라톤대회·철인삼종경기·윈드서핑과 수상스키·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버킷리스트를 채우며 새로운 도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전과 같은 도전 대신에 아픔을 딛고 다른 아픈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아픔이 있다고 해서 삶이 지속될 의미가 있나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 또한 그랬고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않나, 남한테 피해를 주느니 등 이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어요.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것, 그 말은 꼭 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힘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까 작은 행복들이 생기더라구요. 그러면 수많은 고통 가운데서 그 작은 행복을 꽉 붙드는 거예요.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 작은 행복들을 꺼내 보는 거죠. 너무나 큰 고통 속에 있어 봤기 때문에 작은 것도 저에게는 엄청 크고 귀하게 느껴지거든요.
 
이런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붙들다 보면 삶이 살 만하구나 느끼는 날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김나윤 기자 / nykim@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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