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고르비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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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고르비와 한국

조정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9-01 08:01:58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2008년 10월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제환경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시스]

1988년 10월2일 88서울올림픽이 끝나는 날 저녁, 소련의 국가원수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국교도 없는 대한민국 서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제8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지 3년 만이다. 취임 직후부터 공산국가로서는 혁명적 발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밀어붙여 내부 보수층의 반발로 한창 벽에 부딪힐 때였다. 60여년 일당 독재를 유지하며 지구촌을 공산주의 국가로 일색화하려던 소련이 쇠잔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문선명 통일교 총재였다. 경기를 마친 소련선수단을 초청해 만찬을 하다 다짜고짜 “소련 선수단한테 귀한 올림픽 금메달을 선물 받았으니 상응하는 답례를 해야겠다”면서 “트럭 2000대를 선물로 보내고 싶은데 가져갈 의향이 있으신지요?”하고 물었다. 보통 이럴 때는 기쁨·감동·미소 관리 이외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고르비도 마찬가지였다. “고맙다”며 “당연히 가져오지요” 하고 말했다.

문 총재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반드시 육로로 가져 가셔야 합니다. 운전사는 우리 측이 제공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고르비는 순간 북한과 김일성 주석을 생각했다. 육로로 트럭을 이동하려면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고르비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김일성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생각한 김일성은 “어렵겠다”고 답했다. 고르비가 북한을 버리고 대한민국과 가까워지게 된 결정적 계기다.

그 후 고르비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눈부신 경제 발전, 그리고 천문학적 가격인 트럭 2000대를 선뜻 선물로 줄 수 있는 민간인이 있는 대한민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어 동독에 주둔하던 소련군을 철수시켜 피 한 방울 안 흘린 채 동서독 통일에 기여했고, 1990년 6월 노태우 대통령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 한·소 수교를 결단했다.

고르비의 이마엔 한반도 지도를 닮은 커다란 점이 있다. 54세에 최연소 서기장에 올라 한계에 봉착한 소련연방을 해체하는 역사적 결단을 내린 인물이다.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의 90회 생일을 맞아 “냉전을 종식하고 세계평화를 정착시켰으며 자유로운 독일 통일에 기여한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어 영광”이라는 성명을 냈다.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한 고르비의 명복을 빈다. 조정진 주필

조정진 기자 jjj@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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